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외교의 뿌리 깊은 北核인연

송민순(宋旻淳) 외교장관의 뿌리 깊은 북핵 인연이 새삼 화제가 되고있다.

북핵 6자회담의 한국측 수석대표 시절인 지난해 송 장관이 베이징(北京) 6자회담 4차회의에서 우여곡절 끝에 채택된 `9.19 공동성명’의 산파역으로 활약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과 북한이 `북핵폐기’와 ‘상응조치’를 놓고 첨예한 신경전을 펼칠 당시 송 장관이 양측을 오가며 ‘회유와 압력’을 구사해 결국 ‘9.19공동성명’이라는 옥동자를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송민순이 없었다면 9.19성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외교가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송 장관과 북핵은 이미 훨씬 오래 전부터 깊은 관련이 있다. 북한 핵문제가 국제 외교가에 처음으로 존재감있게 드러난 것은 프랑스 정찰위성이 북한을 위성으로 찍으면서 우연히 ‘핵시설’을 알게된 1989년.

당시 송 장관은 주미 대사관의 1등 서기관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반도 북단에 핵시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주미대사관에서도 주요 현안이 됐고 그 실무를 당시 송 서기관이 맡았다는 후문이다.

이후 송 장관은 본부로 돌아와 안보과장을 했다. 당시 안보과장은 현재의 군축원자력과에 북미3과를 포괄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 즈음 본격적으로 북한 핵문제가 국제적인 현안으로 불거졌고 송 장관이 이 일을 처리하게 됐다.

그리고 1991년 북미1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핵문제에 매진하다 주 싱가포르 대사관 참사관으로 이동한 뒤 미국 하버드대 연수를 거쳐 다시 1995년 외무부 북미담당 심의관으로 복귀한다. 이때 그는 주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문제를 담당했다.

다시 그가 북핵문제에 매달리게 된 것은 1997년 대통령 국제안보비서관으로 옮긴 뒤다. 그리고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이후 그는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수석과 운명적인 조우를 한다.

임 수석은 잘 알려진 대로 햇볕정책의 핵심 아이디어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 임 수석 밑에서 당시 송 비서관은 북핵 실무를 총괄했다는 후문이다.

주목해야 할 일은 당시 클린턴 행정부와 미 의회가 이른바 `페리 보고서’를 성안했고 이 과정에 송 장관이 깊게 연루됐다는 것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1999년 페리 프로세스가 한창 진행중일 때 한미간 협의 과정에서 송 장관의 역할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은 북핵 사태를 1994년 제네바 합의로 봉합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에 미치지 못했다는 반성의 기류가 강했었다. 이 때문에 의회의 요구에 따라 대북 정책조정관으로 윌리엄 페리 전국방장관을 임명해 그에게 북핵사태 전반에 대한 재평가와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마련하도록 위임했다.

페리 조정관은 활발하게 관련국들을 순방했고 북한에도 다녀왔다. 특히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남북관계가 해빙기를 맞게되면서 페리 조정관은 임동원 수석과 깊은 협의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실무적 협의를 송 장관이 맡았다는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특히 2002년 10월 시작된 이른바 2차 핵위기의 현 주소가 당시 대북정책조정관을 임명할 때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세인의 관심이 쏠린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의회내 비판여론이 비등하면서 올해안에 새로운 대북정책조정관을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만일 대북조정관이 임명되면 `페리보고서’와 같은 새로운 보고서를 만들어 미국의 향후 대북정책의 지침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페리 보고서 성안에 깊이 간여한 송 장관의 경험과 노하우가 새삼 빛을 발할 것이라고 외교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한 소식통은 “미국내 흐름이 대북정책조정관을 요구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9.19공동성명 이행이 북미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는 상황을 종합해보면 송 장관의 역할이 새삼 주목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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