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상임위원 틈바구니서 위원장은 왕따였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현병철 위원장과 두 상임위원의 갈등으로 촉발된 사퇴 파동이 확전 일로에 있다. 이달 1일 좌파 성향의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의 동반 사퇴와 조국 비상임위원(10일)의 사퇴에 이어 15일에는 61명의 전문위원들이 집단 사퇴서를 제출했다. 


여기에 민주당과 민노당, 일부 좌파단체들이 현병철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전면 공세에 돌입했고 이에 맞서 보수 단체들은 현 위원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는 등 우리 사회 좌우 갈등의 대리전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유남영 전 위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대통령 추천 상임위원직에는 15일 김영혜 변호사가 임명됐다. 문경란 전 위원의 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에도 한나라당 추천 인사가 금명간 임명될 예정이다.


신임 상임위원 임명에도 민주당 등은 “불난집에 기름 붓는 격이다”며 현 위원장의 사퇴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현 위원장은 16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최근 논란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장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인권위의 독립성이 외부의 일방적 비난으로 인해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로지 인권이라는 기준을 토대로 흔들림없이 업무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운영규칙 개정은 독선인가 개혁인가?=이번 인권위 사태의 발단은 현 위원장이 인권위 운영규칙을 개정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일부 상임위원들이 사퇴하면서부터다.


10월25일 전원위원회에 상정한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상임위(위원장 포함 4인) 미(未) 합의 안건과 긴급 인권 현안 등의 중요 사안은 최고 결정기구인 전원위(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 11인 참여)에서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즉 상임위원 간에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상임위원 2인 이상의 동의나 위원장 직권으로 전원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개정안은 인권위 조직 체계상 전원위가 최고 결정기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상임위가 사실상 최고 결정권을 행사해온 사실상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다. 


인권위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상임위가 자체 결정을 내리면서 전원위원회에 회부조차 못한 경우가 많았다. 양천경찰서 고문의혹 사건과 공항 전신검색장비 설치 금지에 대한 인권위 권고도 상임위가 단독으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일부 비상임위원의 반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9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현 위원장은 “상임위원회 규정 중에 중요하거나 국민에게 파급 효과가 큰 안건은 반드시 전원위원회에서 토의해야 된다는 규정이 있다”면서 “그러나 모든 안건이 상임위원회에서 다 통과되니까 이것을 시정할 방법으로 운영규칙 개정을 제안하게된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위 고위 당국자는 16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개정안이 상임위의 권한을 무력화 시킨다는 지적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상임위에서 논의되는 안건을 위원장이나 상임위원에 의해 전원위에 회부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상임위원을 역임한 한 인사는 “인권위 결정은 전원위라는 합의체를 통해서 결정되는데, 지금까지 상임위가 권한을 독점하고 있었다”면서 “제도적이나 헌법상으로 봐도 전원위의 투표 등을 통한 합의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과 좌파 단체들은 이러한 인권위 의사결정의 문제점은 배제한 채 위원장의 전원회의 회부권한을 규정한 개정안에 대해 ‘월권 행위’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상임위원 돌연 사퇴, 인권위 ‘흔들기'”=이번 유·문 두 상임위원은 각각 12월23일, 내년 2월3일 임기만료를 1~3개월 앞두고 사퇴했다. 명목은 개정안 반대 입장이지만 임기를 거의 다 채운 상태에서 사퇴했기 때문에 그 순수성에 의심을 받고 있다. 


인권위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전원위의 구성원들이 현재는 보수·진보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나 임기가 만료된 위원의 후임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임명될 것에 대해 두 상임위원이 상당히 불편해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추천 상임위원에는 이미 김영혜 변호사가 임명됐고, 한나라당 추천인사인 문경란 전 위원은 진보적 색채를 무시하고 임명했다는 당 안팎의 비판 때문에 후임에는 중립적 인사가 추천될 것이 유력해 보인다.  


이 관계자는 “전원위에서 충분히 합의를 할 수 있음에도 이들이 돌연 사태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얻는데 있어서 효과를 극대화시킬려고 사퇴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인권 전문가도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질 수 있으나 이렇게 내부문제를 공론화 시키는 것은 위원들이 너무 정치화 되어 있다는 반증”이라면서 “이렇게 인권위를 흔들고 정치화시키면, 인권위의 신뢰가 크게 실추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전직 인권위 상임위원도 “임기를 불과 몇 개월 남지 않은 두 상임위원이 사퇴한 것은 매우 정치적인 것으로 보여지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편향된 인권위를 바로잡는 것”=상임위 구성원인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은 대통령과 여야의 추천으로 선출된다. 이들은 추천 받은 기관의 이념적 성향에 적합한 인물들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 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상임위원은 진보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소위 진보적 성향의 인물들이다. 특히 한나라당 추천으로 선출된 문경란 전 위원은 기자출신이지만 여성운동에 관심을 가져온 진보적 성향의 인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좌우의 균형잡힌 의사결정이 부족했다는 것이 인권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 위원장이 취임이후부터 줄곧 이런 이념적 성향의 차이로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고, 인권위 사업 전반에서 상임위원 3명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인권전문가는 “이번 인권위 사태는 좌편향적인 인권위의 운영을 바로잡아 가는 과정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성장통이라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좌파 인사들, 현 위원장 ‘왕따’시켰나?=주로 좌파 성향의 인물들로 구성된 지금까지 인권위에서 현 위원장을 비롯한 소위 비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교묘한 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권위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현 위원장의 취임 이후부터 인권위 내부에서 주류인 운동권 출신 간부들과 비주류인 비운동권 출신들간에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일각에선 현 위원장을 제외한 상임위 구성원 세 명 모두가 진보적 색채가 강해 사실상 상임위가 위원장을 압도해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심지어 현 위원장이 지방대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워 노골적으로 비웃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며 “아무리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엄연한 국가기구인데, 위원장을 중심으로 단결하려는 분위기가 애당초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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