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에 낀 한국, ‘원교근공’의 조선책략 유효하다

최근 눈길을 끈 발표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남북 간 8·14 합의서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19일 미중 새 지도부(오바마-시진핑)가 출범한 후 처음 열린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과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장관)의 회담 후 합동기자회견이다.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개가 교차되는 건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미국과 중국은 태평양에서 충돌할 것인가? 둘째, 중국은 북한을 매개로 얼마 만큼의 영향력을 미국에 행사할 수 있을까? 셋째, 북한은 얼마나 중국과 보조를 맞출 것인가?


이번 미·중 국방장관 회담 발표가 주목 받은 데는 창 장관의 거친 발언 탓이 크다. 한마디로 그는 ‘중국은 결단코 영토주권과 해양 권익에 관한 이해관계에서 일체의 타협이나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 국방장관의 코 앞에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오만한 경고를 한 셈이다.


중국은 왜 이렇게 강하게 나왔을까? 아시아 대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영토를 미국이 탐내기라도 한단 말인가? 최근 몇 년 사이 대륙세력의 대표선수인 중국이 해양 군사력에 힘을 쏟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2006년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의 대양해군’을 선언했다. 작년 8월엔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중국명 랴오닝호)이 취역했다. 중국은 2020년까지 최대 5척의 항모를 보유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당시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2020년까지 미 해군력의 60%를 아태 지역에 배치하겠다고 맞받았다.


10년 뒤 중국과 미국은 태평양에서 맞붙는, 예견된 경쟁을 벌이는 걸까? 공개된 미 의회 증언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한 장군은 2007년 5월 중국을 방문한 미국의 태평양사령관 키팅 제독에게 태평양을 반분(半分)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다. 하와이를 거점으로 이서(以西)는 중국이, 이동(以東)은 미국이 통제하자는 구상이다. 물론,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지난 30년 동안 자본을 축적한 중국이 100년 전 갈파한 알프레드 마한의 ‘통찰'(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 1890)을 뒤늦게 따르자는 것일까? 미 해군대학 학장이었던 마한은 해양력을 키운 국가가 세계를 제패했었음을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서방 국가의 세계 패권 전략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아직도 그의 책은 군사·안보 분야에서 가장 명저로 꼽힌다.


원조 대륙세력 중국은 이제 태평양을 무대로 해양국가로 변신하는 중인가? 이는 분명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고 했던 영국의 탐험가 월터 롤리의 명언을 중국 최고 지도부가 공식정책으로 채택했다는 방증일까?


북한은 중국의 해양세력화 세계 전략에 중국이 활용할 수 있는 각별한 카드다. 창 부장이 미국에게 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를 압박하고 나선 모양새는 일거양득의 외교적 효과를 갖는다. 명분은 쌓으며 실리는 훗날 챙길 포석을 확보하는 노림수다.


그러나 지난 20년 간 실패한 대북 협상의 내공을 쌓은 미국은 이제 ‘북한의 진정성 입증이 선행돼야 한다’며 공을 북한으로 던지는 노련함을 갖추게 됐다. 장군과 멍군이 오가는 판세다.


‘태평양은 두 강대국을 수용할 만큼 충분히 넓다’느니 ‘태평양은 중·미의 공동정원’이라는 창 부장의 수사는 오랜 해양세력 미국을 향한 탐색전인 동시에 중국의 해양세력화 전환을 숨기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꼭 100년 전 미국은 카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7월 29일)을 통해 한반도와 필리핀을 두고 일본과 거래했다. 이를 계기로 동아시아의 유일한 제국이었던 일본은 그 해 11월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할 수 있었다. 이제 중국은 일본을 대신하고 싶은 걸까. 미국과 태평양에서 세계를 나눌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제국주의 열강 시대의 부끄러운 행태를 미국은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초 청말, 종이호랑이라는 비아냥이나 들었던 중국은 현재의 힘을 이용하여 무기력했던 과거를 바꾸고 싶은지 모르겠다. 중국에겐 뼈아픈 역사가 오늘날 중국이 구가하려는 현실주의 패권론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해양세력(미국·일본·호주)과 대륙세력(중국·러시아) 사이에 낀 한국으로선 어떤 묘책이 있을까?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지혜를 담은 황준센의 ‘조선책략’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균형’이란 지향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후에 결과를 지칭하는 ‘상태어'(狀態語)라야 마땅하다. 한국은 대륙세력인 동시에 해양세력인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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