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민주주의 성숙해야 北인권도 개선”

▲ ‘북한인권국제대회-브뤼셀’ 한국참가단 단장을 맡은 유세희 <바른사회시민회의>공동대표

22~23일 이틀 간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참가하는 한국 참가단은 총 12명이다. 유럽의회에서 북한인권실태를 증언하는 탈북자 3명을 제외한다면,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한기홍 대표,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 등 시민단체에서 몇 사람만 참가하는 것이다.

국제대회를 반대하기 위해 떠나는 ‘한반도 평화원정대’는 80명. 참가단의 6배가 넘는 인원이 각자 100여 만원이 넘는 경비까지 들여 행사를 반대하기 위한 원정시위를 떠난다. 브뤼셀 국제대회가 NGO 대표들과 유럽의회 의원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리는 전문가 회의인 점을 감안한다면, 전체 회의 참석자보다 많은 셈이다.

이렇듯 웃지 못할 코미디가 2006년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럽지역의 양심 있는 세력과 ‘북한인권운동’ 연대를 위해 떠나는 12명의 참가단을 대표하고 있는 유세희(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한양대 명예교수) 단장을 만났다.

유 단장은 ‘평화원정대’에 대해 묻자마자 ‘국가적 망신’이라고 일축했다. 이역만리 타국에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팔 걷고 나서는 유럽의 지식인들 앞에 부끄러울 따름이라는 것이다.

유 단장은 북한인권운동이 국내보다는 해외 활동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도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의 성숙이 선진국의 필수 조건이라는 점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동포들의 현실도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은 전 세계인의 손가락질을 받을 뿐이라는 것.

北 인권운동 위해 南민주주의 의식 더 성숙해야

또 국민들의 정서도 자국민을 탄압하는 북한 정권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버리고 있다며, 현 정부의 이른바 ‘평화번영정책’도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말살정책을 펼치고 있는 북한정권과의 관계 개선이 민주국가인 한국에 과연 어떤 득으로 돌아올 것이냐는 냉정한 질문도 던졌다.

–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서도 공동대회장을 맡았고, 이번 브뤼셀 대회 한국 참가단 단장도 맡으셨는데, 이렇게 북한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있다면

중국, 러시아 분야 전공이긴 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논문도 많이 써왔다. 그러면서 자연히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유감스럽게도 국내에서는 지척에 있는 북한의 내막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정부의 정책도 북한을 자극하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에 좋지 않다는 쪽이어서, 자연히 북한인권문제가 뒤로 가려진 감이 있다. 이제는 북한인권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정부의 뜻이 그러다보니 다들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누가 해도 해야 하는 문제이고 정년도 마쳤으니 미력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입장에서 맡게 됐다.

– 서울대회 공동대회장으로서, 지난해 12월 열린 서울대회를 평가하신다면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가장 큰 성과라고 본다. 그동안 같은 동포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극히 미비했다. 오히려 국제적으로 외국사람들이 더 활동하고 있어, 그들 보기에 창피할 정도였다. 국내에는 북한인권 NGO가 몇 개 안된다. 지금까지 몇 몇 분들의 희생으로 이끌어 온 부분도 있지만, 지원이 없다보니까 사실상 활동이 미비했다. 국제대회가 언론에 크게 다뤄지면서 국민들도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또 대회를 계기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 유대와 네트워킹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을 두 번째 성과로 볼 수 있다. 북한인권문제는 남한 내에서만 떠든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국제적으로 공조가 필요한 문제다.

세 번째 성과는 실제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국제대회 뿐 아니라 유엔에서도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됐고, 외국 NGO들이 꾸준히 문제제기 한 결과이긴 하지만 북한 정부에 상당한 정도의 압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 정부도 자극을 받기 시작한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수박 겉핧기 식이긴 하지만 북한인권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겠다는 등 전에는 없던 일을 하고 있다. 대북정책 면에서도 최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를 경제지원과 연계할 생각이 있다고 밝히는 등 약간의 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그칠 것은 아니고 계속적으로 논의하고, 국제적으로 거론해야 할 것이다.

– 지식인층에서는 북한인권문제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나

전에 비해서는 많은 호응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대회를 보면서 나 자신도 놀라고 흐뭇했다. 특히 대회장에 젊은층들이 많이 참석, 큰 호응을 보였다. 앞으로 북한인권운동의 장래가 밝다는 느낌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는 말을 듣게 됐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관망하고 있다. 아직 한국의 민주주의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토론이 이뤄지기보다는 자기 목소리만 감정적으로 떠드는 수준이다. 지식인들도 이해관계를 따져서 정치적인 주장들만 내세운다. 인권은 체제나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근본의 문제인데,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것은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고 남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의 민주화가 성숙될수록 북한인권도 개선될 수밖에 없다.

-이번 브뤼셀 대회는 어떤 의미가 있나

북한인권문제와 관련된 국제회의는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대회가 북한을 자극해서 북한 인권상태가 더 나빠진다고 말한다.

그들은 북핵문제가 해결이 잘 안되니까 미국이 인권문제을 앞세워 북한을 와해시키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EU에는 그런 논리가 안 통한다. EU가 미국의 대북정책에 편승해서 거기에 앞잡이 노릇이나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그들이 북한 붕괴를 왜 원하겠는가?

북한인권문제는 사실 유럽에서 먼저 적극성을 보였다. 미국보다 먼저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다. 유럽은 원래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전통이 있는 곳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한인권을 주제로 한 국제회의가 유럽에서 개최되는 데 의미가 있다.

‘평화원정대’ 국내외적으로 외면받을 것

– 통일연대 등 일부 친북단체들이 브뤼셀 국제대회를 반대하기 위한 ‘평화원정대’를 파견한다고 하는데

국가적 망신이다. 유럽 사람들조차 멀리 떨어진 북한 주민들의 생명과 인권을 걱정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오히려 ‘북한은 인권 탄압 없는 나라’ ‘탈북자들은 속아서 남쪽에 온 사람들로 남한에 와서 더 고생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100% 인권문제 없는 나라는 없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도 인권문제는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과 같이 국가가 나서서 조직적, 제도적으로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위대 활동에 국민들이 얼마나 지지하겠는가. 극소수만 지지하지 대부분은 외면하고 있다.

– 정치학자로서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방안을 말씀해주신다면

북한의 기본적 문제는 특정의 인물과 체제의 운명이 하나로 엮어져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21세기 어디를 통틀어 봐도 부자(父子)가 60년 이상 독재를 하는 나라는 없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안하면서 경제문제가 어려워졌고, 국제환경도 불리해지니까 체제 유지에 대한 절박함에 빠지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정권은 더욱더 억압과 협박, 물리적인 힘에 의지하고 있다.

자국민 탄압하는 정권과 관계개선해서 무엇하나

마치 환경은 크게 바뀌었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모양새다. 언젠가는 보이게 되기 마련인 것을 강압정책, 인권말살정책으로 강제로 막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북한을 조금이라도 압박한다면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요덕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 중 많은 부류가 무역부, 외무성 등에서 외부를 접촉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귀 막고, 눈 가리려고 해도 한계가 있고, 부자연스러운 상황만 연장될 뿐이다.

저런 체제 하에서는 인권탄압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그대로 놔뒀다가는 많은 동포들이 죽거나 고통받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경제상황이 개선되면 인권도 나아질 것이라며 그동안 퍼주는 일만 해왔다. 얼마나 줘야 저 체제가 안정되겠는가. 또 우리의 지원이 경제안정과 민생문제 해결에만 쓰인다는 보장도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자기들 스스로가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하고 개혁개방을 해야지, 자꾸 주기만 한다고 해서 뭐가 나아지겠는가.

–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북한인권문제가 100% 노출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렇지, 정부에서도 그 실상을 모르고 있지는 않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모른 척한다’는 것인데, 이런 것은 옳지 않다. 물리적인 힘에 의해 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북한인권문제는 개선될 수 없다. 경제문제 또한 폐쇄정책을 계속 고집하면 안 된다. 그런 정권이 유지될수록 고통만 커질 것이다.

북한의 이미지가 개선돼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한의 관계개선 정책도 남한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현 정부가 북한의 탄압 정책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춰질 때 대북정책은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저런 체제와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관계가 무지개 색깔로 이뤄졌나. 그동안 전쟁 위협을 막았다고 하는데 안 그랬으면 전쟁이 났겠는가. 북한 사정이 개선된 게 있나. 지금은 하나라도 제대로 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북한의 인권문제를 방관함으로써 남한이 받는 손실도 무시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만으로는 존경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문화수준도 높아져야 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딴 사람도 아니고 동포들의 인권도 모른 척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 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특히 반미감정을 자극해 정권을 연장하는 것을 목표로 둔 권력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정치인들이 각성해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북한 동포들과 민족 앞에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