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실각’ 관전법…노선투쟁인가 권력투쟁인가

곧 김정일 사망 2년(12월 17일)이 된다.


장성택의 실각은 예견된 사건이었다. 크게 놀랄 일은 없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확정된 2010년 9월을 전후하여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 관한 각종 세미나들이 열렸는데, 당시 필자를 포함하여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김정일 사망 후 1,2년 정도 지나면 권력내부 갈등이 생길 것”이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필자가 그런 주장을 한 이유도 무슨 특별한 것이 없다. 북한체제가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 북한체제의 기본특징은 ‘전체주의 수령독재’다. 전체주의 수령독재를 하려면 반드시 권력의 유일영도체계를 세워야 한다.


권력의 유일영도체계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사상체계-조직체계-규율이 완전히 일직선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김정일이 1974년 4월 문헌으로 제정·공표한, 수령에 대한 신격화·절대화·무조건성이 관철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식 수령론(영도론)의 기본 골격이며, 북한체제의 DNA이다. 문제는, 북한의 DNA는 바뀌지 않는데, 우리가 북한의 DNA가 바뀌기를 ‘희망’하면서 북한의 여러 현상들을 바라보니까, 자꾸 진단 오류가 나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에 제공한 팩트는 “노동당 행정부 내 장성택의 핵심 측근 2명에 대한 공개처형 사실 확인”이다. ‘이용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공개처형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진 국정원의 설명은 “장성택도 실각했을 가능성 농후하다”는 것인데, 이는 국정원의 ‘판단’이다. 필자도 “장성택의 실각 가능성”에 90% 이상 동의한다.


권력의 유일영도체계를 수립하는 데서 2인자가 있을 수 없고, 절대적 1인자 외엔 존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사상체계-조직체계-규율의 일직선 주변에서 얼쩡 거리다가는 반드시 칼을, – 그것도 무더기로 맞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의 유일영도체계를 수립하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배타적으로(exclusive) 중요하다. 주민 100만 명이 굶어죽든 말든 먼저 유일영도체계 수립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의 유일영도체계를 세우는 문제 앞에서 13개 경제개발구의 운명 같은 것은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장성택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의 측근인 중앙당 행정부 이용하 제1부부장, 장수길 부부장에 대한 처형은 확실해 보인다. 이는 김정은이 장성택의 힘을 완전히 빼버린 것이다. 쉽게 비유하면 이런 것이다.


1960년대 말 김영주(김일성의 동생)와 김정일이 권력투쟁을 벌였는데, 그때 김정일이 갑산파 사건을 이용하여 김영주 권력의 양날개였던 선전비서 김도만, 국제비서 박용국을 숙청해버렸다. 김정일이 김영주의 힘을 완전히 빼버린 것이다. 이후 김영주는 김정일이 후계자가 된 1974년 어쩔 수 없이 자강도로 ‘정배살이'(유배)를 갔는데, 1993년 경 김정일이 ‘하사한’ 아무 실권도 없는 부주석 자리를 받아 평양으로 돌아왔다.


크게 보면, 장성택의 운명도 김영주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죽이거나 통제구역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김평일(김정일 이복동생)처럼 외국으로 내보내지도 않을 것 같다. 장성택은 중앙당 조직지도부 해외과장 시절부터 해외로 내보낸 자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장성택을 외국에 내보내면 장기적으로 화근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 입장에서는 장성택을 완전히 매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재기(再起)하기도 어려운 그 어떤 ‘묘수’를 찾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김정은 권력이 맞닥뜨린 상황이 장성택 처리문제에 대해 ‘중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할 정도로 한가하겠는가라는 의문이다. 또 장성택 개인만 토사구팽하면 만사형통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구(舊)공산권 국가의 권력투쟁은, 노선투쟁을 형식으로 하고 권력투쟁을 내용으로 할 경우, 피비린내나는 투쟁이 장기화되어 전개되었다.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 모택동과 4인방, 유소기, 등소평 등의 경우가 그랬고, 스탈린 사망 후 흐루시초프 등 3인이 벌인 사회주의-공산주의 과도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문제에 대한 노선투쟁 때도 그러했다.


북한도 역사적 경험이 있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은 조선노동당 내 소련파·연안파가 김일성의 실각을 도모했다. 이들은 흐루시초프의 소련공산당처럼 김일성의 개인독재를 제거하고 집체주의를 하자는 노선을 내걸었다가 58년 말까지 피비린내나는 숙청을 겪었다.


1960년대 김일성·김정일에게 박살난 박금철의 갑산파도 명분으로는 김일성의 국방·경제 병진노선을 반대하고 인민경제 노선을 주장하였다. 갑산파 사건은 8월 종파사건에 비해 ‘소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갑산파에 대한 숙청이 진행되면서 지방의 중견 간부직 3분의 2가 공석이 될 정도의 대사건이었다. 


더욱이 북한의 수령체제의 경우, 권력을 얻으면 다른 모든 것도 얻게 되고, 권력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수령의 신임을 잃어버리면 자신의 집은 물론이고 비서, 집무실, 책상, 전화기, 심지어 양권(배급표)까지도 일시에 반납하고 숟가락 젓가락만 들고 지방으로 쫓겨가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지면 대학에 시간강사라도 나가면 되고, 전세를 담보로 은행융자라도 빌릴 수 있는 그런 ‘지상낙원’이 아니다. 권력을 잃으면 실제 ‘알거지’가 되며, 이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장성택 실각’ 사건도 과연 노선투쟁을 형식으로, 권력투쟁을 내용으로 하는 성격을 일부라도 갖고 있는가를 집중 관찰하는 것이 핵심이다. 만약 노선투쟁적인 성격이 일부라도 포착되지 않는다면, 그냥 ‘장성택 토사구팽 사건’으로 보면 해석이 쉬울 것 같다.


하지만 만약에 장성택이 유일한 대(對)중국 채널인 상황에서 경제개발구 추진 등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했고 이를 적극 뒷받침하는 개방세력(그루빠)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 집단이 군(軍)의 수구파들의 모함을 받아 박살나고 있는 상황이라면, 향후 전개될 이야기는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장성택의 경우, 1970년대 이후 40여 년 동안 당, 군, 내각, 해외에 자기 사람들이 매우 넓게 포진되어 있다. 따라서 아직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만약 이 사건이 노선투쟁의 성격을 내재하고 있다면 ‘장성택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본게임’으로 진행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예의주시 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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