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북핵-경협’ 연계 발언을 문제 삼아 24일 개성공단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에 상주하고 있는 남측 요원 전원의 철수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당국인원 11명을 27일 새벽 철수시켰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 19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20여명과 가진 간담회에서 “북핵문제가 계속 타결되지 않고 문제가 남는다면 (개성공단 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말했었다
북한은 지난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북측에서 먼저 출입사무소 인원을 평양으로 철수시켜 우리 당국인원도 4개월 정도 출입제한조치를 당한 바 있다. 하지만 북측의 요구로 우리측이 철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27일 ‘데일리엔케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역대 김대중-노무현 정권 초창기에도 남북간 교류를 1년간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저강도의 갈등 정책을 펼쳐왔다”며 “이번 조치도 새로 바뀐 남한 정부에 대한 길들이기 작업의 일환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총선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한 정국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한반도 불안을 야기하는 ‘반(反)통일세력’이라는 점을 부각, 총선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일부러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겉으로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이 합의한 ‘10.4 남북정상선언’을 선별적으로 다루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분명해지자 이에 대해 항의를 표시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홍양호 통일부 차관도 27일 통일부 출입기자단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을 바로 치면 퇴로가 없으니까 통일부 장관을 먼저 친 것 같다”고 관측했다.
그러나 홍 연구위원은 추후에도 남한 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 없이는 남북경협도 확대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경우 북한이 더욱 모험적인 대응을 할 수도 있다고 그는 전망했다.
홍 연구위원은 “남한 정부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훼손할만할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지만 북한에게 있어 남한과의 관계개선은 화급한 과제가 아니다”며 “남한의 새 정부가 어려움을 겪으면 정책을 바꿀 것이라는 판단아래 모험주의로 나갈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도 “북한은 북핵 신고와 관련한 모멘텀(추진력)이 계속 낮아지는 상황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한 시점에 모험적인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며 “그 사이 남한 정부에 대한 저강도 갈등 정책은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이제 우리 정부의 입장과 태도를 기다리고 있다”며 “우리 정부의 입장이 강경할 경우 북한도 일정한 시간동안 버티려 하겠지만, 현재 북한의 경제 여건상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북한이 의도적으로 남북관계를 경색시키기 위해 행동을 취하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북한의 이번 초치는 우리가 예견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라며 “지난 10년간의 정부와 비교했을 때 북한과 신(新)정부간의 대치점은 경협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 지켜봐야 하겠지만 남북한간 경협 문제 외에도 계속적인 불협화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전 연구위원도 “북한 측은 후보시절부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예견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놓고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지금까지의 탐색전 이후 북한이 취한 우리 정부에 대한 첫 번째 항의 표시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오전 열린 제2차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를 통해 북한의 이번 조치는 남북경협 발전에 장애가 되는 유감스러운 일이며,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의 정상운영과 우리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법적, 제도적 환경이 필요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인식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고 이동관 대변인이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원칙에는 철저하되 접근방법은 유연한 태도로 대북관계를 가져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철저한 원칙과 유연한 접근방식이라는 실용적 입장 하에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