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마주 앉을 ‘평화 부뚜막’ 만들고 싶어”

“남북이 통일된 입맛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민속음식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민속음식이야 말로 남북이 하나였던 역사전통이잖아요. 남북 주민들이 마주 앉을 평화의 부뚜막을 만들고 싶어요.”


반세기가 넘는 분단은 남북 모두에게 모든 면에서 이질성을 갖게 했다. 특히 남북의 문화적 이질성은 어느 순간 통일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남북사회 통합에서 문제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데일리NK는 우리 전통 민속음식을 연구하며 남북의 문화적 차이를 음식으로 극복하고, 남북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이명애(사진) ‘북한민속음식연구원’ 원장을 지난 21일 만났다. 이 원장은 민속음식 연구는 물론 서울 양천구에서 ‘양반찹쌀순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탈북자다.


이 원장은 “민속음식으로 통일을 준비하고, 염원하고 있다”며 “남북 주민들이 한 밥상에 마주 앉을 통일, 평화의 부뚜막을 만들고 싶다. 또 힘들겠지만 남북 주민들의 입 맛에 맞는 민속음식을 개발해, 고향에 꼭 전문식당을 세울 것”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2011년 한국사회에 첫발을 뗀 그는 북한에서 10년의 요리 경력을 살려 2012년 대전에서 열린 세계조리사대회의 요리경연대회인 ‘2012 한국국제음식박람회’에 참가했다. 음식 박람회는 양식, 일식, 한식으로 나뉘어 진행됐고, 이 원장이 도전장을 낸 한식 부문에는 세계 각국의 쟁쟁한 요리사 170여 명이 참가했다.


그는 당시 대회에 참가했던 기분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세계적인 요리경기자들과 마주선 것도 흥분됐지만, 30명의 심사원들이 내가 만든 한식을 평가할 때는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고 소회했다.


최종 결과가 발표되자 이 원장은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식 부문에서 당당히 6등을 한 것이다. 당시 박람회 1등은 한국인에게 돌아갔으며, 2등과 3등은 각각 일본, 중국인이 차지했다. 10위권 내 탈북자 출신인 이 원장이 들어가면서 1등보다 더 유명 스타가 됐다는 후문이다. 


그는 “통일은 오늘이냐 내일이냐가 문제지 머지않아 올 것”이라면서 “통일돼 고향에 갈 수 있을 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하나의 맛으로 통일된 민속음식을 연구하고, 만든다는 사명감이 당시 입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서 목표를 가지고 삶의 연습을 부단히 노력한다면 정착의미를 넘어 남북을 사랑할 수 있는 뜻이 생겨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나침반 바늘이 흔들리다가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탈북자들이 외롭고 힘들어도 삶의 목표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2012년 대전에서 진행된 ‘한국국제음식박람회’에서 입상한 이명애 원장 인증서


[다음은 이명애 북한민속음식연구원 원장과의 인터뷰 전문]


-한국에서 민속음식을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2011년 하나원에서 나오니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다. 나에게는 함흥에서 10년 넘게 큰 식당을 운영한 경험이 자산으로 있었다. 함흥은 대도시로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으며 이들은 맛있는 식당을 찾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누구나 맛있는 음식점을 찾는다. 조미료를 넣지 않은 자연산 음식을 ‘웰빙’이라고 말하는 남한 주민들을 보면서 ‘이것이다’라고 깨달았다. 우리 조상들이 조미료가 없던 시절 자연 맛으로 생활하던 그 맛을 찾기로 했다. 그것이 민속음식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 ‘한국국제음식박람회’에 입상했다.
“2012년 대전에서 열린 ‘한국국제음식박람회’에 참가했을 때는 한국에 온 지 1년 정도 됐다. 북한에서 식당을 운영할 때 ‘호텔요리학’을 독학한 것이 도움이 됐다. ‘호텔요리학’은 평양에 위치하고 있는 고급호텔음식을 전공하는 요리기술이다. 가지고 있는 재능을 한국에서 해보고 싶었다.


심사위원들이 정해준 한식을 40분 내 완성하고 참가자 170명 중 100등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심사결과가 발표되고, 6위에 탈북자 출신이 입상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일순간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세상에 혼자 서있는 기분이었다.”


-민속음식을 연구하면서 ‘양반찹쌀순대’ 가게을 운영하고 있다. 반응은.
“처음 순대를 만들 때 왜 한국에서는 당면을 넣는지 생각했다. 당면은 수축성이 좋아 순대를 100kg해도 터지지 않는다. 찹쌀을 넣으면 20%가 터져 이윤이 당면보다 적다. 각 종류의 순대를 만들어 식당 사장들에게 납품했다. 북한식으로 찹쌀을 넣고, 남한식으로 조미료를 넣지 않고 만든 전통찹쌀순대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탈북자들도 찹쌀순대는 고향 맛이라며 좋아하더라. 찹쌀순대의 시장 반응보다 남북의 맛을 하나로 통일해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월 700~800kg정도 성남, 일산, 대구, 제주도에 납품 해주고 있다.”


-민속음식 연구에 가게 운영도 하고, 전국 각지에 납품까지 하면 힘들텐데. 
“힘들었던 시간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겠다. 전통 맛을 찾기 위해 몇 달을 보낸 적도 있다. 특히 시장경제 시스템을 몰라 어려움을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때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밤새워 민속음식을 연구하고 새벽이면 순대에 넣을 신선한 채소와 재료를 구입했다.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찹쌀순대를 먹을 때 맛있고, 행복하다는 주의 지인들의 평가가 힘이 됐다. 또 납품을 하는 곳에서 맛이 좋아 손님들의 반응이 괜찮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가뭄에 단비를 맞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북한이 고향이라고 북한 음식 맛만 우겨도 안 되고, 한국이 선진국가라고 한국 맛만 좋다고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은 원인이 맛을 한쪽으로만 치우쳤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경쟁은 한국에서만 아니라, 앞으로 통일되면 북한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때 경쟁은 더 치열할 것으로 생각한다. 


남북의 입 맛을 하나로 통일하려면 본연의 향을 살려야 한다. 본연의 향은 곧 민속적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의 음식역사를 연구하여 현대음식으로 살려야 한다. 남북의 입맛을 통일한 민속음식개발에 꾸준이 노력할 것이다. 통일은 거창한 것으로 생각말고 탈북자들의 작은 생각들이 뜻으로 모이면 그것이 곧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속음식으로 남북주민들이 한 밥상에 마주 앉을 통일, 평화의 부뚜막을 만들고 싶다. 힘들겠지만 통일되면 고향에 민속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꼭 세울 것이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