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진보는 北 민주화 위해 보수와 경쟁할 때다

‘백두의 청년대장’으로 불린 김정은이 결국 왕권을 이을 ‘황태자’가 됐다. 북한은 지난 28일 44만에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소집해 김 씨 왕조의 3대(代) 세습 완성을 위한 그 첫 밑그림으로 28세의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데뷔시켰다.



3대에 걸친 권력세습은 세계사적으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현대사 초유의 사건이다. 자본주의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군주제를 버리고 공화제(republic)를 채택한 나라라고 한다면 3대 세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역사적 퇴행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절대다수 국가가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인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가 인민의 인권과 이익을 위해 국정을 운영하며, 일정한 임기로 교체돼야 한다’는 공화제의 핵심 가치를 받아 들였다.



북한은 어떤가. 공식 국가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보이듯 절대왕정 국가가 아닌 인민들에게 주권이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1948년 한반도의 북쪽에 단독 정부를 세운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인민에 의한 정권 교체는 없었다.


김일성은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는 형식적으로나마 프로레타리아 당에 의한 계급독재를 실시했으나, 김정일에게 권력세습을 실시한 이후로는 절대군주제보다 더 퇴행적인 수령독재를 실시해왔다. 북한의 권력은 김일성 일가의 것이고 북한의 모든 사람과 기구는 이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수령독재의 핵심이다.



북한은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당 규약 서문을 “김일성 동지에 의해 창건된 주체형의 혁명적 맑스-레닌주의당”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으로 바꿨다. 아예 당명까지 ‘김일성당’으로 바꿨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로써 만천하에 조선 노동당은 ‘김 씨 왕조의 김 씨 왕조에 의한 김 씨 왕조를 위한 당’이라는 사실을 선포했다.



이제 북한은 김정일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절대 권력자로 자리매김 하는 일만 남았다. 이를 위해 군을 이끌어본 경험도 능력도 없는 28세 청년을 인민군 ‘대장’ 칭호와 함께 당 군사위 부위원장 자리에 한 번에 올렸다. 



인민들의 뜻과는 상관없는 3대세습이 보란 듯이 시도되고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혼란은 없다. 왜 북한 주민이라고 3대세습에 불만이 없을까? 내부소식통들은 “김정은은 아버지 보다 더 표독스럽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김정은에 대한 불만스런 한 마디가 가져올 온 가족의 비극을 알고 있기 때문에 체념하고 있을 뿐이다.  


3대세습은 북한 주민들에게 물난리의 몇 백배 되는 재앙이나 다름 없다. 독재의 재앙이 자기 대에 끝나지 않고 자식들까지 이어져 아들 딸들이 김정은을 모시고 살아야 된다니 ‘억’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진보’를 자임하는 남한 내 진보.좌파 진영의 반응은 어찌된 일인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 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도 ‘민주-반민주’의 구도를 통한 편가르기에 앞장서는 진보.좌파 진영의 태도로 보기에는 납득하기 힘들다.  



대표적 좌파 정당인 ‘민주노동당’의 논평은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한 것이 전부다. 국민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내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최근 당대표 선출 과정에서 ‘진보’ 논쟁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민주당의 경우 온도의 차이는 있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28일 내놓은 논평을 보면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우리로서는 아무리 체제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론은 “교류협력을 통한 개방을 촉진시켜 나가는 것이 첩경”이라며, 김대중 정부 이후 정립된 ‘햇볕정책’에서만 그 해답을 찾으라고 강변하고 있다. 10년간의 햇볕정책에도 불구 3대 세습은 진행됐고, 인민들에 대한 탄압은 중단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시민사회 진영은 아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6월 정부의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서한까지 보내 파문을 일으켰지만, 3대 세습은 못본척이다. ‘경실련’이나 좌파 진영의 통일운동 단체 등도 마찬가지다.



3대 세습이 공식화 된 직후 “김정일 정권에게 지금 당장 3대 세습이라는 ‘희대의 코미디 쇼’를 걷어치울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힌 ‘북한민주화네트워크’나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보수 단체의 태도와 대비된다.



그렇다고 진보진영이 모두 3대 세습에 침묵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먼저 민노당과 ‘종북주의’ 논쟁 끝에 2008년 분당한 ‘진보신당’의 경우가 그렇다. 진보신당은 29일 논평을 통해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나 현대 민주주의의 일반적 정신 등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꼬집었다.



당대표 선거에 단독 출마한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도 30일, 북한의 3대 세습을 강력하게 비난하며 “진보진영이 (3대 세습과 관련해) 명확한 자기주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진영의 북한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며, 만약 입장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진보진영 역시 정상적인 조직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매우 정확한 지적이다.



하지만 진보.좌파 진영의 대체적인 시각은 ‘북한 내부의 일이기 때문에 간섭할 수 없는 일’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대화와 협력의 상대인 북한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은 궁극적으로 통일을 위한 것이고, 통일의 대상은 정권만이 아닌 남북 인민들 간의 통합을 말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3대 세습을 통한 김 씨 왕조의 권력 연장이 인민들에게 어떠한 고통을 안길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30일 진보매체인 ‘프레시안’에 게재한 ‘진보진영이 북한 민주화 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제목의 글은 무게 있게 다가온다. 



손 교수는 “유명환에 대해 거품을 품으며 비판을 하면서도 그보다 백배는 더한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옹호하는 이중 잣대를 벗어나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확실하게 비판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또 “진보적인 북한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 민주화는 기본적으로 북한 민중의 주체적 실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정작 우리의 삶의 현장인 한국사회에서는 ‘반민주화운동’에 앞장을 서면서 엉뚱하게도 북한의 민주화를 돕겠다고 나서고 있는 뉴라이트와 같은 외부세력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손 교수의 주장에는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뉴라이트’ 진영에 대한 반감이 묻어난다. 북한민주화운동에 누구를 배격하자는 주장은 편협한 사고다. 또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권한이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북한 민주화운동은 도덕적 우월성이나 특정 이념을 가진 집단.개인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 민주화 문제는 좌-우, 진보-보수 진영이 합작을 논할 수 있는 명제 중 하나다. 좌우합작을 통해 ‘김 씨 왕조’만을 섬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북한 인민들을 해방시킨다면 인류역사에 중대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손 교수가 북한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보진영의 각성을 촉구한 것은 곱씹어 볼만하다. 북한문제만 나오면 그게 핵문제든, 세습문제든지 간에 무조건 꼬리를 내리는 진보.좌파 진영의 ‘종북적 속성’에 일침을 가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노당 분당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진보.좌파 진영의 ‘종북주의’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다. 진보.좌파 진영내 건전하고 합리적 의식을 지닌 그룹이 우선적으로 북한 민주화운동에 대한 외면과 무관심으로부터 진지한 반성과 새로운 모색을 시작한다면 얼마든지 시작은 가능하다. 과거 민노당에 참여했던 주대환 씨가 이끄는 사회민주주의연대 그룹은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좌파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온 바 있다.    



인류역사의 진보를 가로막는 북한의 3대 세습 사태를 계기로 손 교수가 제기한 ‘진보적 북한 민주화운동론’에 대한 진보.좌파 진영 내의 토론이 활발하게 타오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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