潘외교 `다 된 밥에 재뿌리지 마라’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이 21일 아주 이례적으로 부시 미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에게 ‘입조심’을 당부하고 나섰다.

반 장관은 이날 오후 브뤼셀에서 열리는 이라크 재건 국제회의 참석차 출국하기에 앞서 인천 국제공항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최근 미국 고위관리들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언급한 것은 현재의 화해 분위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우 강한 톤으로 느껴진다.

지난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7월중 6자회담 복귀 용의”를 밝히는 등 모처럼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마당에 일부 미 고위관리들이 무분별하게 발언하고 있다는 비판인 것이다.

우리 외교장관이 미 고위관리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은 흔치 않다.

이날 반 장관의 비판은 20일(현지시간) 워싱턴 허드슨 연구소에서 열린 ’미국의 사명: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전략’ 세미나에서 행한 폴라 도브리안스키 미 국무부 차관의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도브리안스키 차관은 이 세미나에서 북한과 미얀마, 짐바브웨, 쿠바 등 네 정권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거듭 예시했다.

반 장관을 비롯한 우리 정부는 그의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비슷한 시각 유엔주재 북한 고위관리가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미국이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철회한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폭정’ 등 우리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 그 것도 일종의 철회로 볼 수 있다”고 밝힌 상황에서 그 같은 도브리안스키 차관의 발언은 일종의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동영-김정일 면담이 결실을 본 것은 무엇보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했던 지난 10일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그 같은 도브리안스키 차관의 발언은 자칫 한미 정상의 합의사항과는 배치되는 좋지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날부터 서울에서 제15차 남북장관회담이 중단된 지 13개월여만에 재개되는 점도 감안된 조치인 것으로 풀이된다.

반 장관이 이라크 재건 국제회의가 열리는 브뤼셀에서 22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을 만나고, 또 방미중인 이태식 외교차관이 21일(현지시간) 미 국무부와 백악관 고위관리를 만나 앞으로 불필요하고 무분별한 발언을 삼가줄 것을 요청하기로 한 것은 우리 정부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한미간에는 분위기의 조성을 위해 6자회담 분위기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발언은 서로 자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 고위관계자는 도브리안스키 차관에 대해 “그는 북핵 문제나 대북 관계 담당자가 아니다.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발언이) 미국 정부의 입장은 아니다”라고 의미를 축소하려고 애썼다.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도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라이스 장관이 19일 CNN방송ㆍ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아직도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보느냐’는 질문에 “북한 정권의 성격은 자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한 것과 관련, “모처럼 조성된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인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한미 외교채널을 통한 적극적인 시정을 정부에 촉구했다.

우리 정부의 이런 ‘입조심’ 당부에 미 행정부가 어떻게 반응할 지 주목된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