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씨, 보병 아닌 ‘민경부대’ 출신 ‘경비대’에 사살됐을 것”

고(故) 박왕자 씨에게 총격을 가한 북한군은 군사시설을 지키는 일반 초병이 아닌 ‘민사행정경찰대(민경부대)’에서 차출해 구성한 ‘금강산경비대(경비대)’ 소속 군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2군단 직속 민경부대에서 근무하다 2002년 DMZ를 통해 귀순한 주성일 백두한라회장은 15일 ‘데일리엔케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박 씨가 피격된 후 숲속에서 ‘3명’의 군인이 뛰어 나와 박 씨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는 이인복(23.경북대 사학과2)씨의 증언을 감안하면 이들은 인접 군사시설의 초병이 아닐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주 회장은 “북한의 ‘금강산경비대’는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제1선 경계를 담당하는 9개의 ‘민경부대’에서 차출한 병력으로 구성된 부대”라며 “이에 따라 금강산경비대는 민경부대와 근무원칙이 똑 같다”고 설명했다.

주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11일 새벽, 박 씨가 해안가에 군사경계지역을 구분하기 위해 쌓아둔 1.5m 높이의 모래언덕을 넘어 약 1km 거리에 위치한 북한 초소의 일반 초병에 발견돼 사살된 것이 아니라, 그 중간 지점에서 야간 매복 중이던 민경부대 출신의 경비대원들에 의해 총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는 “민경부대에는 ‘방어’라는 개념이 없으며, 유사시 ‘즉각 대응’을 위해 최소 전투 단위를 ‘3인 1조’로 편성한다”며 “매복이나 순찰도 3인 1조로 운영되는데, 이는 일반 보병부대뿐 아니라 두만강·압록강 지역의 27여단 국경경비대조차 ‘2인 1조’로 운영되는 것과 차별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포탄까지 쏘며 정지 경고를 했다’는 북측의 해명과 ‘총성 2발 밖에 듣지 못했다’는 이인복 씨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는 것에 대해 “일반 보병의 경우 ‘공포탄 경고’를 거쳐야 실탄 사격을 시작할 수 있지만, 경비대는 ‘공포탄 경고’를 생략하고 바로 실탄 사격을 들어갈 수 있는 근무수칙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한 관광객들이 경계지역을 처음 넘어간 것도 아니고 그동안 이와 같은 일이 여러 번 있었지만 북한군이 총격을 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남한 관광객을 향해 공포탄을 생략하고 실탄을 사격한 것이 사실이라면 치밀하게 계획된 사건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주 회장은 또 “북한의 일반 보병부대 군인들의 경우 민간인을 조준사격을 하는 근무수칙을 갖고 있지 않으며, 남북 간 정치문제로 확산될 것이 분명한 ‘남한 민간인에 대한 총격’ 여부를 단독으로 판단할 수준도 못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5월에도 충북도청 직원인 A씨(51.5급)가 사무관 교육과정의 하나로 금강산 관광지를 찾았다가 북한군 초소에 억류됐지만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A씨는 오전 5시 30분경에 온정각 방향으로 조깅을 하다가 북한초소에 30분간 억류됐으나, 당시 A씨를 연행했던 북한 초병은 2명이었으며 총을 갖고 있었지만 호루라기를 불며 A씨를 제지했다.

주 회장은 박 씨가 등 뒤 가슴과 둔부에 정확히 피격을 당한 것과 관련, “AK-47 소총을 갖고 그 정도로 명중시키려면 최소 100미터 이내의 거리에서 특급사수만이 명중시킬 수 있다”며 “이 정도의 사격기술 역시 북한군 일반 보병의 수준을 뛰어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측의 해명과 달리 근접 거리에서의 총격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그는 “만약 북한이 특정한 정치목적에 따라 한국 민간인에 대한 체포나 구금, 처형 등이 필요했다면 금강산 관광지가 최적지였을 것”이라며 “금강산 관광지에는 사상적·기술적으로 북한의 최고 정예 군인들이 포진해 있고, 한국의 관광객들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북한 강원도 지역 00군단에서 근무하다 2005년 입국한 이명호(가명) 전 상좌(중령급)는 “북한군의 특성상 한국 관광객에 대한 사격 여부를 경계 초병이 결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금강산경비대의 경우 각 초소와 부대 상황실이 직통전화로 연결되어 있다”며 “한국 관광객에 대한 사격여부는 군단장 급 지휘관들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에서는 금강산을 드나드는 한국 사람들 존재 자체가 매우 중요한 ‘정치적 문제’”라며 “한국에서는 ‘북한의 군부’니 ‘강경파’니 하면서 말들이 많은데 이것은 오직 김정일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금강산관광이 시작되기 직전인 1998년 11월 인민군 경보병부대에서 차출한 군인들로 금강산경비대를 조직했으나, 이들의 폭력성이나 관광객들에 대한 금품 수수가 구설수에 오르자 북-중 국경지역의 ‘국경경비대’에서 차출한 군인들을 새롭게 재편했었다.

이후 다시 사상적·도덕적 무장이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민경대대에서 인원을 차출해 ‘금강산경비대’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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