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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진행된 동해선·경의선 열차 시험운행으로 남북관계 전반에 훈풍이 불고 있지만 29일부터 진행되는 남북 장관급회담은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취임 이후 줄기차게 남북관계 ‘정례화’와 ‘제도화’를 강조해왔다. 이번 장관급회담은 열차 시험운행에 이어 남북관계 정례화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란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송금문제 지연에 따른 내외적 여건의 악화가 우선 넘어야 할 벽이다. 한국 정부는 최근 지난 장관급회담에서 약속한 쌀 40만t 대북차관을 북한의 2.13 합의 이행 이후까지 유보하기로 방침을 결정했다.
정부 당국자는 25일 “지난 4월 남북경제협력추진위(경추위) 제13차 회의에서 밝혔듯 2.13합의 이행을 지켜보면서 대북 쌀 지원 속도와 시기를 조절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경추위에서는 5월 말에 첫 쌀 차관을 지원키로 했었다.
정부는 지난 15일 대북 쌀 차관 비용으로 1억5400만 달러와 수송비 등 부대경비로 186억원을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출하기로 의결했다. 그러나 아직 쌀 구매와 이를 실어 나를 배를 빌리는 용선계약은 맺지 않아 물리적으로 5월 말 지원은 어렵게 됐다.
쌀 지원 유보는 회담 타결의 가장 큰 암초다. 작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열린 19차 장관급회담에서도 우리 정부가 쌀 지원을 유보 방침을 밝히자 북한은 이에 반발 회담 일정을 하루 앞당겨 철수해 버리기도 했다.
때마침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도 24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남 협력사업을 핵문제와 연관시키고 누구의 개혁․개방까지 들먹이면서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하는 것은 우리와 민족의 통일 지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엄중한 도발이고 도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남북관계 파장에도 불구하고 대북 쌀 지원을 북한의 2.13 합의 이행 이후로 미룬 것은 적절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남북관계 진전에 일시적 장애가 된다 해도 북핵 폐기를 위해선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장관급 회담 당사자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번 회담을 낙관하는 분위기다. 이 장관은 회담 파행에 대한 우려에 대해 “쌀 차관과 장관급회담은 별개의 사안으로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지난 경추위에서 쌀 40만t 지원을 5월 말부터 시작하기로 합의했지만, 북한의 2.13 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지원 시기와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고 미리 밝혔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정부는 회담 초반 파행을 막기 위해 쌀 차관을 유보하게 된 배경에 대해 장시간에 걸쳐 북한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회담이 순항할 경우 남과 북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남북 열차 단계별 개통’ 문제를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는 일단 개성공단 통근 열차 개통을 거론할 방침이다.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가 이미 1만5천명을 넘어섰고, 추가분양으로 그 숫자가 급증한다는 점을 내세울 예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회담의 주요 화두는 ‘평화체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장관은 “이달 말 열리는 장관급회담부터 중심화두가 될 것은 ‘한반도 평화’”라며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각 분야별로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나친 남북관계 과속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6자회담에 대한 모멘텀을 끌어내지 못하는 남북관계의 구조적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정체된 6자회담을 추동할 수 있다는 시각이지만, BDA 북자금 송금과 미북관계 개선를 앞세우고 있는 북한에 대해 과욕이라는 비판도 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