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제68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을 권유하는 연설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발언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나 현실성이 결여된 감정적 발언으로 폄하하기도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 대통령의 탈북 권유 발언은 남북관계에서 항상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대응에만 그쳤던 한국의 대북전략이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취함과 동시에 북한을 비호하는 중국 정부의 주장이 지니고 있는 맹점을 찌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간 남북관계는 북한의 주도권에 우리 정부가 끌려가는 양상을 보여 왔다. 북한이 무력도발을 감행할 때마다 우리 정부는 대응책을 놓고 분주히 움직였고, 북한이 유화공세를 펼칠 때에도 정부는 그 의도를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이번 박 대통령의 탈북 권유 발언은 과거 행태에서 벗어나 우리 정부가 대북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박 대통령의 인식은 북한 정권과 주민을 확연히 구분해서 다루는 것이었다. 이 같은 사고는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기념 연설에서도 나타났다. 당시에는 북한 주민들을 향해 “통일 시대를 여는 데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수위가 높아졌다. “북한 주민 여러분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것”이라며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한민족은 하나라는 전제 하에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조국인 대한민국으로 오라는 메시지다. 여기에는 북한 주민뿐 아니라 군인들에게도 자유와 희망을 약속하며 김정은 체제를 버릴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한 측면이 강했다. 북한 주민이나 군인들까지도 자유와 권리를 선택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의도가 북한 주민들에게 온전하게 전달되는 경우 그 파장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주민들의 동요가 가시화하면 집단 탈북이나 엘리트들의 한국 망명 등 최근의 탈북 추세를 뛰어넘는 북한판 엑소더스(Exodus)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 북한 당국이 진솔한 자세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경우 체제의 자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연설은 우리 정부가 보여준 초강경 대북 주도권이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탈북 권유 연설은 중국 주장의 모순을 지적하는 의미도 지닌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유엔안보리 결의안 2270호의 세부 조항을 조율할 당시 북한 주민들의 ‘민생 목적’을 위한 예외조항의 허용을 주장하며 그것을 관철시켰다. 그런데 이번 박대통령의 탈북 권유 연설도 북한 주민들의 새로운 삶과 희망, 즉 민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중국은 이에 반대할 명분이 없어진다. 더 나아가 탈북민에 대한 입장도 전향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의 90% 이상은 중국-태국 루트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헌데 중국은 현재 탈북 주민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대체로 중국 내 한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민에게만 한국행을 허용하고 있다. 이 같은 비인도적 처사는 국제협약 위반이며 시정이 불가피하다. 중국정부가 실제로 북한 주민들의 민생을 우려하고 있다면 앞으로는 노골적으로 탈북민들을 강제북송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사태로까지 상황이 악화되는 걸 두고만 볼 수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탈북 권유가 효과를 내는 경우 대량 탈북 사태가 벌어지면 동북 3성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공개적으로 내세운 북한 주민들의 민생을 위한다는 발언은 향후 탈북민들에 대한 입장 변화를 실천해야 하는 강제수단이 될 것이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중국의 의도는 북한 주민들의 민생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중국은 대북정책을 대미정책의 하위변수로 인식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대북정책을 지렛대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관한 논란이 불거진 지난 8월 이후 대북 무역을 급증시키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갑자기 숨통을 틔워준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현재 유엔안보리에서 조율하고 있는 새로운 대북 제재안에도 부정적인 인식을 나타내고 있으나 박 대통령의 연설 이후 북한을 비호할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야 하는 난제에 빠질 것이다.
중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체제위기는 여느 때보다 엄중하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강경한 제재 의지를 들 수 있다. 미국은 최근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장비와 재료 등을 수출한 의혹을 받는 중국의 중견기업 훙샹그룹에 대한 정보를 중국 당국에 넘겨 조사하게 만드는 등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미국은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했고 최근에는 북한을 국제금융망(SWIFT)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방안을 꺼내들었을 뿐 아니라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의 실행에까지 팔을 걷어붙이며 대북 경제제재의 수위를 높였다. 미국 내에선 얼마 전까지 금기시되던 군사제재까지 거론하며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을 넘어 예방타격 카드(preventive strike)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 3일부터 사전 훈련이 시작되고 10∼21일 본 훈련이 진행되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 연합공군훈련인 ‘레드 플래그(Red Flag)’에선 한국과 미국의 전투기가 북한의 핵시설과 김정은의 집무실 등 핵심시설을 정밀 타격하는 훈련이 실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파상적인 미국의 공세에 따라 북한 내에선 체제 와해 움직임이 시작됐다. 지난 4월 해외식당 여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에 이어 8월에는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일가족이 망명했을 뿐 아니라 9월 29일에는 북한군 병사까지 군사분계선을 직접 넘어 귀순한 바 있다. 일반 주민, 엘리트 간부, 군 병사 등 실로 북한의 전 계층에 걸쳐 체제이탈 분위기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총체적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 증거는 박 대통령의 탈북 권유 연설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난다. 북한은 지난 3일 이후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을 동원하여 박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탈북 권유 연설과 선제타격론 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만일 북한 체제가 견고하고 자신이 있다면 우리 대통령의 연설 내용에 대해 그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를 보라. 북한 매체들에서 시정잡배들이나 쓰는 원색적인 용어로 박대통령을 비난해도 우리 정부가 북한처럼 저급한 수준으로 전락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그만큼 우리는 성숙하고 강하다는 증거다. 그만큼 북한은 위태위태하고 아프다는 증거다. 북한이 정녕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상 대국’이라고 한다면, 박 대통령의 탈북 권유 연설 때문에 그렇게 호들갑을 떨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박대통령의 발언이 최고존엄을 모독했다며 스스로 약체 사상을 지녔으며 위기의식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는 점을 고백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탈북 권유 연설을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가. 비판자들은 폐쇄사회인 북한에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구상은 미국 정부와의 공조를 통해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다. 최근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정보·인권 공세를 강화하는 정책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대북 정보유입 등 3개 분야에 265만 달러(약 30억 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세부항목별로는 대북 정보유입·반출, 북한 내 정보 유통 촉진 사업에 160만 달러, 북한 인권 증진과 책임 규명 촉진 사업에 50만 달러, 북한의 정치적 개방을 이끌어내는 프로그램 기술개발 사업에 55만 달러를 각각 책정했다. 가히 ‘정보폭탄’ 이라고 할 만큼의 위력을 지닌 조치다. 여기에 우리 정부의 대북확성기 방송의 확대 및 주파수 품질 개선, 민간단체들의 꾸준한 대북 풍선 날리기 작업이 가미된다면 북한 주민들의 의식에는 느리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반드시 생겨날 것이다.
박 대통령의 국군의 날 탈북권유 연설은 단순히 북한의 체제붕괴를 조장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라는 인식 하에 대한민국의 북반부를 불법적으로 점령한 북한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강한 의지와, 북한 정권의 불법 점령 하에 고통 받고 신음하는 우리 국민들을 자유대한으로 구출해내야 한다는 신념의 총체적 발로인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을 외면하거나 부정한다면 남북한을 한민족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자유와 인권을 말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