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외무상이 11일 6자회담과 관계없이 ‘백지상태에서’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밝혀 그 배경이 주목된다.
마에하라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핵 문제를 둘러싼) 6자 회담 개최의 시비에 관계없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면서 “재작년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만큼 향후 (북한과의) 논의는 백지상태로 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 당시 평화선언을 확인하면서 직접 대화를 확실하게 진전시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마에하라 외무상은 앞서 지난 4일 “올해 하나의 큰 테마로서 일본과 북한간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서 “일본의 주권에 관련된 납치자 문제도 있기 때문에 납치와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 양국간 직접대화가 가능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2년 반 이상 북한과의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일본 내 북한관련 최대 현안인 납치자 문제를 다소나마 성과를 내오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최근 대화공세에 호응, 대화재개 분위기를 활용해 비핵화 관련 목소리를 높이는 동시에 국내정치적 문제 해결 의도도 읽혀진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0일 마에하라 외상의 대화 제안에 대해 “긍정적 움직임”이라는 논평을 냈다. 통신은 “신세기의 평화와 안정으로 나아가는 시대적 흐름과 국가관계의 발전에 부합한다”면서 “우리는 우호적으로 접근하는 국가들과는 언제라도 만나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 정부의 태도는 납치자 문제가 진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북한에 이용만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남한은 북한의 대화공세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본의 대화 재개 움직임에 따라 자칫 한미일 공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산케이신문은 12일 “미국과 한국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에 구체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마에하라 외상의 ‘백지상태로 임한다’는 자세와는 대비된다”고 전하고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불신을 사게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배정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실제 일본이 북한과 대화해서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겠지만 납치자 문제를 놓고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발언 같다”면서 “특히 북한이 대화공세를 벌이는 등 남북관계가 진전될 기미를 보이자 얼어 있는 북일 관계 개선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 연구위원은 또 “미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일본도 6자회담 재개 분위기를 조성시키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와 관련, “북일간 2년 반 이상 대화가 없었고 납치자 문제와 관련 진전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본이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이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고위 당국자는 “한미일은 6자회담 재개 여건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전제가 남북대화라는 것을 일본이 동의하고 있다”면서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도 직접 접촉이 가능한 만큼 그런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