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권, 동백림사건 `간첩단’으로 포장

재독 음악가인 고 윤이상 선생을 비롯, 예술계.학계.관계 인사 무려 194명이 연루됐던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간첩단’으로 포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피의자들의 단순한 대북 접촉 및 동조행위까지도 국가보안법및 형법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해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 과장했다.

또 수사과정에서 신체적 가혹행위가 행사된 것은 물론, 서울대 학생서클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를 공작단의 하부조직으로 왜곡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26일 오후 국정원에서 ‘동백림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면서 이같은 밝히고 정부는 이 사건 관련자들에게 포괄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위는 그러나 이번 사건이 1967년 5월14일 서독주재 모 신문사 특파원 납치 사건을 계기로, 당시 북한측과 접촉한 사실이 있었던 임석진 교수가 그 해 5월17일 당시 박 대통령을 면담해 대북 접촉사실을 고백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중앙정보부가 사전 기획.조작한 사건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 사건 관련자들은 당시 수사결과와 마찬가지로 북한방문, 금품수수, 특수교육 이수, 북측 요청사항 이행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위는 그러나 “특수교육의 경우 강요된 측면이 강하고 귀국자들에 대한 북한의 지하조직 구축 등 지령사항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이행하지 않았고 3∼4명만이 호기심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안착신호를 발송하고 북한 방송을 1∼2회 청취하는 등 활동의 위반 정도가 약한 편이었다”고 판단했다.

이런 정황을 배경으로 중정은 당시 관련자 203명 가운데 66명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23명에게 간첩죄를 적용했고 검찰도 23명을 간첩죄와 간첩미수죄로 기소했지만 최종심에서 간첩죄를 적용받은 피고인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진실위는 그럼에도 불구, “중정이 당시 대표적인 학생서클이었던 서울대 민비연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이례적으로 수사도중 10일동안 7차례에 걸쳐 사건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 사건을 1967년 6.8 부정총선 규탄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특히 “중정은 혐의가 미미하고 범의가 없었던 사람에 대해 범죄혐의를 확대하고 귀국후 대북접촉 활동을 과장하고 특정사실을 왜곡하는 등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 발표했다”며 “그 대표적인 예가 (고)천상병 시인”이라고 말했다.

천상병 시인이 한 대학 친구로부터 동백림을 다녀온 사실을 들은 것을 암약 중인 간첩임을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해 송치했으며, 이 과정에서 전기고문 등을 통해 허위자백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진실위는 황성모 서울대 교수가 북한에 포섭돼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민비연’을 조직했다는 중정의 당시 발표가 6.8선거에 대한 학생시위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과 관련, “중정은 협박.신체적 가혹행위 등을 통해 황 교수와 민비연 회원들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해 혐의내용을 확대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독일 등 해외 거주 관계자 30명의 연행과 관련, 진실위는 “해외 연행은 해당국의 주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라면서 “해외연행이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기록이나 증언은 없지만 박 대통령의 철저수사 지시에 의해 중정 차원에서 결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진실위는 “보존돼 있는 기록에 의하면 서독지역 연행자 전원이 자진 귀국한 것으로 돼있고 여러 증언들도 형식상 임의동행 형식을 취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도 “다만 일부는 폭력 등 강압적 분위기속에서 불가피하게 한국행에 동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가혹행위 의혹과 관련, 진실위는 “수사 관련자들은 동백림사건이 자수자의 진술 등에 의해 실체가 너무 명백하고 충분해 피의자들이 순순히 실토함으로써 가혹행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며 부정하고 있지만 당시 위협, 잠 안재우기, 구타 등은 있었을 수 있다는 증언 등을 종합하면 심리적 위협 등은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특히 “진술의 구체성, 일관성 등으로 미루어볼 때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 중 최소한 14명의 주장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진실위는 이 밖에 당시 재판에 독일과 프랑스 등 관련국들이 참관했고,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나름대로 공정성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흥미로운 것은 내부 문서에서 중정이 재판진행 중 검찰과 재판부에 금품을 제공하려고 계획했던 것으로 확인된 점”이라고 밝혔다.

진실위는 그러나 “이 계획이 실제 집행됐는 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윤이상 선생의 경우, 북한으로부터의 금품 수수와 방북, 주변인사들의 동베를린 소재 북한대사관 방문 주선 등 실정법을 위반한 점은 재판과정에서 본인도 인정했지만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독일에 거주하는 그를 연행해 귀국시킨 것은 불법적인 행동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진실위는 지적했다.

진실위는 “당시 남북간 대립상황을 고려할 때 중정이 이를 국가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 사건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독일.프랑스.미국.오스트리아 등 외국으로부터 30명의 용의자들을 연행해 온 것은 해당국의 주권과 국제법을 무시한 불법행위로 이 사건이 처음부터 잘못된 사건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진실위는 “해외 거주 관련자에 대한 불법연행, 조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 간첩죄의 무리한 적용과 사건외연 및 범죄사실의 확대과장, 동백림 사건의 민비연에 대한 확대 적용 등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면서 “이에 대해 정부는 관련자에게 포괄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위는 이번 조사를 위해 3만4천169장에 달하는 국정원 보유자료와 4만3천529장의 다른 기관 보유자료, ‘김형욱 회고록’ 등 공개자료 30여종과 당시 신문기사를 검토한 것은 물론 사건 당시 중정 및 군 방첩대 직원, 관련자 및 유족 등 46회에 걸쳐 47명과 면담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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