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지 않는 원칙에 따라 실현돼야한다. 북과 남에 서로 다른 두 제도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지 않은 원칙에서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 두 개 정부에 기초한 연방제여야 한다.”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을 목격한 김일성은 다음해인 1991년 신년사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1960년 남북연방제를 제안하면서 “(남북연방제는) 남북조선의 경제·문화교류와 호상협조를 보장함으로써 남조선의 경제적 파국을 수습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하던 김일성이 한 단계 후퇴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김석향 이화여대 교수는 28일 한반도평화연구원(KPI)이 주최한 ‘남북한 통일담론에 대한 진단과 통일논의의 수렴방안’ 공개토론회 발제문에서 김일성은 남한주도의 흡수통일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통일에 있어 ‘누가 누구를 먹거나 먹히지 않는 원칙’은 1991년 김일성이 처음 강조한 내용”이라면서 “북한 당국은 독일식 통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통일독일의 부정적 상황만을 부각시켰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독일통일 이후 발행된 ‘조선중앙연감’을 언급하면서 “예멘의 통일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독일의 통일에 대해서 외면하고 있다”면서 “이는 김일성·김정일이 독일통일이라는 사건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자 했던 욕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1990년 독일이 통일된 이후 조선중앙연감은 독일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시작한다. 연감에서는 ‘동서독일이 통일 후 전례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식의 표현과 함께 독일식 통일이 미치는 경제적 악영향만을 부각시켰다.
특히 “독일 통일 이후 발행된 조선중앙연감 1989·1990 발행본은 동독 경제현황에 대해 ‘미달하고 피해 입은’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면서 “1988년 발행본에서 ‘(동독 경제가)높아지고 장성하고 증대되고 개선됐다’라고 평가한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