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 식량지원 루트 ‘확’ 바꿔야 한다

해마다 봄이 오면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한 여러 가지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10년 전 ‘고난의 행군’(식량난 시기) 이후에도 북한의 식량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달라진 것은 북한주민들이다. 현재 북한주민의 대부분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자체의 생존능력을 키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한국농촌진흥청은 2006년 북한의 곡물생산량을 전년도에 비해 1.8%(6만 톤)로 감소한 448만 톤으로 추정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식량계획(WFP)도 약간의 차이를 나타낸 430만 톤정도로 추산했다.

한편 국내 대북지원 단체인 좋은 벗들은 지난해 북한의 곡물생산량을 280만 톤으로 추정하였으며 150만 톤 이상의 식량지원이 없으면 대량아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외부지원식량으로 90년대 대량아사 막을 수 있었다

지난 90대 중반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주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식량공급소에서 식량공급을 중단하자 조금 참고 견디면 식량배급을 줄 것으로 믿고 굶으면서도 일터로 나갔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식량은 배급되지 않았다. 마침내 아사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이렇게 3, 4년간 약 300만 명의 북한주민들이 굶어 죽었다.

그러나 당시 대량아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으나 북한당국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났다. 그것은 95년부터 99년까지 외부식량지원 실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제목 없음

 

1995

1996

1997

1998

1999

식량생산량

3490

2500

2680

2830

4280

외부도입량(FAO)

980

1070

1440

1490

1190

외부도입량(한국내)

960

1050

1630

1030

1070

북한내 식량공급량

4450~4470

3550~3570

4120~4310

3860~4320

4450~5476

사망자수

 

615

1704

549

(단위:천톤/만명)

▲ 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생산과 외부도입량, 당시 사망자수 비교(좋은벗들 06.12.22)


위의 자료에서 보듯이 한국과 국제연합농업기구(FAO)를 통해 95년부터 99년까지 해마다 평균 200만 톤 이상의 식량이 북한에 지원되었다.

북한주민 전체의 하루 배급량이 1만 톤이라고 할 때 370만 톤의 식량공급량만 있으면 배급중단 사태는 없었다. 위의 표에서 북한은 당시 연간 식량공급량이 최소 355만 톤에서 최대 445만 톤으로 평균 409만 톤이 공급되었다.

그러나 이 기간 300만 명의 아사자와 30만의 탈북자가 발생했다. 북한이 이때만큼 외부의 식량지원을 받은 때가 없었다. 그런데도 가장 많은 식량지원시기에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왜 그렇게 됐을까.

그 근본원인은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자강도를 비롯한 식량이 가장 부족한 지역에 외부지원 식량이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지원된 식량이 굶주림이 가장 심했던 지역을 우선 공급했더라면 최소한 굶어죽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식량지원은 대부분 평양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군인들과 당, 권력기관에 우선 공급됐다. 대북지원 물자는 대부분 선박을 통해 남포항과 해주항, 원산항을 거쳐 평양과 평안남북도에 공급되었다

90년대 북한은 전력부족으로 철도의 화물운송은 거의 마비상태였다. 원유부족으로 차량운행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북한은 화물운반의 대부분을 철도를 이용한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객열차와 화물열차 운행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강원도 원산에서 출발해 함경북도 나진까지 운행하는 갈마(원산)-나진행 제21열차는 왕복하는데 보통 보름 이상 걸렸다. 평양을 출발해 함경북도 선봉시까지 운행하는 평양-두만강(선봉-러시아 국경지역)행 급행 제1열차도 왕복하는데 열흘 이상 걸렸다.

화물열차는 여객열차보다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이 2배 이상 걸렸다. 원산항에 도착한 외부지원 식량 1만 톤을 함경북도 청진까지 운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2, 3개월 걸렸다.

만약 식량 10만 톤 분량을 수십 차례로 나누어 강원도 원산에서 함경북도 청진까지 운반한다고 할 때 2년 이상의 시일이 소요되는 것이다. 이것은 철도를 통한 화물운반을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지난 90년대 중반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함경도와 양강도, 자강도를 비롯한 극심한 식량난을 겪은 지역으로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설사 얼마 안되는 지원식량이 가더라도 군대와 당, 권력기관에 우선 식량배급을 주었으므로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식량운반 과정에서 ‘도중 손실’ 발생

또 식량운반 과정에서 30~40%의 도중 손실이 생긴다. 식량을 실은 화물열차가 정차하는 곳마다 운반을 책임진 호송원들이 자신들도 먹고살기 위해 쌀을 장사꾼들에게 도매가격으로 팔아넘겼다. 그리고 꽃제비들과 도둑들의 공격도 만만치 않아 1천 톤의 쌀을 운반해 목적지에 도착하면 6,7백 톤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북한당국이 외부식량을 직접 흥남항(함흥시)이나 청진항에 하역하도록 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식량 사정이 그나마 괜찮은 평안도 지역에 가장 많은 외부의 식량지원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권력계층과 김정일 지지계층이 많이 집중되어 있는 평안도 지역에 쌀을 공급하려는 의도로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결국 아사자들 대부분이 함경도와 양강도, 자강도에서 발생했다. 그런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북한의 전력 사정으로 화물운반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한국과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이 중단되었다가 2월 13일 베이징 제5차 3단계 6자회담으로 한국정부의 식량지원 재개가 확실시 되고 있다.

국제적인 식량지원도 중요하지만 90년대와 같이 식량이 꼭 필요한 곳에 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쌀이 지원되어도 굶주림을 면할 수 없다.

이번만큼은 함경도 양강도 자강도 등 식량이 가장 부족한 지역 주민들에게 먼저 직접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북한당국에 식량을 지원해주면 알아서 잘 배급하겠지 하는 생각은 순전히 남한식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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