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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서 공보업무를 총괄하는 샤시 타루르(50) 사무차장은 유엔 역사상 최연소로 사무차장에 오른 인도 출신 외교관 겸 저술가다. 22세때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들어가 11년반동안 난민문제를 다뤘고 이어 평화유지군 업무를 하다 46세때인 2002년 사무차장에 임명됐다.
런던에서 태어나 인도와 미국에서 교육받은 뒤 유엔에서 일하며 활발한 인도 관련 저작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에 대해 뉴욕 외교가에서는 “인도가 낳은 대표적인 코스모폴리탄 외교관”이라는 후한 평을 주고 있다.
28년째 유엔에서 재직중인 타루르 사무차장을 지난 18일 유엔사무국 10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근 사무총장 선거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밀려 낙선한 그는 선거 패배로 낙담해 있을 법했지만 활기찬 표정으로 창립 61주년에 즈음해 새로운 수장을 맞는 유엔의 기대와 향후 유엔의 과제에 대해 얘기했다.
―이번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서 2위를 했는데, 선거에 대해 평가한다면.
“이번 사무총장 선출 과정은 아주 투명하고 열린 상태에서 진행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역대 사무총장 인선절차와는 아주 달랐다. 나는 이번 스트로폴 과정에서 2위를 지켰지만 그 결과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내가 유엔에서 28년간 근무한 과정에 대해 회원국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예비선거 후보중 반 장관은 아주 강력한 후보였는데 그는 스트로폴 과정에서 더 많은 나라들의 지지를 얻어내며 훨씬 강해졌다.”
―인도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기에는 너무 큰 나라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그런 얘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최선을 다했지만, 반 장관은 나보다 더 최선을 다한 것 같다. 그는 개인적으로 나보다 더 뛰어난 선거를 치렀다.”
―한국은 분단국이고 북한문제 때문에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도 있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몇몇 사람들은 그런 우려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 장관은 개인적으로 아주 설득력 있게 각국 대표들에게 접근했다. 반 장관의 부드러운 스타일이 그런 우려를 불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래서 각국 대표들은 한국의 정치적 주변상황보다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 그리고 반 장관의 개인적 자질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지지한 것으로 본다.”
―런던에서 태어나 뭄바이와 미국에서 교육받고, 28년간 유엔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떤 점이 글로벌시대의 글로벌 외교관으로 활동하게 만든 핵심요소라고 보는가.
“나는 2세때 인도로 돌아와 뭄바이에서 대학까지 다녔다. 그리고 19세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원 졸업후엔 유엔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나는 늘 거울을 보면서 나는 누구인가 자문하는데 나는 분명히 인도 사람이다. 그런데 인도는 인종이나 피부색, 문화면에서 아주 다양성이 많은 나라다. 내가 ‘인도’라는 책에도 썼지만 인도 자체가 언어, 문화, 인종이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이런 문화가 유엔에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인도인으로서 아주 강한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 유엔의 업무가 인도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때는 어떻게 극복했는가.
“유엔에서 일하며 인도 관련 일을 맡아본 적은 없다. 유엔 관리들은 출신국 이해관계가 걸린 일을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 업무스타일이나 마음가짐은 인도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일은 어디까지나 유엔의 문화 속에서 한다.
내가 UNHCR에 있을 때 인도적 가치나 원칙에 기반해서 일한 게 아니라 난민문제 일반에 대한 원칙 속에서 일했다. 평화유지군 업무를 할때도 마찬가지였다. 인도가 평화유지군에 군을 파견했지만 평화유지군의 원칙은 인도의 것이 아니라 유엔의 것이었다. 늘 유엔의 글로벌 시각을 견지했다.
유엔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마찬가지다. 코피 아난 총장이 가나에서 왔다고 해서, 가나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반 장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엔 사람들은 모두 출신국가의 배경을 갖고 있지만 유엔의 원칙 아래 글로벌 맥락 속에서 일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내년 1월부터 사무총장으로 활동할 반 장관이 한국적 이해관계와 유엔의 비전 사이에서 갈등할 때 조언을 한다면.
“그간 유엔의 전통적 원칙은 유엔 관리가 자신의 출신국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개인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원칙은 어떤 점에서 새롭게 기술돼야 할 것 같다. 반 장관은 외교부 장관으로 오래 일하면서 북한 핵문제 전문가로 인정되어왔기 때문에 북핵문제 해결에 아주 특별한 이점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유엔의 그런 오래된 원칙이나 태도를 뒤집어서 새롭게 기술해야 할 때가 됐다. 반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권위를 갖고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추가적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이제 유엔 사무총장과 협상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이 북핵문제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북한이 핵문제를 의논할 수 있는 상대라는 의미다.”
―과연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배출되는 게 한반도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회의론이 국내외적으로 있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유엔 고위관료는 출신국 문제에 관여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과거의 원칙이었다는 점에서 그런 우려는 정당하다. 그러나 반 장관은 예외가 될 것 같다.”
―반 장관이 앞으로 한반도문제에 관여하는 게 유엔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얘긴가.
“반 장관이 한반도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유엔의 이해관계에서 볼 때 긍정적이다. 그간 유엔은 북한문제에 깊이 관여하지 못했는데 한국의 외교부 장관 출신자가 사무총장이 됨으로써 북핵문제에 자연스럽게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될 것으로 본다. 그간 유엔은 북핵문제에 있어 유의미하고 가치로운 역할자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이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아주 의미있는 일이다.”
―오는 12월31일로 물러나는 아난 사무총장의 공과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난 총장은 지난 10년간 유엔을 아주 잘 이끌어왔다. 지난 10년간 유엔은 훨씬 잘 조직되고 인도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국제기구로 변신했다. 아난은 유엔에 아주 고매한 원칙과 기준을 가져온 사람이고 강력한 인권옹호자다. 글로벌 맥락에서 볼 때 아난 총장은 세계 각국의 비정부기구(NGO) 및 시민사회 등과 연대해나갔는데 이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아난 총장은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유엔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아난 총장은 위대한 국제지도자로 평가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들의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아난 총장이 불명예를 안았는데.
“아난 총장의 아들이 뭘 했건 간에 코조나 아난 총장 본인이 부패에 관여하지 않았고, 유엔 공금을 유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볼커위원회는 유엔 운영 전반 그리고 이라크 오일 식량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를 했는데, 우리가 유엔관리 전반을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이고 윤리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것은 반 장관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아난과 미국의 관계는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어느 편의 책임이 큰가.
“초기에는 좋았는데 최근에 나빠졌다. 관계 악화의 책임을 따지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다. 미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데다가 유엔 기여금도 제일 많은 핵심국가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를 잘 끌어가는 게 중요하다.”
―새로운 사무총장이 취임하면 유엔과 미국의 관계를 향상시킬 것으로 보는가.
“물론이다. 새 사무총장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나라의 외교부 장관 출신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하는 데 장점이 있다고 본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 진출하려는 젊은 한국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한국 젊은이들이 유엔에 합류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 한국 외교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된 것은 한국의 리더가 유엔에 합류하는 아주 좋은 사례를 보여줬다. 한국 사람들은 아직 유엔 회원국으로서 유엔 사무국의 적정쿼터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아주 뛰어난데 유엔에서의 활동은 적다. 내가 만난 젊은 한국 친구들은 어학실력도 뛰어나고 일도 아주 열심히 한다. 유엔에 주니어든, 시니어든 더욱 더 많은 한국인들이 와서 일하기를 원한다. 앞으로 5~10년후 유엔에서 한국이 더이상 저평가된 나라가 아니길 바란다.”
이미숙 기자 musel@munhwa.com /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