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이산가족들 “벽에 귀가 있다는데 뭔 깊은 얘길 하나”

“벽에도 귀가 있고 천장에도 눈이 있다고들 하는 데 무슨 깊은 얘길 할 수 있겠냐”


2차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인 24일 남측 가족들이 비공개 ‘개별상봉’ 후 전한 말이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전날에 비해 한결 편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남측 가족들은 맘 편히 북측의 가족들과 얘기할 수 없었던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개별상봉을 마치고 나온 한 남측 가족은 “북한에서 하는 일은 뭔지, 다들 똑같이 입고 온 양복은 누가 해준 건지 묻고 싶어도 물을 수가 있나”라며 “무슨 피해가 갈까 봐, 서로 묻지도 않고 답도 안 했다. 옛날 얘기, 친척 얘기나 했지”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는 뭐 또다시 볼 수도 없겠지만,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몸 건강히 살아계신 거나 확인했으니 그만 됐고, 이제는 만나도 할 말도 들을 말도 없어”라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6.25 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끌려가 죽은 줄 알고 있던 형 신덕균(86) 씨와 상봉한 남측 동생 신선균(83) 씨는 개별상봉 직후 “형님이 통 말을 안 혀”라며 안타까워했다. 선균 씨는 이어 “형이 여태껏 제 나이도 모르고 산 모양”이라며 “81살로 돼 있는데 내가 83살이거든. 그래서 내가 형님께 ‘형이 내 형이여? 아우여?’ 하니까 세 살 아래 아우 맞자고 그러잖어…”라며 눈물을 훔쳤다.


2차 이산상봉에서 유일한 부녀상봉 대상자인 남측 가족 남궁봉자 씨는 “아버지(남궁렬·87)가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낫더라. 말씀도 더 잘하시고 어머니 얘기를 많이 하셨다”면서 “북에서 5남매를 낳으셨는데, 큰딸 부부가 의사라고 하더라. 여기 와서 어렵게 산 건 아닌 거 같지만, 북이 워낙 가난하니까…”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남궁봉자 씨의 고향은 충남 논산이다. 딸 봉자 씨는 “아버지가 고향 쌀이 맛있다는 말을 했다. 고향 쌀을 한 10kg이라도 사올걸, 그게 아쉽다”면서 “또 아버지가 틀니를 하셨는데 이가 안 좋아서 밥을 잘 못 드시더라. 다른 집은 베지밀 사와서 드리던데, 나는 그 생각을 못 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또 다른 북측 상봉자 전영의(84) 씨는 동생 김경숙(81·전경숙) 씨와 권영자(전영자) 씨가 준비한 옷 선물을 하나하나 꺼낼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지켜봤다. 동생 경숙 씨가 “오빠 살아계실 때 이것도 입어보시고, 저것도 입어보시고…”라고 하자 전 씨는 큰 소리로 성을 내며 “너희가 아무리 잘 산다 해도 이게 뭐냐”며 야단을 쳤다.


두 여동생은 “우리가 오빠 한번만 만나보려고 기다렸어요. 그렇게 만난 오빠에게 우리가 가진 것 다 드려도 부족한데…”라며 오빠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하기도 했다.


한편 북측의 형님을 만난 남측의 한 가족에 따르면 북측 형님이 작년 9월 금강산에 이산상봉을 하려 왔다가 상봉이 무산되면서 다시 돌아갔다. 우리 측은 상봉 나흘 전에 행사가 무산된걸 알았지만, 북측에선 몰랐다는 것이다. 이는 북측이 우리 정부가 문제를 일으켜 이산상봉이 무산됐다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