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정상회담을 한 지 불과 나흘 만에 다시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이번 통화는 이른바 ‘4월 위기설’이 불거질 만큼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근래 북한 6차 핵실험 가능성과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 등 각종 ‘시나리오’가 줄을 잇자, 양국 정상이 북핵 위협과 대응 방안을 재확인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국 국영 중앙(CC) TV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12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의 목표를 견지하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평화적인 문제해결 등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면서 “한반도 사안과 연관해 미국 측과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유지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이 매우 성공적이었고 양국 정상이 긴밀하고 밀접한 접촉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양국이 함께 노력하는 것과 광범위하게 실무적인 협력을 확대하는 데 찬성하며 중국 국빈 방문을 기대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중 무려 7시간이나 관련 현안을 논의했던 두 정상이 불과 나흘 만에 유사한 주제로 대화에 나섰다는 점에서, 미중 양국이 그 어느 때보다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번의 회담만으로 양국이 북핵에 대한 인식차를 좁히진 못했지만, 북핵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에선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무엇보다 이번 통화는 미국의 ‘독자조치’에 대한 중국의 우려가 반영됐다고도 볼 수 있다. 양국 정상 중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통상 전화를 건 정상의 국가에서 관련 보도를 먼저 내는 점을 고려하면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부터 중국이 북핵 해결에 협조하지 않을 시 미국의 독자 행동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회담 이후에도 SNS(사회관계망) 트위터를 통해 ‘만약 중국이 돕기로 한다면 정말 훌륭한 일이 될 것이며, 만약 돕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의 도움 없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여기에 한미군사훈련 이후 호주로 향하려던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한반도에 재배치되면서 중국으로선 미국이 실제 대북 군사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했을 수 있다.
이와 관련 남광규 매봉통일연구소장은 12일 데일리NK에 “중국이 (이번 통화에서) 미국의 군사조치와 관련해 자제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신 중국 역시 북한이 핵실험 등 대형 도발에 나서지 않게끔 제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남 소장은 이어 “중국이 (회담 중) 군사 조치나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대북 경제제재 강화에 동의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이 중국 입장에서도 차라리 현실적인 대응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앞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11일(현지시간) 미 고위 당국자를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정치적 압박을 강화하고 군사옵션은 장기 검토하는 내용의 대북접근법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중국이 미국의 대북접근법에 발맞춰 대북 원유 수출 금지 등 추가 고강도 제재에 동참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아직까지 중국이 뚜렷한 추가 제재조치를 내놓고 있진 않지만, 중국이 향후 대북 압박 고삐를 더욱 당길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10일(현지시간) 중국 단둥청타이(丹東誠泰)무역회사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이 회사를 비롯한 석탄 수입 업체들이 중국 당국의 지시에 따라 북한산 석탄 반환을 준비하고 있다.
남 소장은 “김정은이 6차 핵실험이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서게 되면, 중국도 미국의 독자 조치에 대해 디펜스(방어) 해줄 수 있는 여지가 없을 것이다. 6차 핵실험이나 ICBM이 곧 중국의 레드라인인 셈”이라면서 “중국이 향후 북한을 향해 도발 행동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더욱 확실히 보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정상회담 나흘 만에 통화에 나섰다는 점이 북한 김정은에게 작지 않은 압박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일성 생일(4·15)이나 인민군 창건일(4·25) 등을 계기로 북한 도발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미중 정상이 서로 적극적인 의견 개진에 나서는 모습이 김정은에게 ‘경고성’ 메시지로 비춰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이 만약 김일성 생일 등을 계기로 대형 도발을 고민하고 있었다면 이번 통화가 꽤 강력한 경고 메시지처럼 느껴질 것”이라면서 “북핵에 대한 인식 차 때문에 미중이 적극 협력하는 구도를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북핵 해법에 대한 각자의 역할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도 여러모로 압박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