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낙제인가 합격인가? 북한의 고강도 대남 위협에 끌려가지 않고 확고한 대북 원칙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합격이란 평가가 많다. 특히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도 ‘대화를 유도해 북한의 변화를 이끈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올곧게 추진한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있느냐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해 박 대통령의 취임식(2월 25일) 전 제3차 핵실험(2월 12일) 감행한 이후 판문점 통신선 일방 차단, 핵실험에 대한 유엔 대북제재와 한미연합훈련에 반발해 정전협정 파기 등 한반도의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급기야 개성공단까지 중단시켰다.
4월 이후 북한은 돌연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기 시작했고 5월 최룡해 방중 이후 다시 남북대화가 진행되면서 개성공단이 재가동됐다. 이 과정에서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합의하기도 했지만 북한은 추석 연휴가 한창이던 지난 9월 21일 돌연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 전망이 불투명하자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일방 연기한 것이다.
이후 북한은 대남 비방전에 주력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실명 비난하는 등 인신공격성 비난에 나서며 우리 정부를 ‘유신정권’ ‘파쇼정권’으로 매도하기도 했고 각종 말폭탄으로 대남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박 정부는 북한에 당근과 채찍 등 일관된 대응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녹여냈다.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북한에 끌려가지 않으면서도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끌어내는 등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주변국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등을 설명하고 북핵 도발 등 위기확산을 막는 데 주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년간 총 5차례의 해외 방문을 포함해 모두 30여 차례의 정상외교에서 대북 문제에 있어 국제사회의 동의를 이끌어 냈다.
특히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에게 ‘북핵 불용’이라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대북정책과 관련해 일치된 인식을 공유, 북한에 ‘도발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대응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단호하고 원칙적인 대처’로는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줄 수는 있지만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원칙적 대응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유연한 대응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핵문제에 있어서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이와 관련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고 북한이 주변국에 ‘대화제의’를 주장하면서 사실상 비핵화를 거부하는 북한식 ‘시간끌기 전략’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또한 최근 소폭 개편, 설치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및 실무기구인 사무처 등을 통한 장성택 처형 이후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주변국 상황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그동안 통일·외교·국방 부처에서 다소 혼선을 빚었던 것을 감안해 안보 분야에서 ‘대북정책 컨트롤타워’를 정립하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NSC가 남북관계의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진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전문가들은 대화를 통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과 더불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 북한에 지속적인 ‘공’을 던져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 정부는 장성택 처형으로 인한 북한 내부 변화를 예측하면서 그에 맞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데일리NK에 “2013년 김정은은 집권 2년 차에 눈에 보이는 성과가 시급했고 유일영도 체계를 세워야 하는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서 “2014년 북한은 미국, 중국 등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남한의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우리 정부는 김정은이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감행할 수 있는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는 것과 미국과 중국과의 협력 아래 북한을 핵 폐기 과정에 진입시키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남북 간 비정치분야, 즉 경제 분야의 접촉을 늘리는 방안도 구상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은 “대화를 통한 내부 변화 유도는 북한 체제 특성상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 올해 다시 확인됐다는 측면에서 이제 우리 정부는 외부 강제력과 북한 내부 변수를 통한 변화를 강구해야 한다”면서 “장성택 처형으로 내부 권력 구도가 요동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민들의 정치 불안을 활용한 변화를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송 소장은 이어 “외교적인 노력과 함께 공격적인 대북 심리전 강화로 북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면서 “2만 5000여 명의 탈북자들도 적극 활용하면서 북한 전문 NGO를 통한 적극적인 심리전을 진행하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