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탄핵안은 재적의원 300명 중 299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찬성 234명과 반대 56명, 기권 2명, 무효 7명으로 가결 처리됐다. 불참한 한 명은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건 지난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 때 이후 두 번째다. 국군통수권부터 계엄선포권, 조약 체결 및 비준권 등 헌법과 법률상의 모든 국정운영 권한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위임된다.
이제 공은 헌재에게 넘어갔다. 탄핵심판 절차는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소추의원 자격으로 탄핵의결서 정본과 사본을 각각 헌재와 박 대통령에 제출하면 개시된다. 헌재는 탄핵의결서를 접수하는 즉시 전자배당 방식으로 주심 재판관을 지정, 탄핵심판 심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탄핵심판 사건은 박한철 소장을 포함한 재판관 9인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재판부에 곧장 회부된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재의 결정은 최장 180일 이내에 내려지게 돼 있다. 다만 박한철 소장이 내년 1월 31일이면 퇴임해야 하는 데다, 헌재 결정이 미뤄질수록 국정 공백이 장기화될 우려도 있어 2, 3개월 내에 결정이 내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난 2004년 3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당시에는 헌재가 63일 만에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가 국회의 탄핵 가결 결정을 수용하면 헌법에 따라 박 대통령은 즉시 파면되고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헌재가 국회 결정을 기각하면 탄핵안은 즉시 파기되며 박 대통령은 국정에 복귀하게 된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대통령 대행체계에서의 국정 운영 방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일찍이 총리실은 황 총리의 대행 상황을 대비해 외교·안보·경제 분야에서의 ‘대행 매뉴얼’을 제작,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총리는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국정 공백을 메우는 데 가장 먼저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국내 문제에 있어선 황 총리도 현상 유지에 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북핵 공조 및 정상외교 등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황 총리라도 짊어지고 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이에 황 총리도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엄중한 상황에서 북한이 국내혼란을 조성하고 도발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군이 비상한 각오와 위국헌신의 자세로 임무수행에 만전을 기함은 물론 감시 및 경계태세를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고 국방부가 전했다. 이에 한 장관은 즉시 전군에 감시 및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전군 주요지휘관 화상회의를 소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도 황 총리의 권한 대행 핵심 과제로 외교·안보 분야를 우선 꼽고 있다. 연일 점증하는 북핵 위협과 미국 새 행정부 등장에 따른 외교 지형 변화에 차질 없이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데일리NK는 국내 외교·안보 전문가들에게 ‘황 총리 대행체계’가 나아가야 할 로드맵을 물었다.
◆ 신각수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국제법센터 소장 (前 주일 대사)
지금은 일종의 헌정 위기다. 헌정 위기로 인해 지도부 공백이 생기면 외교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어 우려된다. 특히 고려해야 할 사항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이다. 대통령 대행체제 하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관련 사안에 우리의 국익이 반영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해야 할 것이다.
대북정책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폐기하고, 새로운 대북정책을 내세울 것이다. 물론 아직까진 미완성 상태다. 이럴 때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얘기해 새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앞서 말했듯 지도부의 공백이 그러한 필요들을 제대로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우려된다. 대행체제에서도 국익 확보를 위해 외교적인 역할을 해나가는 데 있어 서로의 지지가 필요할 때다.
◆ 송대성 건국대 초빙교수 (前 세종연구소장)
(국정 혼란 시기에 접어들면서) 대통령이 계셨어도 어떻게 보면 거의 (국정 운영에) 불능 상태이지 않았나. 대통령의 역할이 거의 마비된 상태였다. 탄핵이 됐든 안 됐든 시스템 자체가 운영이 안 되는 것이다. 다만 앞으로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국가 기둥이 있다. 안보 기둥과 경제 기둥, 그리고 국민정신이라는 기둥이다. 지금 가장 심각한 건 어쩌면 국민정신이다. 다른 기둥이야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해도 각료들이 유고 상태에서의 매뉴얼에 따르면 된다.
이미 각 부처들마다 주어진 과제도 많다. 특히 북핵이라는 과제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관련된 것이다. 북한의 실체를 분명히 알고 대북정책을 이끌어나가야 하며, 새 정부 출범을 앞둔 미국과의 관계 등 동맹국들과의 공조에도 주력해야 한다. 이런 일들은 대통령의 유고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돼야 한다. 부처별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현안 과제들을 재정비해야 한다.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국 국민 통합이다. 탄핵 역시 결국 대통령이 제 소임을 다 하지 못하니 나라의 발전을 위해 택하자는 것이다. 벌써 황 총리에게도 사퇴하라는 말들이 많은데, 그가 대행체계를 잘 끌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먼저 아니겠는가. 정치인들이 정권욕에 빠져서 더 큰 혼란을 부추기려는 행태를 보인다면, 국민은 이를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
◆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새 정부가 나오게 될 내년 봄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에서도 새 행정부가 출범하고, 이에 따라 북미관계도 좌우될 수 있는 시기지 않나. 북한도 트럼프의 대북정책 방향에 따라 온건이냐 강경이냐 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이렇듯 내년 정세가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인 만큼, 여야가 하루빨리 초당적으로 대처해 외교안보 분야를 잘 다듬어갈 필요가 있다. 핵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남북 대화가 빨리 재개됐으면 한다. 분단 상황에서도 평화적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대북정책 방향을 잡아야 미국의 트럼프도 그에 맞춰 대북정책을 만들어갈 것이다. 정부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국가 차원에서 체제를 재정비하고 주변국들에게도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전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황교안 총리가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최소한의 역할에 그치지 않을까 싶다. 이 시국에 대행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특히 국내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남북 간 충돌을 방지한다든가 하는 최소한의 안보 문제 정도는 다듬어가야 할 것이다.
◆ 홍성기 아주대 교수 (철학박사)
외교안보 분야에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제 와서 (탄핵 국면을) 어떻게 할 방법은 없지 않나. 정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북한이 언제든 도발할 가능성은 충분할 테니 이에 대응해 대비를 하는 것이다. 외교 분야에서는 일단 중국이 복병이다. 중국은 이미 박 대통령이 레임덕이 됐다고 본 지 오래고, 그간 사드라든가 한미동맹 강화에 대해서도 지속 불만을 제기해오지 않았나. 지금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겠다.
이럴 때 황 총리도 새로운 시도를 하긴 어려울 것이다. 사실 현상유지가 본인의 임무라고 봐야 한다. 다만 북한의 도발과 같은 건 현상 유지를 넘어가는 상황이니만큼, 그 때는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한일 간 군사정보협정을 통해 정보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우려되는 건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정치적인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황 총리도 물러나라든지 하는 말들이 벌써 나오고 있지 않나. 이런 시국에서 국민 통합이 이뤄질 기미는 더더욱 보이지 않아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