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DMZ 평화지대’ 제안, 현실성 있을까?

문 대통령 “북, 9.19 군사합의 단 한 건도 위반 안해”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후(현지시간)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

문재인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유엔 회원국들에게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북미 간 비핵화 대화 재개를 앞두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면서 비핵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진행된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판문점과 개성을 잇는 지역을 평화협력지구로 지정해 남과 북, 국제사회가 함께 한반도 번영을 설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내고, 비무장지대 안에 남·북에 주재 중인 유엔기구와 평화, 생태, 문화와 관련한 기구 등이 자리 잡아 평화연구, 평화유지(PKO), 군비통제, 신뢰구축 활동의 중심지가 된다면 명실공히 국제적인 평화지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할 경우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구축해 국제 기구와 함께 제도적으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구상이다. 북한은 지난 2월 제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제재 완화’보다 ‘체제 안전’ 문제를 더 강하게 요구해왔다.

리용호 외무상은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기자회견에서 “중요한 문제는 안전 담보 문제이나 미국이 아직 군사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므로 제재 해제를 (비핵화) 상응 조치로 제안했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까지 한미 양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안전보장의 구체적 방안이 무엇인지 수차례 협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2일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 방안에 대해 한미 양국이 공조를 통해 분석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는 방안을 담기위해 고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의 DMZ 평화지대 구축안은 비핵화 상응 조치로서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면서 동시에 남북 간 경제적 협력을 염두에 둔 구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DMZ평화지대화 구상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무장지대에는 약 38만 발의 대인지뢰가 매설돼 있는데, 민통선 이북 지역까지 포함할 경우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지뢰가 매설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국군이 단독으로 비무장지대에 매설돼 있는 지뢰를 제거하면 1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유엔지뢰행동조직 등 국제사회와 협력하면 단숨에 비무장지대를 국제협력지대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010년 국방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작업으로 휴전선 이남의 지뢰를 제거할 경우 489년이 걸린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현행 방식으로 비무장지대의 완전한 지뢰 제거는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보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또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끊임없는 정전협정 위반이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때로는 전쟁의 위협을 고조시켰지만, 지난해 9.19 군사합의 이후에는 단 한 건의 위반행위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9.19 군사합의 위반인지 아닌지를 두고 국내에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북한이 9.19 합의를 준수해 왔음을 밝히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을 두둔한 셈이다.

이날 문 대통령보다 앞서 유엔총회 연설을 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잠재력을 언급하며 비핵화 조치를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정은에게 이란과 마찬가지로 그의 나라도 엄청난 잠재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며 “(잠재력의) 실현을 위해 북한은 비핵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상당 시간을 한반도 문제에 할애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연설에선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언급이 간략하게 이뤄졌다. 또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비핵화 관련 ‘새로운 방안’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이는 북미 실무협상 재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북한에 자극적인 언급을 삼가고 동시에 북한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참석했던 것과 달리 북한은 올해 유엔총회에는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도 미국과의 입장을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 그리고 유엔 총회에서 미국의 공식 입장을 들은 후 비핵화 관련 입장을 내 놓을 것이란 전망이다. 북한은김성 UN 주재 대표부 대사가 총회 마지막 날인 30일 연설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