潘외교, 마지막 출근..”무인도에 내동댕이쳐진 듯”

“나 만은 기쁘게 떠날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무인도에 내동댕이쳐진 듯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낀다.”

대한민국 대표 외교관에서 `유엔국적’의 세계 최고위 외교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이 10일 동고동락하던 후배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날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오전 6시께 기상한 반 장관은 마지막까지 바빴다. 연설 및 이임 인사차 한남동 장관 공관에서 국회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연설문을 검토하고 전화보고를 받느라 상념에 빠질 틈도 없었다고 한다.

오전 10시10분께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 섰다. 현안질의에 대한 답변을 위해 여러번 그 자리에 섰지만 오늘은 성격이 달랐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장도를 떠나는 그를 위해 국회가 ‘고별인사’의 기회를 준 것이다.

반 장관은 연설에서 ‘한국인의 자부심’을 한껏 자랑했다. 그는 “이번 외교적 개가는 우리 국민 모두의 몫이며 그간 우리 국민이 온갖 시련을 극복하면서 흘렸던 피와 땀과 눈물의 소산이다”라며 “이렇게 얻은 것이기에 그 영광은 결코 저 혼자만의 것이 될 수 없으며 조국을 사랑해온 모든 국민에게 돌려져야 마땅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은 한국인은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어렵다는 우리 스스로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우리 국민은 사유의 틀을 국제무대로 확대해야 하고 우리 사회는 여러 방면에서 국제적 표준에 접근해야 할 것”이라며 “이것 또한 우리 자신에 대한 존경심과 자긍심을 바탕에 두어야 가능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국회를 나온 반 장관은 곧바로 동료 후배들이 기다리는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향했다. 한국 외교관으로서는 마지막 출근이었다.

오전 11시 청사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이임식때 직원들의 기립박수 속에 단상에 오른 반 장관은 감회 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직원들은 `추카추카 기문오빠’, `얼짱 몸짱 유엔짱’ `I ♥ 반기문’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열화같은 성원을 보냈지만 1970년 5월1일 입부 이후 37년여간 동고동락해온 조직을 떠나는 반 장관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 났다.

반 장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낭랑했지만 `반갑습니다’는 인사를 하면서 `반’자를 2~3차례 반복하는 등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도 비쳤다.

그는 “보통 장관직을 떠나는 사람은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이임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잠시 뜸을 들인 그는 “그러나 나 역시 요 며칠간 마음 한구석에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고 오늘 이 자리에 서니 허전하고 쓸쓸한 심정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해 세계 분쟁과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따른 고뇌도 털어놨다.

평소 공개석상에서 극도로 신중한 언행을 보여온 그였기에 “무인도에 내동댕이쳐진 듯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낀다”는 말에서도 `진정’이 묻어 났다.

반 장관은 그간 외교관으로서의 성취를 언급하며 ▲외교 선진화 및 다변화 ▲주요국과의 양자관계 발전 ▲북핵 9.19 공동성명 도출 ▲개도국들과의 관계 개선 ▲영사 및 홍보분야의 혁신 등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역부족으로 우리 부의 조직과 예산을 선진외교를 수행할 만큼 충분히 키우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깝다”면서 “내가 못다한 부분은 여러분들이 중장기 청사진을 만들어 완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반 장관은 2년10개월간 한국 외교를 진두지휘하면서 느낀 소신도 피력했다. 민의를 떠난 외교는 있을 수 없지만 때로는 정부가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고 소신있게 외교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민주화 과정에서 유권자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면서 외교하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으나 외교정책이 힘을 얻으려면 국민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면서도 “국가 대계에 관한 외교는 정부가 주도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리더십도 필요함을 참작하고 (그 과정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비판을 받을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앞서 직원들을 대표해 환송인사를 한 이규형(李揆亨) 제2차관은 “반 장관이 외교장관 재임기간(2년10개월) 해외에 머문 날 수가 총 357일이었고 국내외에서 다른 나라 외교장관과 면담한 건수는 374차례에 달했다”고 소개한 뒤 “장관님을 보낸 뒤에도 그간 보여준 열정과 헌신, 따뜻함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장관은 직원들과 환송 리셉션 및 오찬을 함께 한데 이어 간부, 출입기자 등과 기념촬영까지 마친 뒤 오후 1시50분 직원들의 박수를 뒤로 한 채 외교부 청사를 떠났다.

그가 이미 장관신분이 아닌 탓에 마지막 퇴근길에는 평소 사용하던 관용차량이 아닌 외빈 차량이 제공됐다. 반 장관은 오는 15일 사무총장직 인수를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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