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27 재보선에서 패배한 여당이 잇달아 ‘좌클릭’ 정책을 쏟아내자 보수의 정체성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현 집권 세력의 위기는 그들 스스로가 불러온 것이라는 냉정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보수의 철학을 잃어버린 채 진보진영의 무분별한 ‘복지’ 행보에 동조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는 최근 출간한 계간 시대정신(발행인 김세중) 가을호(통권 52호) 특집좌담 ‘보수의 정체성 위기를 논한다’에서 “보수의 철학을 잃어버리고 결과의 평등을 내세우며 진보세력에게 타협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 보수정당의 위기”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MB정부의 중도 실용노선과 한나라당의 정책 기조 변경 시도에 대해 “복지정책을 잘못해서 정책실패가 일어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면서, 집권세력의 철학 부재와 빈곤한 리더십 현상을 꼬집었다.
남 교수는 보수의 의미를 “자신이 믿는 가치와 전통을 지켜가면서 개혁을 하려는 세력”이라고 정의한 뒤, 오늘날 보수의 가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이지 수구세력이나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역설했다.
좌담에 참여한 최광 한국외대 교수는 우리 사회의 진보, 보수 용어 사용 문제를 지적, “변화의 과정을 중시하는 진보-보수라는 구분보다 추구하는 가치와 내용에 따라 좌파-우파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현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는 “이념이 아니고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라며 이러한 이념부재의 정책은 구심점이 없고 상황에 따라 정책이 ‘조변석개(朝變夕改 : 아침, 저녁으로 뜯어고친다는 뜻) 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우리사회의 보수-진보 문제는 북한문제가 엮이면서 이념적 중층구도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특히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정책 패키지를 신자유주의라고 정의한 후 보수, 우파는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워 이념의 정체성을 헷갈리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 정권 출범 후 촛불시위, 글로벌 금융위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등 3대 트라우마가 집권 세력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러한 요소로 인해 국민들이 왼쪽으로 많이 이동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또 “정부가 민심을 쫓아가기 위해 내세운 친서민, 중도, 실용, 공정, 동반 등 가치들이 기본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것으로 국민들의 갈증만 증폭시켰다”고 비판했다.
보수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윤 교수는 “시민단체 활동에는 참여가 중요한데 실리를 중시하고 싸움 자체를 싫어하는 보수문화로 인해 보수단체의 참여도가 상당히 낮다”고 지적하고 “좌파단체들에 대항해 건전한 비판세력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보수단체의 수적 열세를 극복해야 하고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보수시민단체들이 과거 좌파정권하에서는 상당한 활동을 하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정권에 대해 비판적 활동이 부족”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한편으로는 소위 ‘아스팔트 보수’ 세력에 대한 현 정부의 냉대가 이들을 소외시켰다면서 이들을 제도권 안에 참여시켜 핵심적 역할을 하도록 기회를 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 교수는 보수, 우파운동의 활동방향에 대해서는 선진국의 경험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의 뉴라이트운동과 미국의 신보수주의 운동은 정책연구소를 중심으로 지성계와 경제계가 의기투합해 국민들의 의식을 전환시킨 결과 대처와 레이건의 집권이 가능했다”고 지적하면서 경제계의 지원을 촉구했다.
가을호에는 이 외에도 특집논문으로 박효종 서울대 교수의 ‘집권보수의 반(反)보수성을 묻는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의 ‘방향성을 상실한 보수정부의 경제정책’, 일반논문으로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의 ‘헌법과 정당정치’, 문재완 한국외대 교수의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 왜 위기인가?’ 등이 수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