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을 자르는 가위와 전기바리캉 소리가 9평의 남성전문 미용실을 가득 채운다. 바로 탈북자 이영금(사진) 씨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이자 알토란 같이 키워가고 있는 가게다. 이곳에서 이 씨는 네 살배기 사내아이부터 팔순 어르신을 만나며 손끝으로는 이들의 헤어스타일을 완성하고 대화로 이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간다.
직원에서 사장으로 새로운 관계 맺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어떤 자리에 오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이 씨 또한 그랬다. 7년 전 그는 남성전문 미용실의 직원이었다. 굳이 손님을 접대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라 그저 오는 손님의 헤어스타일을 성심껏 다듬어 주는 일에만 전념했다.
그러나 그는 가게의 사장이 된 이후 달라졌다. 손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그간의 안부를 물고 하루하루의 소박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단골손님 목록을 만들어 이들에게는 주기적으로 문자도 보냈다. 여름에는 무료 두피 마사지 문자로 관심을 끌었고, 특별한 단골손님에게는 새로 선보이는 샴푸를 깜짝 선물하기도 했다. 더 친밀해 지고자 시도한 여러 변화가 관계를 더 끈끈한 인연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은 손님과의 인연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었다. 바로 2011년 어느 신문에 이 씨의 창업 이야기가 소개된 일이 있었다. “사장님, 고향이 북한이었어?”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관심부터 “사진 예쁘게 나왔다” “잘 보고 잘 읽었어요”라는 이야기까지, 손님들은 일부러 가게를 찾아 기사를 본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그전까지 누가 묻지 않으면 탈북자라는 것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혹여 가질 편견이 두려웠다기보다 손님과의 관계에서 중요치 않은 부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를 통해 탈북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덕에 손님들의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됐다. 손님에게 김장김치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손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 어머니가 직접 담근 김장김치가 “맛있겠다”는 말 한마디를 기억한 손님이 잊지 않고 김치를 챙겨준 것이었다. 작은 말 한마디를 잊지 않은 손님이 고맙고 또 고마운 순간이었다.
말 한마디로 서로를 격려하기
사장이 되자 손님과의 대화만큼이나 함께 일하는 두 명의 직원과의 대화도 중요해졌다. 직원일 때야 동료로서의 기본 예의만 지키면 됐다. 하지만 사장이 되면서부터는 직원들이 손님에게 더 친절하고 성실히 일할 수 있게 하는 관계가 되어야 했다. 특히 이직이 심한 이 분야에서 오래도록 함께 일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
때문에 이 씨는 직원과의 소통을 위해 말 대신 행동을 선택했다. “고객에게 친절해라”는 말 대신 먼저 고객에게 살갑게 인사했고 일을 할 때 꼭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을 직접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자 직원들도 고객에게 보다 친절해졌고 일하면서 꼭 지켜야 하는 것들도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말만큼이나 행동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했던 셈이다.
물론 서로 간의 오해로 속상한 때도 있었다. 이 씨 가게의 경우 주말은 밥을 챙겨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그 날도 그랬다. 밥을 먹기는 어렵겠다 싶어 사둔 빵도 입에 넣지 못한 채 점심, 저녁때가 지났다. 문을 닫을 시간이 됐고 제법 먼 곳에 사는 직원에게 사둔 빵을 건네며 어서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게 오해의 씨앗이 됐다. 빵 하나도 편하게 먹지 못하게 등을 떠밀어 보낸 행동이 자신을 무시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직원이 “왜 무시하냐”는 문자를 보낸 것이다.
적잖이 당황한 이 씨는 우선 문자를 지웠다. 나쁜 의미는 생각할수록 더 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직원은 자신의 성급함을, 이 씨는 본인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이야기하며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직원과 더 친해 질 수 있었다. 이처럼 사장이 된 이후 주변과의 관계는 보다 돈독해졌다. 서로에게 관심을 표하는 말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 여러 일들로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 든든한 관계를 밑거름 삼아 두 번째 남성전용 미용실 개업을 꿈꾼다. 행복한 대화로 가득한 두 번째 가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