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9일 본회의를 열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놓고 표결한다. 탄핵안은 전날(8일) 오후 2시 45분 본회의에 보고됐으며, 국회법에 따라 24시간이 지나서부터 표결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정시(9일 오후 3시)에 본회의를 바로 시작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00명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가결시 박 대통령의 직무는 곧바로 정지되고,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행한다.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도 일단은 ‘가결’을 예상하고 있는 눈치다. 야당과 무소속 의원 172명 전원은 탄핵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이미 표명한 상태다. 여당 내 중립 성향 및 비주류 의원들의 선택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황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면 앞으로 대통령 비서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것은 물론, 국무회의도 직접 주재하게 된다. 그간 총리실은 탄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공백 없는 권한대행에 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일종의 ‘대통령 권한대행 매뉴얼’을 만들어뒀다는 것인데, 총리실과 외교부 등 유관 부서들은 아직 “현 단계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는 말로 자세한 설명을 피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체계로 들어선 뒤 황 총리가 가장 먼저 살펴야 할 분야로는 외교·안보가 꼽힌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공백이 발생할 시 북한의 기습 도발 등 예기치 못한 혼란이 불거질 수 있을뿐더러,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정상외교에도 신뢰 추락 등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중 개최가 예상됐던 한중일 정상회담만 하더라도 아직까지 날짜가 확정되지 않아 사실상 무산될 분위기다. 국내 정국 혼란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의심의 눈초리가 많다.
황 총리는 12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고건 전 총리가 권한대행 체제를 수행했던 63일의 사례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 전 총리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 의결 전부터 ‘전군 지휘경계령’을 내리는 등 북한의 기습 도발을 사전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고 전 총리는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국 주재 각국 대사들에게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황 총리도 8일 국회가 본회의에 탄핵안을 보고한 오후 2시 45분보다 1시간 30분 앞서서 “어려운 국정 상황을 틈탄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외교·안보·경제 등 주요 분야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황 총리는 “국회의 탄핵 표결 등 여러 정치 상황으로 국정의 불확실성이 크다”면서도 “내각은 흔들림 없이 주어진 소임에 매진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8일(현지시간)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은 자제한 채 한미동맹은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라 강조했다. 엘리자베스 트뤼도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이는 한국 국민들의 내부 문제이고, 따라서 한국 정부에 물어보길 바란다”면서 “그러나 한국 정부와 우리의 관계는 강하고 깊고 견고하다. (한미관계에는) 어떤 영향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북한 노동신문은 8일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과 관련해 한국 사회의 ‘여론’을 소개한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신문은 이날 ‘분노한 남녘 민심의 촛불은 더욱 세차게 타올라 사대매국의 아성을 불태워버릴 것이다’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의 한 인터넷 언론은 사설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지 않는다면 촛불은 광화문 뿐 아니라 여의도까지 불태울 것’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