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진보는 김정일과 묶인 쇠사슬을 끊어라

386 세대가 정치권을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요즘, 난데없이 386운동가 출신 인사들이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다.

성균관대를 졸업한 장민호 씨는 89년 이후 세 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조선 노동당에 가입했다고 국정원이 밝혔다. 장씨는 한국에서 고정간첩으로 활동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민주 노동당 전 중앙위원 이정훈 씨와 사무부총장 최기영 씨는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이번 사건에 몇 가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사건의 진위여부 차원이 아니다. 남과 북 정권이 한 목소리로 ‘민족공조’를 외쳐대는 마당에 간첩이 횡행하는 현실이 이율배반적이라는 반응이다. 또한, 정권 핵심부와 교류한 바 있는 386운동권출신이자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있는 공당의 사무부총장이 연루된 사실도 충격적이다.

북한의 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마당에 김정일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간첩행위를 한 386 운동권들의 사고가 정상적인지도 의문이다. 수백만이 굶주림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참혹한 북한의 현실이 전 세계에 폭로된 상황에서 간첩활동에 협조하고, 그것도 모자라 해외에서 직접 북한 공작원을 만나는 진보운동가들이라니?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라면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과거 주사파 운동을 경험하거나 지켜본 세대들은 이번에 간첩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이 어떤 정신 상태에 살고 있는지 대략적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법하다.

1980~90년대, 학생운동의 80% 가까이가 ‘김일성·김정일 장군님’을 영도자로 모시고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아 남조선해방 혁명을 꿈꾸던 이른바 민족해방그룹(NL)의 영향 아래 있었다. 어림잡아 100명 중 30명은 김일성·김정일 장군을 존경했고, 30명 중 10명은 두 장군님을 위해 목숨과 인생을 걸었다.

독재와 불평등을 낳은 것은 민족의 분단이다. 민족을 두 동강이 낸 원흉은 미제국주의다. 김일성·김정일을 모시고 온 민족이 단결해 미제국주의를 몰아내면 조국의 통일과 인민의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이 북한의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김정일이 남조선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남조선 혁명의 목표와 방도였다.

남조선의 젊은 혁명가들은 그것을 믿었다. 위대한 영도자의 지도로 민족의 모순과 나아갈 길을 깨달았다고 믿었다. 조국이 처한 정치적 현실을 자각함으로써 육체적 생명보다 더 귀중한 정치적 생명을 얻었다고 믿었다.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고 믿었다.

남조선의 어린 혁명가들은 자신을 진정한 인간으로 만들어준 장군님을 수령으로 모시고 수령의 뜻에 따라 남조선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바치는 것이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믿었다. 장군님께 충성하는 사람이 가장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다.

뜨거운 여름날에 문을 있는 대로 닫아걸고, 장군님의 항일투쟁을 담은 영화 ‘조선의 별’과 ‘민족의 태양’을 시청했다. 추운 겨울, 앉아있기도 힘든 냉방에서 장군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고 토론했다. 장군님에 대한 충실성이 높아질수록 더 높은 상층조직에 영입되었고, 그것은 곧 김일성·김정일 수령과 한층 가까워지는 것이라 믿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학생운동을 10년 가까이 한 일부 활동가들은 북한과 직접 선(線)이 닿는 조직이나 그 산하조직 쯤에 영입되기도 했다. 진정한 수령의 전사가 되는 것이다. 이들이 혁명 조직에 영입되는 날에는 더 높은 정치적 생명을 얻었다는 행복감을 맛보기도 했다. 자신을 이끌어준 장군님께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고, 식민지 대리정권과 미제국주의를 반드시 몰아내겠노라고 이 악물고 맹세했다고 한다.

90년대 초반에는 김일성·김정일 수령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건 사람들이 수천에서 수만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의 절대다수는 흐르는 세월 속에 젊은 시절의 열병 같았던 사상을 조금씩 떼어 흘려보내며 살아왔을 것이다. 현실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관념적 사상은 늘 그렇게 시간과 함께 퇴색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김정일을 수령으로 모시는 남조선 혁명 전사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의 목숨과 정권을 위해 북한 주민의 인권을 말살하고 핵무기를 만들어 평화를 위협하는 민족의 반역자 김정일을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로 여기는 비현실적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 어린 꽃다운 스무살 젊은이들은 사상적 감옥 속에서 딱 두 가지만 배웠다. 하나는 미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요, 다른 하나는 김일성·김정일 장군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었다. 그 대가로 어떤 것이 행복이고 불행인지, 어떤 것이 이익이고 해악인지를 헤아리는 눈을 잃었다. 몸으로는 반민주, 반민족, 반역사적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을 진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사상적으로 병들어 버린 이들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27일 성명을 통해 “남북관계가 북미 간 대결로 치닫자 보수화와 안보정국을 이어가려는 극우세력의 기도가 진보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조작사건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은 사상적으로 병든 과거 그들의 동지들을 구덩이로 차 넣는 행위다. 진심어린 반성을 통해 낡은 사상과 세력을 끊어 내는 용기가 필요할 때다. 한국의 진보와 김정일 수령 사이에 묶인 쇠사슬을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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