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후보 대북정책은 왜 그 옛날 물레방아인가?

대통령 후보 간 정책경쟁은 원래부터 경제와 안보가 두 축이었다. 경제가 잘 되어야 안보가 잘되고, 안보가 잘 되어야 경제도 잘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두 이슈를 빼면 대통령 선거는 ‘인기투표’밖에 안 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동안 야권후보 단일화 문제로 경제와 안보 둘다 유권자들의 시야에 명료하게 잡히지 않았다. ‘복지’는 여러 경제이슈 중 하나일 뿐인데 지나치게 부각되었다. ‘경제민주화’도 손에 잡히는 게 별로 없다.


안보는 NLL 논란이 잠시 있었을 뿐 본질적인 북한이슈는 실종 상태다. 북한문제만 해도 핵, 개혁개방, 인권, 평화통일 등의 이슈들이 있는데, 아직 후보간 미래지향적인 논쟁이 별로 없다.


그런데, 지금 불거지지 않고 있을 뿐 안보문제와 관련하여 ‘폭탄’이 한가지 잠복해 있다. ‘평화협정’ 문제다. 평화협정은 지난해 백낙청 교수 등이 ‘2013년 체제’를 들고 나올 때부터 범야권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이슈처럼 되어 있다.


‘범야권’이라고 하면 그 스펙트럼이 다양한 편이다. 민주당 내에 자유, 인권, 민주주의, 공정한 시장, 법치를 중시하는 합리적인 인사들이 적지 않다. 사실 이들이 민주당의 정통파이자 적자(嫡子)들인데, 머리에 든 게 없는 친노 세력들에게 세가 눌려 있다.


이들 정통파 민주세력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면 진보신당 사회민주주의 그룹-친노486-통합진보당-범민련·진보연대 등 각종 종북NL계-남한 내 지하당-평양 세습정권으로 이어진다.


(평양 세습정권은 결코 ‘맨 왼쪽’이 아니라, 이들이야말로 ‘김일성민족 제일주의’와 ‘선군폭력’을 내세우는 왕조적 극우 파시스트들인데, 남한에서만 ‘민족주의 진보좌파’로 위장되어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한반도에서만 나타난 기괴한 현상이다).  


이중에서 정통파 민주세력-사회민주주의 그룹-‘친노 중 좀 나은 사람’을 제외하고 나면 거의 친북·종북 세력이다. 그래서 평양에서 남한 내 지하당에 지시를 내리면 맨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면서 정통파 민주세력까지 영향을 주게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결국 민주당 정통파 세력과 사민주의 그룹이 자신들의 입장과 위치를 견고히 하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이들의 숙주(宿住) 노릇을 해주게 된다. 과거 러시아 볼셰비키가 독일 사회민주당내 좌파들을 이용하여 코민테른 통일전선을 형성한 것과 비슷한 형국이다.    


그래서, 지금 범야권에서 나오는 ‘한반도평화협정’ 문제가 바로 그러한 통일전선 형국과 비슷하다. 친북·종북 세력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이미 내용이 완성되어 도장만 찍으면 되는 ‘한(조선)반도 평화협정문’까지 돌아다니고 있다. 핵심내용은 한반도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 한미군사동맹 파기이다. ☞종북세력 ‘주한미군 내보내는 평화협정 해설’ 전문보기

이들의 평화협정 해설을 보면 북한문제를 잘 모르는,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민족자결주의’처럼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있다. 문제는 종북세력들이 왜 이런 문건들을 만들어 유포시키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후보는 북핵해결과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데서 선후를 구분하지 말고 ‘병행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문후보는 스스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는데, 이 ‘병행하자’는 주장이 바로 ‘악마의 숨겨진 디테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문재인 후보 대북통일정책의 핵심은 ‘한반도평화구상’과 ‘남북경제연합’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6·15, 10·4선언에 따라 남북경제연합으로 ‘통일 과정’에 진입하자는 것이 골자이다. 이중 키워드는 ‘한반도 평화구상’이다.


문재인 후보의 한반도평화 구상 실천 로드맵은, 12월 19일 대통령 선거 후 인수위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 확정→ 한미, 한중 정상회담에서 조율(2013년 상반) → 남북정상회담에서 담판(2013년 하반기) → 각국과 조율(2013년 하반기~2014년 상반기) → 6개국 정상 선언 도출(2014년 상반기) → 정상선언 이행 위한 기구설치(2014년 하반기)의 수순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문제의 핵심 지점은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평화체제 논의’이다.


한반도평화체제는 북한이 핵폐기 과정에 들어가면 6자회담 내 별도의 한반도평화포럼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회담 1단계 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의 핵심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NPT, IAEA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문구는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하였다”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프로세스에 맞추어 한반도평화협정, 에너지 지원 등 워킹그룹을 가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평화체제 논의를 하려면 북한이 NPT, IAEA 복귀, 핵사찰 등 핵폐기 프로세스에 진입하는 조치(행동)에 들어가야 시작되는 것이다. 한미 양국과 6자회담 관련국들은 이 방향에서 지금까지 공동 노력해왔다.


그런데 9·19 공동성명 이후 북한은 2006년, 2009년 두 차례 핵실험을 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핵개발 핑계를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김정일은 9·19 공동성명에 미국이 대북적대시 정책을 하지 않겠다는 문구까지 넣으라고 요구했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지만, 9·19 공동성명을 보면 “미국은 북한에 대하여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문구까지 들어가 있다. 


북한은 핵실험 이후에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왔다. 미국의 지크프리드 해커 박사를 불러서 농축 우라늄 핵개발 시설도 공개하였다. 북한은 이미 9·19 공동성명을 폐기하고 핵 양산(量産)체제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2012년 4월 헌법 개정에서 서문에 ‘핵 보유국’을 못박아 버렸다.


따라서 한반도평화체제를 논의하려면, 9·19 공동성명 이후 관련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해버린 북한이 ‘무엇보다 먼저’ NPT-IAEA 체제에 복귀해서 핵사찰 수용 등 핵폐기로 가는 의미있는 조치로 진입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문재인 후보의 한반도평화구상이 갖는 문제의 핵심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문재인 후보 측은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에서 선후 연계전략을 쓰지 않겠다는 쪽으로 북핵 해결 방향을 수정하였다. 다시 말해, 북핵문제 해결-한반도평화체제 논의의 순서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 핵문제에 진전이 있든 없든 남북 및 6자회담에서 한반도평화체제 논의를 먼저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현실적으로 북핵 해결에서 한국정부가 이른바 ‘균형자(balancer)’라는 이름 하에 미북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취하든가, 북한이 주장하는 ‘선(先) 한반도평화협정’에 동조해주는 ‘남북공조’로 갈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된다.


이 그림은 2002년~2007년 노무현 정부 시기 동안 너무나 많이 보아온 선명한 ‘기시감'(데자 뷔 deja vu) 바로 그것이다.


문 후보의 ‘한반도평화구상’과 ‘남북경제연합’은 ‘희망적 사이클’ 안에서 선순환이 가능한 것이다. 북한의 선(先) 핵폐기 프로세스 진입-한반도평화체제 논의 진전-남북경협-북핵폐기-평화체제-남북경제연합이 순환되는 것인데, 설사 이 순환이 현실에서 가능하다 해도, 선순환(善循環)으로 들어가는 첫 고리는 북한의 의미있는 핵폐기 프로세스 진입이어야 마땅하다. 병행전략은 북한의 대미·대남전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의 핵전략은 1994년 이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듯이, 설사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선(先) 한미의 대북 퍼주기→6자회담→선(先) 한반도평화협정 논의→6자회담장 이탈→농축우라늄·장거리 미사일 업그레이드→다시 퍼주기로 ‘북한식 선순환’으로 물레방아를 돌릴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한미군사동맹 파기’를 선결조건으로 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주장을 반드시 내세우게 되어 있다. 과거 80-90년대에 비해 학생운동권에서 종북친북 세력이 약화되긴 하였으나, 북한의 대남전략은 온존해 있다. 여기에 지난 10여년 동안 얼치기 친북세력의 외연이 확장되어 있다. 이들이 ‘우리민족끼리· 반미(反美) 자주화 투쟁’으로 연결될 여지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 평양의 꼭두각시들이 진입해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향후 ‘한반도 평화협정’ 논란은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화와 남한 내부 정세가 맞물리면서 대형 이슈로 비화할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북한정권과 남한 내부의 종북친북세력이 ‘평화협정’을 매개로 주한미군 철수 총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또 ‘쇠파이프와 죽봉들의 축제’를 불러오고 한국사회의 안정과 진보를 가로막을 것이다.  


문 후보는 이 ‘악순환’을 깰 아무런 전략도 국민 앞에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미 실패로 확정된 노무현 정부 시기 대북정책 담당자들이 그대로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바뀌어야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어야 정책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어야 전략이 바뀌고, 전략이 바뀌어야 북한문제를 더 잘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문 후보는 이러한 문제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서, 노무현 정부 시기보다 ‘더 진전되고 새로운 어떤 것’을 내놓은 후에 유권자들의 지지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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