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美작가 수키 김 “위대한 영도자가 北주민 두뇌 점령”

▲ 교포작가 수키 김 ⓒ동아일보

북한은 이 세상에서 제일 폐쇄된 나라로 알려져있지만, 북한에서 지난 십 수년간 주민들이 기아와 박해로 수없이 죽어갔다는 사실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지난 몇 해동안 하다가 말다가, 이제는 실패로 판명난 6자회담에 참석한 나라들은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굶어죽고 맞아죽은 것에는 별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북한은 최근 남한출신 반기문이 머지않아 곧 이끌어나갈 유엔의 안보리 비확산정책에 한 방 먹이면서, 모든 핵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또다시 깨버렸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정한 부시정권은 보다 더 강력한 경제봉쇄와 자금차단으로 북한을 몰아세우자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북한이 움찔한 적은 없다. 북한은 이제 아홉번째로 핵보유국이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앞으로 무엇이 변할지, 특히 북한주민들에게 무슨 변화가 있을지 한심하기만 하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남한을 침공했다. 우리 할머니는 당시 폭격을 피하여 자식 다섯을 데리고 피난민으로 꽉 찬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을 가려 했다. 사람들은 젊은이들에게 아녀자들이 우선이니 기차 자리를 양보하라고 아우성이었고, 그래서 자리를 양보한 우리 외삼촌은 혼자 서울에 남아 가족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그후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다음 차편으로 따라오겠다던 당신의 첫아들을 만나지 못했다. 할머니가 타신 기차는 서울발 남행 피난열차의 마지막 차였다. 나중에 옆집 사람이 전해준 소식에 의하면, 외삼촌은 북한군 병사들에게 끌려가셨다고 한다.

한국의 유교적 전통에 의하면 가족을 방기하는 것처럼 큰 죄악은 없다. 그런데도 남북한 정권은 이렇게 헤어진 수백만 이산가족들의 재결합을 외면하고, 남북평화를 위한 정상회담 선전용으로 몇몇 이산가족의 상봉만을 허락해왔다.

2002년 2월 나는 외삼촌를 찾으러 평양에 갔다. 외삼촌을 찾지는 못했으나 노동당 간부들은 여럿 만나보았다. 외국과의 문화교류를 담당한 위원회의 의장이나 유엔 북한대사는 자신들의 적은 한반도를 갈라놓고 자신들을 고립시키고
봉쇄하는 미국이지, 남한이 아니라고 계속 주장했다. 그들은 미국은 왜 핵무기를 가져도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미국이야말로 핵무기를 양민들에게 떨어뜨리며 온 세상을 전쟁으로 못살게 구는 나라라고 주장했다.

나에게 가장 뚜렷하게 남은 평양의 인상은 그 도시를 짓기 위해서 최소한 한 세대가 몽땅 소멸되었을 거란 인상이었다. 거리는 거의 텅 비었고, 에너지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평양을 보면서 이전에는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책이나, 그림이나, 건물들은 위대한 영도자가 만들었거나, 위대한 영도자에 관한 것들이었다.

북한정권에서 찍어내는 유일한 신문인 로동신문은 4쪽으로 되어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위대한 영도자를 찬양하는 글들 뿐이었다. 정권이 운영하는 텔레비전에서도 언제 찍은지도 모르는 위대한 영도자의 사진만 계속 방영되었다. 어디를 가나,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는데, 이것들도 가사를 들으면 모두 위대한 영도자에 관한 노래들뿐이었다.

북한정권은 지난 5천년간 불교, 샤머니즘, 유교로 이어온 한국역사를 철저히 지독하게 지워버렸다. 그리곤 ‘자주’라는 정치사상으로 만든 “주체사상”으로 모든 사람들을 최면에 걸어 놓았다. 위대한 영도자가 역사를 잃어버린 북한주민들의 두뇌를 점령해버린 것이다.

우리 외삼촌도 이런 땅에서 생존하려면, 당신이 알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거나, 위대한 영도자를 믿어야만 하셨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두 개의 한국이 통일될 것을 바라며 사셨을까?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믿으시면서, 25년전 잃어버린 아들을 그리워 하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시고 말았다.

1970년대 나는 남한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부르면서 자랐고, 지금도 남한의 어린이들은 이 노래를 즐겨 부른다. 그런데 이제는 남한사람들이 북한사람들을 형제라고 부르면서도, 김정일정권 붕괴 얘기만 나오면 표정이 달라진다. 38선이 무너지면 수백만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몰려올 것을 걱정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점점더 국민들에게 통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는 포용정책이란 이름으로 북한의 경제를 개혁한다면서 계속 퍼주었는데, 이제는 그 돈이 몽땅 북한의 핵개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두려워하는 나라는 남한만이 아니다. 북한의 제일 막강한 동맹이자 이웃인 중국이나 러시아도 북한난민들에게 들어갈 비용을 원하지 않는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 요원과 중국공안의 국경봉쇄 공동작전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건너간 북한사람들은 30만명에 달한다. 북한의 위협으로 일본은 2차대전 후 미국이 만들어준 평화헌법을 수정하고 재무장할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미국은 3만2천명에서 곧 더 감축될 미군을 용산기지에 주둔시키고, 남한과의 교역을 계속 증대시키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철저히 장악하고 있는 중국에게 이 지역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그 혜택을 받을 사람들은 북한주민들밖에 없는데, 강국들이 모인 6자회담에서는 이 북한주민들을 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회담의 결과에 무슨 기대를 걸 것인가?

지난 달 세계식량기구에서는 북한의 식량부족을 메꾸기 위한 지원을 호소했다. 북한 당국은 지난 8월 홍수로 인하여 수백명이 집을 잃고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여러 인권단체에서는 수십만이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제사면기구에서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 그동안 40만이 죽었고, 지금도 지하수용소에 15만명이 갇혀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지난 7월 4일 미사일을 쏘아올린 후, 국제적 대북 인도적 지원도 대폭 감소했다.

1970년대 남한정권은 북한의 굶주린 아이들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북한은 지구상 최악의 지옥이고, 북한지도부는 자기들밖에는 모르는 악독한 폭군들이라고 선전했었다. 그후 수십년간 북한에서는 2천3백만 인구의 10분지 1이 기아로 사망했고, 그후 사정도 달라진 것이 없다. 38선도 그대로 있다.

부시정권이 한 일이라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른 것밖에 없다. 평화협상에서는 아무런 결과도 없다. 유엔은 이번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의견이 분분하다. 이제 북한정권은 자신들이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래서 바뀐 것이 무언가?

이렇게 말들만 많은 중, 연료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북한주민들에 시베리아 한파가 곧 들어닥칠 것이다. 세계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발칵 뒤집혔는데도, 북한의 로동신문에서는 핵실험 성공을 자축한다는 글을 한 줄 올렸다. 나머지 기사들은 몽땅, 중국이나, 라오스, 쿠바같은 공산국가들에서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께 꽃다발을 보냈다는 소식들뿐이었다.

번역/남신우(在美 북한인권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