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 ‘트랙 C’ 가 저절로 가동…정부로선 정말 ‘고마운 일’

북한은 다루기 까다로운 존재다. 웬만해서 남북관계, 대외관계에서 주도권을 잘 빼앗기지 않는다.

또 협상만큼은 오래 전부터 능수능란했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대북협상에서 실컷 퍼주고 뒤통수를 맞거나, 머리 어루만짐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북한의 대남협상 담당자들은 한 분야에서만 30년 이상 지낸 사람들이다. 사망한 임동옥(임춘길), 전금철(전금진)이 모두 대남 협상 베테랑들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기 전면에 등장한 40대 초반의 권호웅(권민)도 일찍부터 대남협상 업무에 뛰어 들었다.

김정일은 노무현 정부를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하면서 나중에는 아예 노장(老將) 임동옥도 빼버리고 새파란 권호웅에게 ‘내각 참사’라는 가직위(假職位)를 주어 대한민국 통일부장관과 맞상대하도록 했다.

권호웅은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그 서열이 우리나라 통일부 고참 과장급이나 될지 모르겠다. 그런 ‘어린아이’가 대한민국 통일부 장관의 공식 카운터파트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으니, 노무현 정부의 북한에 대한 인식이란 정말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1970년대 우리 정부가 김일성의 동생이자 실세 2인자였던 김영주 노동당 조직비서를 회담 상대자로 불러내려고 했던 일이나, 박성철 부주석과 허담 대남비서를 서울로 올라오도록 해서 회담을 하고 추억의 용금옥에서 추어탕을 대접하던 시절에 비하면, 노무현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격(格)이라곤 고려하지 않은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대북정책에서 성과주의, 한건주의에 매달리다 보니 협상의 격도 뒷전이고, 또 협상은 협상대로 할 때마다 깨지고 뒷통수 맞은 것이다. 앞으로도 ‘부디 남북대화 좀 해주세요’ 식으로 나가면 또 지난 10년 되풀이가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협상을 위한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언명이 일관되게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또 남북간 협상이 필요할 경우 우리 정부는 북으로 하여금 스스로 협상이 필요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일 북측이 삐라 문제로 먼저 군사실무회담을 요청한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북측은 자신들이 ‘필요하니까’ 회담하자고 나온 것이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북측이 남북대화를 하자고 먼저 나오도록 만든 주역은 바로 북한으로 삐라를 날린 사람들이다. 삐라를 날리지 않았다면 북한이 먼저 대화하자고 나올 일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정부 당국이 해야 할 일은 남북협상에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이다.

정부는 남북간 현안 문제, 즉 ‘금강산 여성 관광객 총격사건부터 해결하고 차분히 남북간 현안문제를 풀어가는 게 순서’라는 사실을 북측에 설명하고 협상의 분위기를 그런 쪽으로 몰고 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협상의 전략전술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 전략전술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장관들이 국민세금으로 많은 월급을 받아갈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처럼 ‘대북 지렛대’ 운운하면서 식량, 비료를 주면서 ‘회담을 위한 회담’을 이어가려는 어리석은 도로(徒勞)는 이젠 정말 할 필요가 없다.

협상은 급한 쪽에서 먼저 매달리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북측이 먼저 협상을 제의하도록 만들고 또 협상 결과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되도록 충분히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급하게 성과를 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만에 하나 북한이 원하는대로 민간단체가 대북 삐라 날리는 문제를 통일부, 국방부가 진짜로 말리고 나선다면 조금씩 굴러오는 남북협상 분위기를 스스로 깨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건 자해(自害) 행위다.

북한에게 ‘남북관계 정상화 훈련’ 계속 시켜야

물론 그런다고 해서 북측이 단기간 내에 남한이 깔아놓은 멍석으로 들어올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노동신문은 25일에도 남한의 시민단체들에 의한 대북 전단 살포가 남한 정부의 ‘전면적인 배후조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전쟁에는 전쟁으로 단호히 맞받아 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일 정권이 지금 남한에 하는 언행들은 계속 ‘남한 길들이기’를 해서, 다시 말해 6.15선언, 10.4선언을 이행하도록 압박해서 지난 10년처럼 ‘안정적으로’ 경제지원을 뜯어내자는 것이다. 김정일은 ‘남한은 경제중심사회인 만큼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일으켜 남한경제를 계속 압박하면 언젠가 손들고 나온다’는 식의 ‘고전적’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러면서 북한은 공갈과 엄포, 그리고 서해 NLL 등지에서 일시적 도발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자신에게 불리한 개성공단 일시 중단 같은 자해(自害)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남한을 왕따 시키려고 통미봉남(通美封南) 하면서 때로는 미국에 더 가까이 가고, 때론 일본과 수교협상을 재개하는 등의 뻔한 수작을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그런다고 현실적으로 통미봉남이 될 리 없고, 일본이 김정일이 원하는 대로 100억 달러를 식민지 배상금으로 제공하고 성급하게 수교할 것으로 믿는 것은 어리석다. 또 한미군사동맹이 튼튼한 조건에서 북한이 한반도에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남한경제에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 북한 핵실험 후 남한과 아시아 증시를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북한이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주려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인데, 만약 김정일이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제로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남북간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질서재편 문제인 만큼 중국이 사전에 김정일 정권을 교체해버릴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중국은 진정으로 국익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아주 거칠고 단호하게 대응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이 우리의 대북 전략적 틀 속으로 들어오도록 여러 전술적 준비를 잘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게도 지난 정부가 10년간 도외시 한 투 트랙(two track)을 잘 가동하는 것이다.

정부 간 트랙(A)에서는 ‘언제든 대화와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전쟁중인 국가끼리도 협상은 한다. 또 트랙 B에서는 국정원 등의 기관이 북한을 남한의 전략적 틀 속으로 밀어 넣는 작업을 계속 하는 것이다. 앞으로 1~2년 내 이 과제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도 대북정책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 대북 삐라와 같은 민간단체의 ‘트랙 C’까지 저절로 가동되고 있으니, 정부 입장으로서는 도리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간 시청 앞에서 진행된 보수단체들의 수많은 집회를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조금이라도 대북협상에 활용했더라면 그렇게도 부끄러운 남북협상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미 합동군사연습, 김정일의 건강이상설과 남한 언론의 ‘급변사태’ 보도,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 등은 도리어 우리 정부가 북한을 다뤄가는 데 유리한 ‘아이템’들이다.

그래서 앞으로 정부는 ‘김정일 정권 길들이기’를 제대로 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북한의 ‘남한 길들이기’ 방식처럼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북한 너희들이 그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계속 훈련시키는 것이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했다고 하는 “말은 부드럽게 하되, 행동은 무겁고 단호하게 할 것”이라는 언급이 바로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도리어 대북정책보다 ‘대남정책’이 더 필요하다. 그것은 지난 10년간 양성화되어 버린 친북반미 단체들의 활동을 법에 따라 규제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잘못된 대북정책을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멀리 하는 일이다. 지난 10년처럼 무조건 경제지원과 대화, 협상만을 주장하는 김대중- 노무현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

그들 중 일부는 북한문제가 진정으로 잘 해결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해온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음을 강변하는 데 더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들의 주장 중 10~20% 정도는 경험에 의한 ‘참고사항’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한 그들의 주장을 끌어들인다면 정부의 대북정책은 또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과거 북한의 전략은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북한정권은 자신을 알 수 없는 존재, 그저 위험한 존재로 대외에 인식시켜 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외전략 및 협상에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부통령을 지낸 월터 먼데일은 1기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주일(駐日) 대사로 재직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외부에서 북한 내부를 관찰하는 것은 어두운 밤에 검은 안경을 끼고 새가 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정일 정권이 김일성 사망 후 3년간 모든 빗장을 걸었으니, 그런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 있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 김정일 정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를 우리는 10년간 너무나도 비싼 ‘대북 수업료’를 물면서 이제는 모든 국민들이 다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당초 약속한 ‘국민이 납득하는 대북정책’을 계속 해나가면 된다.

또 지금이 우리가 북한을 능동적으로 다뤄가는 데 중요한 타이밍에 온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