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 한국에서 9년 만에 집권한 진보 정부가 북한 정권과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제재와 압박 속에서 핵무장과 주민 통제를 거듭해온 김정은에게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호재(好材)가 될까요, 악재(惡材)가 될까요? 김가영 기자가 분석해드립니다.
남북 정상회담과 개성공단 재개 그리고 사드 배치 재검토까지. 지난 9일 한국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그간 북한 및 외교·안보 분야와 관련해 내놓았던 주요 공약들입니다. 제재와 압박 일변도였다고 평가되는 지난 보수 정부 때와는 달리, 언뜻 봐서는 북한 김정은이 환영할 만한 내용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실제 김정은으로선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진보 정부가 집권해야 북핵 협상이나 제재 완화, 한미동맹 이완 등을 노려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대선 당일이었던 지난 9일까지 노동신문이 ‘반동 보수세력 청산’을 주장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전문가들도 김정은 정권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향방에 주목하면서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당시로 돌아갈 가능성을 내심 기대할 수 있다고 관측합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은 정권의 목표는 금강산 관광 재개나 개성공단 재개, 5·24 조치 해제이기 때문에, 남한의 더불어민주당 정부의 등장에 대해서 내심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대선 기간 동안 무리한 도발 등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고요.
하지만 한국 내 진보 정부의 등장이 마냥 북한 김정은 정권에게 호재가 될 것이라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 해법이나 남북관계 등에 있어 전향적인 정책을 구사하려 할 수는 있지만,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국제공조의 틀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 제재와 외교 고립’을 핵심으로 하는 대북 압박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동맹국인 한국이 미국과의 협의 없이 북한과 대화 무드로 전환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습니다. 또 중국 정부까지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을 경고하고 나선 이상, 북핵 문제 해결의 단초가 형성되지 않는 한 북한과의 협상 국면은 쉽게 전개되기 어려울 전망입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 현재 사드 문제라든가 북핵 문제 등으로 인해서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 대북정책을 거슬러서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김정은이 너무 많은 기대를 할 수 없는 그런 상황도 함께 공존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설령 남북 교류가 활성화 돼 북한이 개방될 여지가 생긴다 하더라도, 북한 정권으로선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간 북한은 ‘고립 전략’을 고수하면서 핵개발 시간을 벌고, 외부 세계로부터 주민들의 눈과 귀를 닫는 데 주력해왔기 때문입니다.
대신 전문가들은 남북 교류 재개를 통한 북한의 개방이 민생 개선과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민들에겐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관측합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주민들 사이에서 개방에 대한 물결이나 기대가 커질 것이고, 이런 개방적인 정책이 펼쳐지게 되면 주민들 삶의 질도 조금 더 향상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북한 주민들이 남한 실상이라든가 남한 현실을 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에 따라 새 정부가 북한 정권과의 접촉만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꾀하기 보단, 북한 주민들과의 대화 계기를 마련할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옵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 정보를 접하면 접할수록 자연스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보다는, 남북한 접촉면과 북한 주민들이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면을 확대하는 게 중요할 것입니다.
9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문재인 정부가 과연 김정은의 셈법을 바꾸고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전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