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70년대초 자위대원 보내 한국군사정세 살펴”

일본은 최소한 1970년대 초반까지 자위대원들을 민간복장으로 한국에 보내 매달 한국의 군사상황을 정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 국무부가 지난주 펴낸 ’미국외교사료집 1969-1976년 제17권’ 가운데 중국(1969-1972) 편에 따르면, 중국은 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미·중수교 직전 헨리 키신저 당시 미 국무장관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간 회담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키신저 장관은 나중에 이것이 사실이라고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1971년 7월과 10월 2차례의 키신저-저우언라이 비밀대화록을 포함한 이 사료집에 들어있는 문서들에 대한 비밀해제 작업은 1999년부터 시작, 2005년 완료됐다.

이 과정에서 비밀대화록 등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일부 학자들의 학위논문 등을 통해 연구돼오고 있다.

저우언라이는 1971년 7월 9,10일 키신저와 대화에서 일본의 군사 팽창주의와 특히 한국과 대만에 대한 일본의 군사 재진출 가능성을 강하게 우려하는 가운데, 특히 이틀째 대화에서 “일본 자위대가 매달 요원들을 민간복장으로 한국에 보내 한국 군사 상황을 살피도록(look into)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우언라이는 “일본 군대 사람들은 한국과 대만이 일본 영토가 아니지만 두 나라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그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키신저는 일본 자위대원의 한국 군사상황 정탐 사실에 대해 “솔직히 모르는 일이다. 알아보겠다”고 말했으나, 같은 해 10월29일 닉슨 대통령에게 2차례의 방중 결과와 이듬해 닉슨 대통령의 방중 준비상황을 보고하면서 “내가 지난 7월이래 알아봤더니 저우언라이의 말이 맞다”고 설명했다.

키신저는 이 보고에서 그러나 이 일을 한국 정부도 알고 있는지, 한국 정부와 양해된 한·일간 군사협력 차원의 일인지, 미국의 후속조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선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저우언라이는 1971년 키신저와 2차례 대화, 이듬해 2월23일 닉슨과 대화, 같은 해 6월22일 다시 키신저와 대화에서, 당시 닉슨 행정부가 닉슨독트린에 따라 추진하고 있던 주한미군과 대만주둔 미군의 철수가 완료되면 일본군이 미군 대신 한국과 대만에 진주할 가능성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거듭 표시했다.

저우언라이는 닉슨과 대화에선 역시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얘기 도중 “일본군이 한국을 침략토록 허용하면 긴장이 조성될 것이다. 키신저 장관은 일본이 몇번 시도(some attempts)했었다고 인정했다”며 다시 일본 자위대원들의 한국 정탐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는 이런 활동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으며, 미국도 그러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닉슨은 “일본의 한국 개입은 미국과 중국 양측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일본의 개입을 배제할 수 있다고 우리가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도까지 그렇게 못하도록 우리의 대일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키신저는 71년 10월29일 닉슨에게 방중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저우언라이 총리가 (한반도에서) 일본군을 배제하는 게 지상의(paramount) 일이라고 거듭 강조한 데 대해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것이나, 북한이 공격을 하면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저우언라이는 1972년 6월 키신저와 대화에선 “주한미군 철수 후 곧장 일본이 한국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이러한 우려 때문인지 주한미군 철수에 “일정 기간이 필요하며, 이 점에서만은 한국과 대만 상황이 같다”고 주한미군의 점진적 철수에 대한 양해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키신저는 “우리는 일본이 한국에서 군사역할을 하도록 권장하지 않을 것이며, 사실은 반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키신저는 이어 “따라서, 우리가 궁극적으론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이는 한편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이 진주(move in)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저우언라이 총리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대답했다.

저우언라이와 키신저의 이러한 대화 내용은 중국이 주한미군의 완전철수를 요구하면서도 ’점진적’인 방식을 이해한다는 양측간 양해를 확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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