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時 배후교란 임무 띤 北 ‘폭풍군단’의 실체

북한이 남침을 강행할 경우 한반도 남측에 제2전선을 형성, 정치공작활동과 군사 활동을 통해 배후 교란작전을 수행하는 ‘폭풍군단’의 실체가 최근 알려졌다.

‘폭풍군단’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 지난 2008년 입국한 탈북자 김 모(남, 35세, 함북 회령)씨는 ‘데일리엔케이’ 기자와 만나 ‘폭풍군단’의 실체를 상세히 소개했다.

‘폭풍군단’은 본래 교도지도국(특수전부대를 관장하는 군 지휘체계) 산하의 저격·경보(정찰 등의 임무) 여단이었으나 1999년 김정일의 직접 지시에 따라 ‘폭풍군단’으로 명명됐다.

당시 김정일은 교도지도국 산하 82여단(평안남도 북창 위치)을 시찰시 부대 지휘관들과 부대의 개편 문제에 대해 얘기하면서 경보여단은 ‘번개’, 육전(해상, 육상, 공중을 통해 침투하는 병)여단은 ‘우뢰’, 저격여단은 ‘벼락’여단으로 명하고, 이 부대들을 통합하여 ‘폭풍군단’을 조직하도록 했다.

‘폭풍군단’의 목적은 지난 6·25전쟁 당시 대전전투에서 한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대전을 함락한데 기여한 북한군 4사단 18연대의 경험을 되살려 만든 것이다. 이후 전쟁이 발발되면 남반부 전 지역에 제2전선을 형성하여 정치공작활동과 군사 활동을 벌이며 배후 교란작전을 수행함과 동시에 충청북도와 경기도 일대를 장악하게끔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이 군단은 실전훈련시에도 충청북도와 경기도 지역을 가상한 지형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군단의 총지휘는 인민무력부 총참모부이며, 지시는 총참모부 통신국 산하 통신대대(평안남도 평성에 위치)를 통해 하달된다. 각 대대마다 담당 무선수가 따로 있어 신속한 지시를 받고 있고, 저격부대는 각 조마다 같은 방법으로 지시를 받고 있다.

‘폭풍군단’은 현재 10개 여단(경보 4개, 저격 3개, 육전 3개)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각 대대에 화승총(비행기 저격용) 소대가 한 소대씩 있다. 개편 전에는 총 12개 여단이었으나 1999년 2개 공수 특전여단을 공군 사령부에 넘겼다.

1개 여단(6~8천명)은 보통 6개 대대(6~7백명)로 구성돼 있고, 여단 직속 구분대로 사관학교와 통신중대, 경비 소대, 후방부가 따로 있고, 1개 대대는 6개 중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직속 구분대로 화승총 소대와 통신소대, 후방부로 이루어 졌다.

1개 중대는 2개 소대로 나뉘어 있고, 1소대는 4개 경보 분대와 1개 60mm 박격포 분대로 조직 되어 있다.

1개 여단에서 1개 대대씩 항공 육전 훈련을 받고 있다. 이는 여단의 전진시 방어전선을 양쪽에서 허물기 위한 훈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일명 ‘123호 강습’을 통해 자동차와 기관차, 탱크 등을 운전할 수 있는 기술을 소유하도록 교육한다.

때문에 소속 전투원들에겐 정치사상 교육이 특히 강조된다. 선전선동을 할 수 있도록 공산대학 강의가 진행되며 제대 시 공산대학 졸업증까지 받게 돼 사회 생활시 그 졸업증 덕을 톡톡히 보기도 한다는 것이 김 씨의 증언이다.

이 부대에서 복무한 제대군인들은 예비역 중위 군사 칭호를 가지며 유사시에는 각 군단 저격, 경보병 또는 폭풍군단의 제대 군인들과 함께 배속돼 전투에 임하게 된다.

‘폭풍군단’에서는 ‘충성의 군사복무(3년간)’라는 명목아래 중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군인들은 13년간(30세까지), 사회에서 생활하다 입대한 군인들은 10년제로 복무연한을 적용하고 있다.

‘폭풍군단’의 훈련강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는 “일반 보병과 달리 특수 병종에서 근무하는 군단의 군인들은 훈련 강도가 높다”고 증언했다.

“신입병 시기 가장 힘든 것은 정해진 일과후의 별도 훈련인데 저녁 점검 후에 분대장이 신병들을 데리고 나가 격투, 발차기. 철봉, 평행봉 등의 운동을 한 시간 정도 시키고 들어오면 사관장이 마다라스(매트리스)를 등에 쥐고 200m 높이의 고지까지 뛰게 한다.”

북한군은 해마다 12월1일이면 새 훈련제강(동기·하기 훈련 제강)을 발표한 후 12월부터 3월까지 동기훈련, 6월부터 9월까지 하기 훈련을 진행한다. ‘폭풍군단’ 역시 마찬가지다.

‘폭풍군단’의 훈련은 쌍방훈련으로 진행되는데, 한국군 진영은 M16 자동소총, K-1 자동보총 등을 소지한다. 또 이들은 ‘진짜 사나이’ 등의 한국군의 노래와 경상도 사투리 등을 배워 배후 교란작전 투입 시 필요한 정보들을 배우고 익힌다. 또한 50년도 한국군이 입었던 낡은 군복을 그대로 착용하고 있다.

그러나 김 씨의 말에 의하면 “적군 익숙 훈련을 받지만 실지 한국에 와보니 배운 지식이 별로 쓸모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북한에서의 적군 알기 교육이 원만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훈련 시 군인들은 습격, 파괴, 장애물 극복, 탱크 등 운전기재 파괴훈련, 낙하산훈련과 수영훈련들을 진행하며 제시된 정찰 자료에 따라 대상에 접근하여 임무 수행 훈련들을 실전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한다.

북한의 무기는 김 씨가 복무한 전 기간 7.62㎜자동보총이 무기 경량화 목적으로 연구 개발된 5.45㎜자동보총(경기관총)으로 바뀐 것 외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북한에선 군인이 복무기간 중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많다. 김 씨의 증언에 따르면 ‘폭풍군단’ 역시 자신들의 특수성을 과시하면서 크고 작은 비행을 많이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1989년에 특수부대들이 평양-향산 고속도로 공사에 동원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13년이라는 긴 날을 군복무로 보냈지만 재대될 때 남은 것이란 예비역 소위증과 공산대학 졸업증, 제대증, 저금통장(제대비 8000원이 들어 있었음)이 전부였다”고 소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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