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美 ‘선거’를 보는 몇 가지 관전 포인트

최근 남미의 정치 풍향계에 관심이 높다. 온두라스의 우파 승리와 우루과이의 좌파 연임에 이어, 지난 13일 칠레에서 우파가 큰 표차로 앞서는 결과가 연출되었다. 칠레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우파 후보가 44%를 획득해 좌파 후보 29%를 크게 따돌렸다. 그러나 누구도 50%를 상회하지 못함에 따라 칠레는 한 달 후인 다음 달 17일 결선 투표를 남겨 놓게 되었다.   


남미라면 전통적인 좌파 강세 지역으로 주목을 끌었다. 남미의 색깔을 보면 콜롬비아와 페루의 우파와 가이아나, 수리남의 중도를 제외하고는 붉은 색이 뒤덮고 있다.


남미가 이렇게 된 데는 칠레 대선으로 거슬러 간다. 칠레는 1990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실각 이후 치러진 민주선거에서 좌파 후보가 당선된 후 이번 대선 전까지 약 20년 동안 좌파가 4회 연속 집권을 해 왔다. 다음으로 1998년 베네주엘라 선거에서 ‘악명높은’ 차베스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차베스는 그 후 연임에도 성공하였으며 지난 2007년 12월 3일 연임제한 철폐를 내건 국민투표를 단행하였으나 부결됐으며,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2009년 2월 15일 재상정해 찬성 54%, 반대 46%로 연임 제한을 철폐했다. 악전고투 끝에 차베스는 자신의 세 번째 연임의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브라질(2003), 아르헨티나(2003), 우루과이(2004), 볼리비아(2005)가 가세한다. 브라질의 룰라 당선에 세계는 주목하였으며 볼리비아의 모랄레스도 원주민(인디오) 출신의 최초 대통령으로서, 체 게라바라가 그들의 권리를 위해 볼리비아의 산악 지대에서 목숨을 잃었던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과연 모랄레스는 취임식에서 남미 독립의 영웅 볼리바르와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대형 걸게 사진을 내 걸었다.


이렇게 지난 10년 간 남미는 붉은 물결로 뒤덮였으며 차베스를 선봉장으로 모랄레스, 카스트로 등의 강경 좌파 그룹은 저 멀리 중동의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도 끈끈한 반미연대를 과시하며 미국의 앞마당에서 세계 반미의 기지 노릇을 자처했다.     


남미에서 이렇게 좌파가 득세하게 된 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본래 좌파의 전통이 강했던 남미는 우파가 집권을 해 왔지만 사회 혼란이 끊이지 않았던 데다, 부존자원과 미국의 도움으로 성장세에 있었던 남미가 1980년대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결정적으로 흔들린 결과다. 남미 우파들이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에 박차를 가했는데 문제는 그것이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우파 정부는 세계 경쟁 시장을 향한 필수 산업 전략으로서의 기술 경쟁력 확보에 소홀했으며 투자 확대도 원활하지 못했고 기득권을 포기하는 구조조정도 계획대로 강력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지지부진한 개혁은 도리어 발목을 잡았으며 재도약을 위한 기반 확립은 이루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1980-90년대 지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지 못한 채 더욱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 같은 경제적 난관과 어려움 속에서 남미 우파 정권들의 누적된 무능에 각종 부정부패 스캔들까지 겹쳐 실망감과 불만이 극에 달한 국민들의 원성이 결국 좌파를 선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좌파 정권들은 초기 빈부 격차 해소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친서민 정책을 통해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차베스는 2002년 우파의 쿠데타를 국민들이 나서서 막아냄으로써 권력기반이 약했던 차베스에게 역전의 기회를 주었고 차후 강력한 독재로 군림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됐다. 룰라도 IMF 탈출을 위한 각종 개혁정책과 양극화 해소책을 펼쳤으며, 모랄레스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혼혈 백인들이 소유한 대규모 유전들을 모조리 국유화 해 버렸다.


이 같은 여세로 남미의 좌파 바람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재선에도 성공해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좌파의 분위기는 더욱 강해졌다. 탈냉전과 사회주의 몰락 이후 세계의 좌파들은 남미의 붉은 색깔들을 보며 새로운 사회주의 세계 혁명의 상기된 희망을 품었다. 미국의 부시를 행해 직격탄을 날리는 차베스에 통쾌해 하였으며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의 거대한 실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세계 7위 석유 매장량과 8위 천연가스를 주변 나라들에 싼 값에 나눠주며 ‘자원민족주의’의 기치로 사회주의 전파와 좌파 연대의 공고화를 주도한 차베스의 반신자유주의 연대에, 세계의 반세계화 집단이 열광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연이은 선거에서 좌파의 바람이 한풀 꺾이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칠레의 대선이 그렇고 볼리비아의 모랄레스는 재선에 성공하겠지만 베네주엘라의 대선에서 차베스의 3선 연임은 불투명하며 브라질의 룰라도 자신의 심복을 내세운 다음 선거에서 그다지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남미 좌파의 10년 성적은 초기의 여세에 비추어 보면 궁색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2000년대 초·중반 세계경제 호조와 원유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힘입은 전반적인 경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1980-90년대보다 더 늘었으며 빈부의 격차도 사실은 더 벌어졌다는 목소리까지 대두되고 있다.


물론 남미의 좌파 분위기가 몇 개 나라 선거의 판도가 뒤바뀐다고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진 않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동안 좌파 내에서도 ‘강경’과 ‘온건’으로 나뉘어져 팽팽했던 균형추만큼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최근 당선된 우루과이의 신임 대통령은 “내 모델은 룰라이지 차베스가 아니다”라며 전통적인 강경좌파 그룹을 이탈하는 듯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브라질이 건실한 경제 성장의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왔다면 베네주엘라는 침체의 늪을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미의 대세가 좌파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좌파의 대세는 ‘실용온건’ 노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아무튼 몇 가지 관전 포인트로 향후 전개될 남미 선거의 치열한 격전을 흥미롭게 지켜 볼 일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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