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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치인들의 첫째 관심사는 ‘퍼스널 시큐리티'(personal security)이다. 그런 관점에서 김정일은 핵을 없앤다면 정치적 안전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볼 것이다.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김정일 정권 하에서는 핵폐기 결단이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핵 6자회담 ‘2.13 합의’ 이후 미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적극 해결하는 등 북한의 불법행동을 적극 해결해주자 일각에선 ‘미국이 북한 앞에 무릎 꿇은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즉, 김정일 정권과의 양자 대화를 거부했던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을 강행하면서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에 나오게 됐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무릎을 꿇었다고 하는 것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것”이라며 반론을 제기했던 학자가 있다. 바로 이춘근(李春根) 자유기업원 부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부시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 북한의 성실한 핵프로그램 신고를 촉구하면서 이제 ‘김정일의 결단’이 최고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국제정치 전문가인 이 부원장을 17일 오후 여의도 자유기업원 내 그의 작은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부원장은 ‘비핵화에 대한 김정일의 결단 가능성’에 대해 “핵을 없애고도 ‘선군정치’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면 결단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조금이라도 의문이 있다면 결단하지 못하고 게임을 벌이려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美, 핵 빼앗고 북한을 자기편 만드는 게 목표”
이어 “‘2.13합의’로 인해 북핵 폐기에 대한 물꼬를 트기는 했지만 원래대로라면 불능화가 6개월 전에 됐어야 한다”며 “지금까지 북한이 시간을 끈 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할지에 대해 망설이고 있는 것”이라고 관측했다.
또한 “김정일이 핵을 포기하기 위해선 체제 보장을 미국이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미국이 어떤 식으로 체제 보장을 할 수 있으며, 북한이 이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미북 관계정상화와 관련, “미국은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수교해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를 빼앗고 북한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게 최고의 목표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의 정권을 바꾸는 것과 그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다 가능하다”며 “북한이 미국편이 되겠다고 한다면 그동안 중동에 공급해왔던 무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테러집단도 약화되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북핵 6자회담이 진전되면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언급이 줄어든 것에 대해 그는 “우선순위의 변화”라고 설명하며 “김정일을 코너에 몰 때는 악의 축-폭정의 전초기지-인권문제 순으로 압박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원장은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일정 시점까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북한에 대한 압박이 또 다시 시작될 것”이라며 “만약 부시 임기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의 차기 행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차기 행정부가 누가 됐든지간에 지난 정권이 취했던 실수를 똑 같이 되풀이 하지는 않을 것이며, 특히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으로선 무력을 동원한 문제해결이라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것.
이와 함께, 이 부원장은 양자대화를 거부하던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선 것과 관련해 ‘북한이 미국에 승리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국제정치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파워가 몇 백배 강한 사람이 약자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다”며 “이는 ‘파워 폴리틱스'(Power Politics)라는 현실적 국제정치이론을 무시한 것으로, 현재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협상할 수 있는 접점이 생긴 것뿐”이라고 말했다.
“카다피는 외교정책만 바꿨지만 김정일은 체제를 바꿔야”
이어 “미국의 헨리 키신저 전 장관이 중국과의 수교에 물꼬를 튼 것처럼 미국은 언제든지 북한과 수교할 수 있다”며 “김정일이라는 독재자와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화되기는 힘들다”고 분석했다.
왜냐하면 “김정일이 반미주의를 포기하고도 정권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반미주의를 포기하고 먹고 살아야 한다. 이는 체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그 문제를 푸는 게 김정일의 숙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국민소득이 1만 불을 넘으니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나왔다”면서 “북한도 반미를 접고 개방을 하고도 김정일 정권이 그냥 유지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그는 분석했다.
또한 현재 김정일의 상황과 리비아의 카다피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지적했다.
“카다피는 외교정책을 반미에서 친미로 바꾼 것밖에 안 된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를 바꾸는 문제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어떻게 되고, 끝까지 지키겠다는 우리식 사회주의는 어떻게 되나. 이게 김정일의 딜레마이다.”
이 부원장은 “만약 북한이 반미주의를 포기하고 평양에 미국 대사관과 달러가 들어가게 된다면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라며 “이는 바로 북한이 서방에 노출되는 것과 같은 것인데 김정일 정권에겐 독이 퍼지는 것과 같다”고 전망했다.
이어 “김일성이 있었다면 북한의 개혁개방도 가능했을 수 있겠지만 김정일은 못한다”며 “중국의 개혁개방도 모택동이 못하고 등소평이 했고, 소련도 고르바초프가 했지만 그 자신은 다운됐다”고 밝혔다.
또한 “어느 정권이든지 생존이 목적인데 북한은 국가와 정권이 사는 길이 서로 다르다”고 지적하며 “국가가 살기 위해서는 개혁개방에 나서야 하지만 그동안 김정일은 정권이 살기 위해 고립·폐쇄·핵개발을 해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