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체제 과(過)적응된 정치인, 北주민 제대로 이끌수 있나

문명격차는 통일을 가로막는 핵심원인

남북한의 통일이 어려운 것은 문명적인 차이가 크고 문명의 통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통일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핵심적이고 중점적으로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문명의 통일이다. 문명적 차이에 대한 예를 몇 가지 더 들어보자. 애완견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이지만, 애완견을 학대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애완견을 학대하는 것을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명적 차이다, 이런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살기는 힘들다. 또 공공화장실의 휴지를 자주 훔치는 사람들 때문에 화장실의 휴지 비치가 중단된다든지, 화장실에 침으로 뱉거나 더럽게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장실 사용이 거려진다면 이런 일들이 점점 불만을 고조시킬 수 있다. 인권의식도 마찬가지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켜야 하는 인권 규칙을 몇 십 개씩 내민다면 심각한 심리적 압박, 경영적 압박으로 느낄 것이다. 한편에서는 그런 모습에 대해 인권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인권에 대한 초보적인 태도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런 문제들로 심리적인 골이 깊어지면 함께 살 수 없다고 느낄 것이며, 정치적 대결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다.

남북한 간에도 이러한 경제적, 사회문화적, 문명적 요소의 격차가 무척 크다. 경제적 격차가 큰 것이 아주 치명적이다. 세계적으로 통일이 실패한 사례는 많지만 그 중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통일 실패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원인으로 종교적 차이와 민족적 차이를 말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모두 다민족 다종교 사회를 효율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다. 특히 그 시대에는 말레이시아 국민 중 화교가 30%가 훨씬 넘었고 지금도 30%에 육박하고 있지만 60년대 말에 한 번 폭동이 난 이후 큰 어려움이 없이 지내고 있다.

그 당시의 구체적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종교나 민족의 차이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보다 문명적 격차가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북한 간의 문명격차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문명격차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매우 크다. 이런 조건에서 남북한을 하나의 체제로 운영한다는 것은 극심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과 혼란을 불러와 매우 빠른 속도로 통일을 붕괴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북한 사람들이 근대적 사회경험 속에서 순화되지 않은 높은 정치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 된다. 근대적 사회에서 순화되지 않은 거친 정치성은 정치성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근대적 규칙을 어떻게 지키는지, 어떻게 의견을 수렴하고 책임과 의무는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지, 권리와 책임이 무엇인지 등은 근대적인 사회에서의 사회생활 속에서 체득되어야 한다. 그런 배경 없이 정치적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갑자기 주어지면 국가나 사회에 반하거나 심한 부정적 부담을 주는 정치세력을 조직하거나 시위를 하거나 기타 다양한 방향의 정치활동에 이러한 자유들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순화되지 않은 정치성은 대단히 큰 문제이고,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위험요소를 갖고 있기도 하다.

독일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독 사람들은 오랫동안 근대사회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정이 전혀 다르다. 남한식의 제도나 법률을 북한에 바로 적용할 경우 경제적 부담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일 뿐 아니라 그 이전에 혼란이 가중되어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남북한이 하나의 정치단위인데도 남한식의 제도를 북한에 적용하지 않으면 또 다른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생길 것이다. 복지, 의료, 노동체제 등을 북한에 바로 적용하면 국고가 순식간에 바닥이 날 것이며 북한 지역에서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한의 인권기준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정상적 치안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남한의 국민, 정치인, 관료들이 남한식(式) 체제에 과 적응 되어서 북한 사람들을 제대로 이끌기가 어렵다. 북한은 법 규정이 엄격하지도 않으며 법치나 준법에 대한 의식이 아주 약하다. 법이 기준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권력이 있느냐 없느냐 뇌물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된다. 그런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을 지도하려면 합법, 반합법, 비합법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또 북한식의 정치활동이라든지, 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경향, 사회생활의 경향, 욕구와 요구 이런 것들에 대해 책으로 읽어서 아는 정도를 뛰어 넘는 상당한 수준의 감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남한 정치인이나 언론, 학계에서 그 정도의 감각과 리더십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매우 극소수이다. 또한 남한 체제에 너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제를 가르치기도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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