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吉서 만난 ‘시퍼런 청춘’…12월, 한반도 운명의 한달

중국 연길(延吉)의 겨울은 매우 스산하다. 오후 4시면 어두워진다.

겨울 백두산을 찾는 한국 관광객도 이제 많이 줄었다. 한국에서 백두산을 다녀갈 사람은 대개 다녀갔다고 한다.

연길은 주변 농업지구를 제외하면 생산이 별로 없다. 서비스업과 유통업으로 먹고 산다. 한국의 인기 드라마는 바로 다음날 불법 CD가 나돌 정도라고 한다. 소비도시라 밤이 되면 네온사인이 많이 켜진다. 중국식, 한국식은 많아지고 북한식은 줄어들었다. 북한이 운영하는 연길 류경호텔은 지금 ‘내부 수리중’, 북한 식당도 한적하다.

그런 연길에서 탈북자 김수미(여)씨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25세 시퍼런 청춘. 엘리트 재원(才媛)이었다. 총명하고 북쪽출신 특유의 강인한 인상이 묻어났다. 태어난 곳은 함경도 심심산골. 감자가 주식이었다. 일년 내내 눈에 보이는 것은 하늘, 산, 구름, 나무, 꽃, 별, 얼어붙은 호수, 흩날리는 눈, 그리고 감자…. 그러나 타고난 총명한 머리와 어머니의 교육열 덕분에 두메산골 소학교를 마치고 수재학교에 입학했다.

12살 때 끔찍한 식량난이 닥쳤다. 기차역에 굶어죽은 시체들이 뒹굴고 수재학교 동기생들도 먹을 것을 찾아 뿔뿔이 떠났다. 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10명중 1명 꼴이었다. 김씨는 어머니의 억센 생활력과 감자 지원을 받으며 수재학교를 졸업하고 기어코 평양의 명문대에 진학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이 아주 좋았다. 졸업후 당연히 평양에 직장이 배치될 줄 알았다. 그러나 평양과는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발령났다. 북한에서 평양과 지방은 하늘과 땅 차이다. 졸업성적 따위는 아예 뒷전. 모든 것이 ‘빽'(배경)과 뇌물로 결정되는 세상이었다.

北 대학생들 “이제 희망이 없습니다”

“평양의대는 주로 돈 많은 아이들이 들어갑니다. 평양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려면 뇌물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종합대(김일성대)는 1천 달러, 의대(평양의대), 사범대(김형직사대)는 5백달러, 외국어대도 비쌉니다.”

-뇌물을 줘도 입학성적이 안 되면 어떻게 합니까?

“뇌물 준 다음에 입학시험 때 시험지에 (사전에 약속한대로 자신을 알리는) 별도의 표시를 합니다. 그러면 시험을 잘 못 봐도 성적이 좋게 나옵니다. 뇌물 액수대로, 빽 순서대로 먼저 입학이 결정되고 그 다음 점수로 결정됩니다. 조선(북한)은 지금 돈과 돈, 빽과 빽의 싸움입니다.”

돈없고 빽없이 정말 어렵게 들어간 대학생활은 엉망이었다. 김씨는 군 열병식때 주석단 앞을 통과하는 짧은 40초를 위해 대학생활 총 385일을 연습으로 보냈다. 대학생들이 다 그렇다고 한다. 여기에 각종 행사와 농촌지원 등 대학생활 5년~6년 중 거의 2년 5개월 시간을 동원으로 보냈다. 이 때문에 모든 젊은이들은 오로지 외국에 나가는 것이 꿈이다.

“외화벌이 회사에 들어가거나 외교관이 최고 인기입니다. 제대군인, 당원은 뒷전입니다. 교수, 의사는 진짜 인기 없습니다. 교수박사, 의사 월급이 (북한돈)3천원입니다. 3천원이면 장마당에서 1달러입니다. 돈이 있어야 외국에도 나갑니다. 외국식당 여성 복무원 나가려면 4백달러 뇌물이 있어야 합니다.”

김씨는 다행히 대학때 알게된 남자친구가 있었다.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도 수재학교에 다녔다. 남편과 빽좋은 남편 친구들을 통해 김정일 정권이 북한당국의 선전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던 중 남편 집안에 ‘정치 사건’이 터졌다. 정치 사건이 터지면 수용소행 아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이다. 김씨와 남편은 미련없이 두만강을 넘었다.

“(김정일)장군님이 줴기밥(주먹밥)에 염전무(소금에 절인 무) 드신다는 선전만 듣다가, 김부자(父子) 만수무강연구소 연구원이 ‘장군님 식사 한끼에 1천 달러’라고 하는 말을 듣고 충격 받았습니다. 똑똑한 학생은 고중생(고교)만 되면 ‘이 체제는 봉건주의’라고 격분합니다. 똑똑한 젊은이들은 김일성 김정일을 이제 수령님, 장군님 하지 않고 그냥 ‘김부자’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김정일 미워하면서도 아직 행동에 나서지 못합니다.”

-평균적인 젊은이들은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평양의 똑똑한 남자 아이들은 대학생 되면 거의 비판적입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얼마나 나쁜지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습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남학생은 정치에 관심이 많고 여학생은 적습니다. 2004년에 상영된 예술영화 ‘금진강’의 첫 시작이 ‘우리 인민이 수령님(김일성)을 잘못 모셔서 하늘이 천벌을 내려 수령님을 모셔가는 바람에 우리가 못산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제국주의의 압살 책동, 미국의 경제제재로 우리가 못산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선전을 아직도 그대로 믿나요?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이 아직 많습니다. 2004년 중국의 호금도(후진타오)가 평양에 왔을 때, 김정일은 42년 2월생, 호금도는 42년 12월생, 둘다 동갑인데 ‘우리가 장군님을 잘못 모셔서 장군님이 호금도보다 늙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한국이 잘 살고 중국이 발전했다는 사실을 이제 다 알지 않아요?

“다 알고 있습니다. 남조선 드라마, 영화 거의 다 보고 있습니다. 한국 쌀, 상품이 시장에 팔립니다. 평양 아이들은 ‘한국 필통 사달라’고 합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남조선은 못산다’는 소리를 이제 아무도 못합니다.”

-그러면 평양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습니까?

“당국이 남조선에 대해 환상을 갖지 말라고 계속 선전합니다. 햇볕정책은 남조선이 ‘선군정치로 우리들을 보호해달라’며 장군님께 (경제지원을) 갖다바치는 것일 뿐이니까, 남조선에 환상을 갖지 말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이것은 2000년 이후 불변입니다.”

-그럼, 평양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며 삽니까?

“대부분이 개방해야 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혁개방’ 말은 절대 못합니다. 당국은 선군정치 해서 곧 잘 살게 된다, 경제대국 건설하여 잘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해서 잘 살게 된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냥 잘 살게 된다고 합니다. 평양 사람들 생각은 오로지 돈 많이 벌자는 겁니다. 평양에서 장사 안 하는 계층은 중앙당 간부, 군 간부, 보위부, 보안원 가족들입니다. 이들은 뇌물로 잘 삽니다. 나머지는 (부부) 둘 중 한 명은 장사를 해야 쌀을 먹습니다.”

-당국은 ‘개혁개방’에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중국은 자본주의 ‘노란 마차’ 타고 가지만, 우리는 반드시 ‘빨간 마차’ 타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빨간 마차’는 어떤 마차라고 말합니까?

“선군정치 해서 강성대국, 경제대국 된다고 합니다. 중국식으로 안 해도 잘 산다고 합니다.”

-평양 고위층들 생각도 그렇습니까? 고위층 자식들은 어떤 이야기 합니까.

“우선 김정일 생각에 맞추어 살고, 또 김정일이 바뀌면 새 사람에게 다시 맞추고…. 지금은 김정일에게 충성하고, 바뀌면 새 사람에게 충성하고, 그래야 살아 남는다는 생각,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평양 외에 지방 사람들 형편은 어떻습니까?

“강원도, 황해도가 가장 먹고 살기 힘듭니다. 황해도에 농촌지원 나갔습니다. 우리 대학생 1개 분조가 10명인데, 3명만 강냉이 먹고 7명은 굶었습니다. 황해도 곡물은 모두 중앙(평양)과 군(軍)에서 가져갑니다. 절량(絶糧) 세대(가구)가 많습니다. 먹는 것은 강냉이뿐이고, 많이 훔쳐서 먹고 삽니다. 정어리 기름과 양잿물을 섞어 비누로 사용합니다. 쇠똥으로 불을 땝니다. 입고간 옷과 신발은 우리가 벗어주고 와야 합니다. 황해도로 농촌지원 가면 허름한 옷들을 입고 갑니다. 주고 와야 하니까…. 주고 오지 않으면 (주민들이) 훔쳐서라도 가져 갑니다.”

-그렇게 사는데, 황해도 사람들은 가만 있습니까?

“황해도 농촌 사람들도 이제는 김정일 욕합니다. 농촌은 정말 형편 없습니다. 개성은 모르겠습니다. 개성 아이들은 만나기 힘듭니다. 신의주는 빽 있는 사람 많고, 함북도 청진 등지는 중국이 있어서 (장사해서) 잘 삽니다. 1만 달러 있으면 갑부 소리 듣습니다. 황해도, 강원도는 탈북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20만원은 있어야 (뇌물 주고) 국경 넘을 수 있는데 돈이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북한이 어떻게 될 것으로 봅니까?

“희망이 없습니다.”

2007년 12월…한반도 운명의 한달

북한의 부정부패가 구공산권의 일반적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는 사실이 남한에 처음 알려진 것은 90년대 초였다. 이 무렵 ‘당간부는 당당하게, 안전원(경찰)은 안전하게 뇌물 먹고… ‘ 어쩌고 하는 말이 북한에서 돌고 있다는 정보가 국내에 입수되었다.

그로부터 15~17년이 지났다. 그 사이 95년~97년에는 3백만 명이 굶어죽었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시장을 개척했고, 당 군 국가 기관의 부정부패는 말할 수 없이 심화되었다. 그 부정부패는 최고위층 일부를 제외하면 북한경제 붕괴에 따른 생계형 부정부패였다. 북한사회의 어떤 영역이든 부정부패나 불법을 하지 않고는 생존하기 어려운 상태, 즉 ‘부정부패의 시스템화’가 10년동안 진행되었다. 지금은 이 ‘시스템’ 내부에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과 장사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해줄 방어막으로 잘 아는 군대 고위인사를 선택하고, 보안원(경찰)이 자신을 불법으로 걸려고 하면 군 고위 인사를 내세워 퇴치하는 식이다. 물론 군 고위인사에게 계속 뇌물을 준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0년 전보다 뇌물의 액수도 크게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군 고위층에 부패가 늘어나고 공안기관과 갈등이 생긴다. 또 무력을 가진 군 인사가 돈과 사람을 갖게 되면 정권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장성택이 공안기관을 장악하는 중앙당 행정부장으로 발탁된 배경도 공안기관에 힘을 통일적으로 실어주려는 김정일의 의도가 엿보인다. 장성택은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있을 때 보위부와 공안기관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북한의 부정부패는 중국의 ‘개혁개방형 부정부패’와 차이가 있다. 중국 개혁개방 초기의 부정부패는 시장경제의 지속적인 확대로, 말하자면 ‘퇴로’가 열려 있었다. 그러니까 먼저 경제가 발전하면서 부정부패도 따라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가 본격적인 법적 규제가 시작되었다.

반면 지금의 북한은 개혁개방과 시장의 확대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시장을 강력히 통제하고 부정부패를 때려잡으면 ‘생계형 부정부패 시스템’의 퇴로까지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북한정권은 12월 1일부터 49세 이하 여성의 장사를 금지하는 강력한 시장통제를 시작했다. 비사회주의 검열단(속칭 ‘비사 그루빠’)의 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비사 그루빠가 하는 일은 시장경제 요소의 침투를 막는 일이다.

탈북자 김씨에 따르면 북한당국은 ‘경제대국으로 간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경제대국이 된다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김정일 정권의 대내외 정책이 일관성이 없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마치 개방으로 갈듯 제스처를 보인다. 그러나 실천에 옮기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런 패턴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지금 김정일 정권이 처한 내외적 상황은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핵 문제, 내부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의식변화와 먹고사는 문제가 맞물려 있다.

북한의 핵신고 문제 등으로 국제사회는 2007년 12월의 평양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12월 19일 17대 대통령 선거가 있다. 한반도는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번 12월을 통과한 후 한반도는 어떤 방향을 향하게 될까? 참으로 중요한 운명의 한 달이 우리 앞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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