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한반도의 최남단인 해남 땅끝 마을에서는 남북한 청소년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국토대행진을 시작했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학생들과 탈북대학생, 그리고 남한 대학생 등 총 45명의 남북청소년들이 북한전략센터에서 주최한 ‘제 1회 북한인권 개선과 한반도 통일기원 남북 청소년 국토대행진’을 위해 이날 해남에 모였다.
국토대행진은 15일 서울을 출발해 해남을 거쳐 17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남북의 청소년들이 2박 3일 동안 함께 한다. 이번 행사는 통일아이디어 공모전, 남북청소년 이야기한마당 등 통일과 북한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일정이 포함돼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번 국토대행진에 참가하는 대원외고 학생들은 모두 탈북 청소년을 위한 봉사동아리 ‘Two for One(2 for 1)’ 회원이다. 이들은 평소 탈북자와 함께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분단 극복은 마음의 장벽부터 허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왔다고 한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북한전략센터의 김광인 소장은 “탈북대학생들과 남한의 학생들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1차적 취지”라며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익히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이어 “여러 가지 한국문화를 익히고 있는데 그 중 이번 대행진의 문화적인 테마는 차 문화”라며 “서울을 떠나기 전 이미 창경궁에서 차 문화에 관련된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차 문화를 테마로 남북한 청소년들이 함께 통일에 대해 생각하고자 마련된 이번 국토대행진. 살아 온 환경이 다른 남북한 청소년들이 생각하고 있는 한반도 통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 서울에서 해남까지, 버스 안에서의 만남 그리고 이야기
15일 오전 9시, 국토대행진 참가학생들이 해남으로 출발하기 위해 서울 대치역으로 모였다. 각자의 가방을 들고 속속들이 버스로 모이는 남북한 청소년들은 아직은 서로 서먹해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국토대행진에 참가한 남정현(대원외고 2년) 군은 “‘2 for 1’이 작년부터 남북한 학생들이 함께하는 행사를 가져왔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많이 부족해서 아쉬웠었다”고 말했다.
남 군은 “이번 행사가 통일염원의 성격도 있지만, 이 행사를 통해 남북한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서로가 바라는 통일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면서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자 참가하게 되었다”라고 행사 참여 이유를 밝혔다.
이번 국토대행진 행사의 진행요원이기도 한 박예랑(건국대 2년) 씨는 2007년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다. 박 씨는 “우리들은 탈북한 이후 대학에 다시 입학한 경우가 많아 남한 학생들과 나이차가 많이 난다”며 “그래서 동생들처럼 생각되지만 함께 어울리면서 서로의 문화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박 씨는 이어 “이러한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통일이 되었을 때, 남과 북이 서로 잘 의사소통할 수 있는 희망적인 한 걸음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각자의 마음속에 통일에 대한 염원을 품은 남북한 학생들을 태우고 버스는 해남을 향해 출발했다. 버스 안 약간의 서먹한 분위기 속에 느껴지는 앞으로의 일정들에 대한 설렘 속에서 학생들은 점차 마음을 열고 서로의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남북한 학생들은 좋아하는 연예인 등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학교 공부의 어려움이나 직업교육의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또한 이들은 한국에 적응해나가는 북한학생들의 삶과 입시경쟁의 한국교육현실에서 공부하는 남한학생들의 삶을 함께 공유했다.
* 해남 대흥사 방문, 북한에서는 가보지 못했던 절
서울에서 출발한지 7시간 만에 불교문화와 차 문화가 잘 융합되어 있는 대흥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절이다!” 하는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남한학생들에게 수학여행 등을 통해 익숙한 절이 북한학생들에게는 생소한 장소였던 것이다.
6년 전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 이유라(가명, 한국외대 중국어학부 4년, 31세)씨는 “북한에서는 한 사람밖에 숭배할 수 없어서 절이 거의 없다”며 “‘절’이라는 개념은 있지만 일반사람들은 출입할 수 없고, 외국 사람들의 관광을 위한 역사적 유적지로서 남아있을 뿐 안에 스님들도 없이 거의 폐쇄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북한에서는 한 번도 절을 가보지 못했고 종교도 기독교만 접해봤었는데, 이렇게 절에 와서 이런 것이 절이고 불교구나 하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어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탈북자 김이홍(33세)씨는 익숙한 듯 불당 안에 들어가 삼배를 하고 나오면서 “북한에서는 절에 가보지 못했었지만, 탈북 후 중국에서 가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른 동료에게 들어가 볼 것을 권유했으나 그 동료는 “나는 할 줄 모른다”며 밖에서 불당 안을 구경하기만 했다.
대흥사를 방문하면서, 한반도역사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던 불교문화를 접하지 못하고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지 못하는 북한의 인권현실에 대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대흥사는 같은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었으나 달라져버린 남북사람들의 역사문화적 경험들을 통일 후에 어떻게 조화롭게 극복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 한반도 최남단 해남 땅끝마을, 그 곳에서 하나를 외치다
“통일의 꿈 없는 사람 있습니까? 통일의 꿈을 안고 다 같이 갑시다!”
“가자!”
“가자! 가자! 가자!”
한반도의 최남단 해남 땅끝마을에서 울려 퍼진 남북청소년들의 외침이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학생들은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국토대행진의 시작을 알리는 ‘남북 청소년 통일기원 행사’를 가졌다. 이 곳 해남 땅끝마을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서, 북쪽에서 온 청소년들과 남한의 청소년들이 이곳에 함께 모여 통일을 염원한다는 사실자체가 가슴 벅찬 일이다.
이윤지(가명, 한국외대 중국어학부 4년, 29세)씨는 “답답한 서울에서 벗어나 이런 곳에 오니 공기도 좋고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아 좋다”며 “앞으로 남북한에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남북한 학생들은 전망대에 올라서서 서로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남쪽바다를 응시하면서 그들의 눈과 마음에 풍경과 함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었다. 언젠가는 한반도 최북단 함경도에 사는 사람이 자유롭게 최남단인 해남에 와서 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날을 그리면서.
*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 후의 한반도, 그리고 우정
“DMZ를 국립공원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 날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남북청소년 통일아이디어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한 3조 김민지(대원외고 2년) 학생의 발표이다.
이 날의 외부일정을 모두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이들은 저녁식사 후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 후의 한반도의 모습을 조별로 그림으로 그려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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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남북학생들이 서로 섞인 조별로 둘러앉아 조장을 선출했다. 3조의 탈북청소년 신종훈(23세, 건국대 2년)씨가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결을 통해서 하자”고 건의하여 거수를 통해 김민지 양이 조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통일 후의 한반도의 모습을 어떻게 그릴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4개 조의 테이블 위에는 하얀 전지와 색연필만이 덩그러니 놓여 학생들의 상상력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없이 전지를 바라보던 3조의 김민지 양이 “내 생각에는 통일 후의 한반도 모습이라고 해서 정치적인 것 보다는 문화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월드컵 공동우승은 어때?”, “통일열차가 제주도부터 백두산까지 연결되는 것도!”라며 의견들이 속속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김 양은 “DMZ에 국립공원을 만드는 것은 어때?”라며 “DMZ는 우리가 통일되면 분단되었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곳이잖아”라고 말했다.
김 양은 이어 “게다가 국립공원으로 만들면 남북 사람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화합의 장소가 될 수 도 있고, 물론 오염될 지도 모르지만 잘 보존해서 그 상징성으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해서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라고 덧붙였다.
이에 3조 학생들은 전지에 한반도 지도를 그리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DMZ 부분에 선을 긋고 그 안에 국립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동물원을 그려 넣었다. 뿐 아니라, 판문점을 박물관과 통일학교로 바꾸고,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그려 넣었다.
또한 월드컵 공동우승을 시청하는 남북주민들을 북쪽에 그려 넣고, 독도와 울릉도를 남북 군인이 함께 지키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 때 신종훈씨는 “통일이 된 후에 북한에 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을 세우는 나의 꿈이야”라며 북한에 국어학원을 그렸고 임후정(대원외고 1년)양은 “남과 북이 서로의 해역이라는 것 없이 서해안에서 자유롭게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서해안에 조업 중인 배들을 그렸다.
그 외 2조의 최진희(숭실대 법학과, 29세)씨는 “우리 조는 통일고속도로를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건설해서 중국에 많이 빼앗기는 북한의 해산물 등의 자원을 남쪽으로 수송해, 우리 자원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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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활동을 하면서 조금은 어색했던 남북청소년들은 언제 그랬었냐는 듯 서로의 의견을 질서 있게 제시하고 농담도 하면서 즐겁게 조별과제를 완성 발표했다. 발표가 끝난 후 학생들은 스피드퀴즈게임을 하며 신나게 웃고, 캠프파이어 시간을 가지면서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중국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꿈인 탈북청소년 이수빈(한국외대 중국어학과 1년, 32세)씨는 “조별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남한학생들과 협력해서 아이디어도 도출하고 친해질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며 “이렇게 함께 교제하고 화합․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특히 나 자신을 오픈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었다”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 행사를 통해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남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문화라든가 현대인들이 노는 방법들도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처음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인터뷰에서 행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별 다른 각오도 없었다고 말했던 임후정(대원외고 1년)양은 “사실 처음에는 피곤하기도 해서 별로 오고 싶지도 않았고,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라는 부모님 말씀 때문에 참여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오지 않았다면 내가 언제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임 양은 이어 “또 남북한은 교류가 없어 자주 만나지 못해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남북한 사람들 모두) 다른 것이 없다”며 “너무 재미있었다”고 덧붙였다.
출발하던 아침, 버스에서 무표정으로 앉아있었던 임 양은 3조 조별활동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서 그림을 그리고 의견을 제시하는 등 활짝 웃는 모습으로 친구들과 함께했다.
또한 그녀는 “학교에서 구술시간에 통일의 방법이나 통일 후 우리의 미래와 같은 주제로 수업을 많이 했었다”며 “그래서 저녁 조별활동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웃는 얼굴로 행사에 참여하던 김민지(대원외고 2년)양은 “2 for 1에 대해서 처음 친구에게 듣고 가입할 때는 북한청소년들은 어떨까하는 호기심에 시작했다”며 “우리와 많이 다를 줄 알았는데 생각하는 것도 대학생으로서 고민하는 것들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양은 “같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공감도 더 하게 되고 영어 공부를 도와주는 것과 같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북한 학생들을 많이 돕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이 행사 이전에 몇 번 만났지만 많이 친해지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팀워크가 필요한 활동들을 통해 친해진 것 같아서 너무 좋다”며 “지금은 인사도 하고, 앞으로도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냥 고등학생들끼리만 하는 봉사활동 보다, 탈북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저도 더 많이 배우고 앞으로 사회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각과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며 “세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은 내 꿈을 위한 한 걸음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후 국토대행진 팀은 16일 보성녹차밭과 강원도 양양을 거쳐 설악유스호스텔에서 머물면서 남북청소년 이야기 한마당을 열고, 17일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참관, 해단식 후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북한전략센터와 ‘2 for 1’의 남북청소년들은 앞으로도 8월 참살이 전통무용 체험, 9월 유교문화 – 안동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부석사 무량수전 답사, 10월 경주 신라문화 – 경주 유적지 답사 등의 한국문화체험활동을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