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전대통령 어디까지 개입했나

동백림사건 연루자의 일부가 대북 접촉 등 국내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간첩단으로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부풀려지는 과정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어디까지 개입했을까.

사건이 불거진 시점이 장기집권을 위한 국회 의석수 확보와 1967년 6.8총선에서의 부정의혹에 따른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처하기 위한 ‘모종의 카드’가 필요했던 시기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은 사건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주권침해 시비를 야기해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던 사건 연루자들의 해외연행을 박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는 지 여부가 관심의 대상이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보고와 승인과정에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서독과 프랑스 등으로부터 아무런 양해없이 관련자들을 직접 연행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로써 해당국에 대한 주권침해라는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련자들을 해당국 몰래 연행한 직후인 1967년 6월말 서독정부는 한국수사관의 서독내 체포활동을 주권침해로 간주해 해명과 함께 원상회복 등을 요구했고, 프랑스정부도 7월초 ‘외교관계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침해’라며 공식 항의해왔다.

진실위는 우선 “해외연행이 박 전대통령의 직접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기록이나 증언은 없다”며 “대신 박 전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증언은 있기 때문에 이런 지시에 의해 중정 차원에서 결행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동백림사건에 대한 중정의 수사착수는 당시 박 대통령이 1967년 5월17일 대학교수였던 임석진씨와의 직접 면담을 통해 ‘고백’을 들을 직후라고 진실위는 밝혔다.

박 대통령은 당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철저히 수사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실위는 “우방과 주권침해 시비를 가져올 연행을 최소한 대통령에게 보고.승인 받지않고 중정 독자적으로 추진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해 박 대통령이 수사착수 지시 뿐 아니라 불법해외연행 사실을 사전에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 같은 진실위의 판단은 당시 박 대통령이 동백림사건에 구체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해외 불법연행과 관련해서는 박 대통령이 뒤늦게 알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당시 정부가 서독과 프랑스 정부로부터 항의를 받은 지 채 한 달도 안돼 피연행자들이 자유의사로 귀국했다는 해명과 함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하는 등 신속하게 대처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후 정부가 주한 독일 및 프랑스 대사 등에 대한 공판 참관을 허용함으로써 주권침해 시비를 최대한 가라앉히려 한 점도 불법행위에 대한 사과의 의미는 물론 최고지도자 차원의 불법행위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진실위의 이날 발표는 동백림사건에 대한 최초수사착수 지시와 해외연행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중정이 박 대통령의 포괄적인 수사지시에 의해 독단적으로 ‘침소봉대’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쪽으로 일단 결론난 셈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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