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딸이 일본가요 부르자 北아빠 “북에선 안돼 안돼”

금강산에서 진행된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둘째 날인 21일, 남북 이산가족들은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60년 만의 만남이 2시간씩 끊어서 상봉이 이뤄져 곳곳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북측 외삼촌 도흥규 씨(85)를 만난 우리 측의 조카 이민희 씨(54)는 “방안에서 이야기하니 확실히 편하고 좋았다”면서도 고작 두 시간 뿐인 짧은 개별상봉 시간을 아쉬워했다.

민희 씨는 “어제 첫 상봉이 끝나갈 때 삼촌께서 이걸로 모든 상봉이 끝난 줄 알고 테이블을 두드리며 화를 내셨다”며 “조카들이 있다가 또 볼거라며 여러 번 설명해드리자 ‘꼭 또와, 꼭 와’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북측 사촌누나인 강영숙 씨(82)와 재회한 정구 씨(81)도 “(오전)11시30분 돼서 안내하는 사람들이 나가라고 하니까 바로 나가버렸다. 이런 상봉행사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렇게 한 번씩 만나는 거 가지고는…”이라면서 “개성이나 이런 곳을 통해서 서신교환이 수시로 될 수 있도록 해야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삼촌인 량만용 씨(83)를 만난 우리 측 조카 양옥희 씨(59)는 “작은아버님께서 (개별상봉 도중에) 조카들에게 각자 짧은 글을 하나씩 남겨주셨다”며 “가족끼리 친절하게 잘 살아라, 잘 왕래하면서 살아라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개별상봉을 마친 북측 가족들이 버스를 타고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몇 분 뒤면 밥 먹으러 올 걸 왜 저렇게 버스에 태워 가는지…”라고 안타까워했다.
 
북측 가족들은 오전 개별 상봉 때 북한 당국이 일괄적으로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백두산 들쭉술과 평양술 등의 선물로 건넸다. 남측 가족들은 의류, 생필품, 의약품 등을 선물로 준비했다.

이산가족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두 시간 동안 북측에서 준비한 대동강맥주와 인풍포도술(포도 증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함께했다.

전날 65년 만에 다시 만난 ‘팔순의 새색시’ 이순규 씨(85)는 북녘 남편 오인세 씨(83) 무릎에 냅킨을 건네며 살가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씨는 “오늘 오전에는 주로 살아온 이야기만 들었다”며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금강산에 동행한 형수 이동임 씨(93)는 인세 씨에게 “밉다니까 미워”라며 투정을 부렸다.

몇몇 가족들은 이날 점심상에 앉아서도 자고나면 닥쳐올 기약 없는 이별을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 측 김주철 씨(83)는 식사도중 연신 북측의 형님 김주성 씨(85)와 함께 서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울고 웃었다. 동생 주철 씨는 주성 씨에게 “이렇게 고생만 해서 어떡해, 호강을 해야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후 4시30분부터 이어진 단체상봉에서 일흔을 바라보는 딸인 이정숙(68) 씨의 “아빠, 지금도 그때(어릴 적) 부르던 기억나요? 노래할 수 있어요?”라는 부탁에 아버지 리흥종(88) 씨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노래 ‘백마강’을 부르기 시작했다. 흥종 씨의 고향은 백마강 인근 예산으로 ‘백마강’은 흥종 씨가 젊은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다.

정숙 씨가 아버지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자, 남쪽에서 올라온 흥종 씨의 여동생 이흥옥(80) 씨와 조카들은 부녀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릴 적 추억에 잠긴 정숙 씨가 “5, 6살 때 잔치 있을 때 마다 어른들이 나를 가운데 놓고 노래를 시켰어. 엄마가 나 3, 4살 때는 나를 팔에 놓고 노래를 부르셨어. 아빠 생각나면 나를 안고 이 노래 하셨는데, 내가 아빠한테 지금 그 노래 불러줄까”라면서 일본가요를 부르자, 흥종 씨는 “그 노래를 알아? 북에서 그 노래하면 안 돼”라고 손을 내저었다.

정숙 씨는 재차 “여기 가만히 귀에다 대고 해드릴께. 아빠한테만 한다구요”라고 하자 흥종 씨는 “북에서 그 노래하면 안 돼, 안 돼”라고 말했고, 정숙 씨는 노래 부르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남북 이산가족 530명은 22일 ‘작별상봉’을 하고 2박3일간의 만남을 뒤로 하고 기약 없이 또 헤어진다. 우리 측 90가족·255명이 북측 가족 188명을 만나게 되는 2차 상봉은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2박3일 동안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이뤄진다.

이상용 기자
sylee@uni-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