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실각, 김정은 정통성 약화시켜 체제위기 불러와

북한의 막후 실력가로 여겨져 왔던 장성택의 실각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지금 그가 어떤 상태에 놓여있고, 어떤 처벌이 가해질지 두고 봐야겠지만 측근 2명이 공개 총살에 처해지는 등 여러 가지 정황에 미루어 회복 불능의 처지에 놓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왜 이런 사태가 빚어졌는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 문제를 보는 관점을 상황적 측면에만 집중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예컨대 그가 최고 지도자 김정은에 대해 무례한 자세와 행동을 취했다느니, 부패와 비리의 도가 지나쳤다느니, 그의 부인 김경희와의 불화가 원인이었다는 등의 해석은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근원적이며, 구조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절대권력 아래에서 수십 년을 지도층 인사로 지내 온 인사라면 장성택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부패와 비리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에게 씌워진 죄목들은 단지 숙청을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북한 내부의 정치과정에서 흘러나온 사건이나 정책을 눈여겨보면 이데올로기나 제도에 부합되는 것도 아니고, 그 어떤 기준의 합리성으로도 잘 설명되지 않는다. 오직 유일 독재권력의 강화, 그것도 매우 원시적이며 초월적인 권력 그 자체를 유지하고 방어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어서 이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원래 정치권력의 정통성(political legitimacy)은 정당성과 치적(enterprise)으로 유지되고 강화된다.


통치자가 아무리 치적을 많이 쌓는다 해도 권력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확보하면 정치권력의 정통성에 결정적 결함이 있다고 평가된다. 반대로 정당한 방법으로 통치자 위치에 오른다 해도 치적을 쌓지 못하면 정통성은 강화되지 못한다. 정당성과 치적 중에서도 권력의 정당성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은 통치자의 지배가 국민들이 인정하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것이 선거과정을 통해 확인되지만 다른 정치체제에서는 대체로 권위주의적이며 자의적인 방식으로 확인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혈통이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정착된 듯하다.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으로 권력승계가 이루어진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아직 예단하기에는 이르지만 김정은이 통치자의 위치를 공고히 다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권력승계 과정에서 막후 역할을 수행했다고 여겨지는 장성택의 실각은 이제 유일 지배체제가 확립된다는 징후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어느 세력이 이러한 혁명적 사태를 조종하고 있을까?


장성택 세력을 북한의 개혁파로 분류하다면 군부는 수구파 혹은 보수세력으로 분류된다. 장성택을 개혁파로 보기에는 여전히 함정이 있지만 적어도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중국과의 교역을 강화하려는 측면에서는 개혁파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본다. 북한당국에서 밝힌 장성택의 죄목에 자원을 헐값에 중국에 팔았다는 사실도 포함된 것을 보면, 중국과 가깝다고 알려진 장성택을 유일 영도체제 거부세력으로 몰아치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주요 품목은 석유와 섬유, 화학, 기계류인데 그 중에서도 원유 수입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석유 가격이 세계 시장가격에 비해 비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 수출하는 주요 품목인 광물자원의 가격을 보면 세계 시장가격에 비해 두 세배 정도 값싸게 팔고 있어 중국과의 교역에서 지나치게 저자세를 보인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되어 있다.


북한 당국은 바로 이 점을 지목하면서 죄목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북한의 주요 수출품목인 광물자원과 어패류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석탄과 텅스텐, 기타 어패류 등 북한에서 생산되는 자원은 세계 시장에서도 넘쳐나고, 품질과 희소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없다. 그나마 중국이 이런 자원을 수입해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다.


장성택이 정치분야를 제외한 경제, 사회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가정한다면 북한의 개혁 혹은 개방파는 숙명적으로 언제든 정치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2010년 박남기와 김태영이 화폐개혁의 실패를 죄목으로 처형된 것을 봐도 그렇다. 박남기는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으로서 경제분야 실세였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전문 인사들이 주기적으로 시련을 겪어야 하는 난관에 처해있다.


장성택의 실각은 북한체제가 선군정치의 가두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일성 이후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 김정은은 통치자로서의 정당성 확보에서도 근본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어서, 정권안보 콤플렉스(regime complex)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주요 인사들을 공개처형에 처하는 극단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을 봐도 그렇고, 경제개혁이나 개방을 향해 시원하게 내닫지 못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정치권력의 정당성 확보에 문제가 있다면 치적으로 정통성을 강화해야 하는데, 북한의 통치자들은 군사분야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한다.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통해 치적을 쌓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국가시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미는 배후세력은 군부가 틀림없다고 본다. 이들은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통치시대에도 정권 핵심세력의 위치를 차지하고자 한다. 김정은으로 권력승계가 진행되는 과정적 시기에 군부는 위기가 닥쳐왔음을 인지했을 것이다.


군부 실세로 여겨지던 리영호 총참모장을 포함하여 군단장급 이상 20여 명이 교체되는 상황은 그동안 선군정치의 구호 아래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온 군부세력에게는 큰 위기였다. 때 마침 중국 쪽에서도 북한 군부세력에 대한 견제조치를 환영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군부에 대한 노동당의 통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하나의 원칙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장성택, 최룡해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당 실세그룹들은 인민군 대장에 임명되는 등 군부통제가 가능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군부 핵심세력들이 방관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고, 뭔가 반격을 가할 구실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이번 장성택의 실각을 놓고 최룡해가 과연 어떤 태도를 보였으며, 어떤 입장에 놓여 있는지가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북한군부의 핵심세력 내부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이 블랙박스가 언젠가는 벗겨질 것이며, 그 때가 되어서야 북한의 통치과정을 엿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보수 수구세력이 힘을 얻었을 때 어떤 움직임이 나타날지를 추정하는 방법 이외에는 묘수가 없다. 과거 북한이 드러내 보였던 행태에 비추어 보면, 내부적으로 통제장치를 강화하고 사상교육과 정풍운동을 전국적으로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대외적으로도 남북관계가 다시 얼어붙고, 외교 역시 고립무원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정치군사적 슬로건을 앞세울 것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경험하거나 관찰해 온 이러한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북한체제가 회귀되는 것은 당장 내부 안정에는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 체제종말을 불러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통치자로서 김정일의 정통성은 김일성에 비해 강화되지 못했으며, 김정은 역시 김정일의 정통성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북한 통치자들이 수구세력에서 갇혀 있는 한 해소될 수 없다.


만일 북한 통치자들이 그 전임자의 그늘에서 벗어나 경제를 활성화하고 정치와 사회구조를 전환적으로 개혁하여 성과를 거둔다면 권력의 정통성은 더 강화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장성택 실각으로 김정은의 유일지배체제는 강화되겠지만 권력의 정통성은 더 약화되었다고 분석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북한의 통치상황은 김정일 시기보다 더 악화된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내부에서 핵심 세력 간에 벌어지는 권력투쟁, 한국에 대한 군사적 도발, 핵무기와 미사일 실험 등이 현실화될 것이며,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북한체제는 더욱 쇠락하는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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