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처음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주의적 사안 등 남북대화 재개 지지’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 조성에 있어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 등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어냈다. 북한의 핵개발은 용납할 수 없지만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며, 그러한 노력을 하는 데 있어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에 대한 동의를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인도적 차원의 대화부터 물꼬를 터 비핵화 문제 등을 논의하는 포괄적 대화의 장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민간단체의 교류를 재개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올 가을 추석이 되면 추석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추석이 10월 4일이고 8월에는 북한이 반발하는 한미연합 을지훈련이 있는 만큼 9월쯤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정책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이런 움직임과 함께 남북 간에는 비공개로 진행되는 물밑접촉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부의 의중을 전달할 수 있는 인사들이 비공개로 만나 남북대화의 가능성들을 타진하고 비핵화 협상의 재개 가능성도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는 이 과정에서 북미 간 협상을 재개시킬 수 있는 비핵화 협상안을 중재하려 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인도적 차원을 넘어서는 남북관계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핵화의 진전이 필수적인 만큼, 정부로서는 비핵화 협상의 매듭을 풀기 위한 전략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북, “핵개발에는 상관 말라”
하지만, 북한의 입장은 우리와는 다르다. 북한도 남북관계 복원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핵문제에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다. 핵개발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사안이니 핵폐기 같은 얘기는 꺼내지도 말고 남북관계를 선택할 지 한미동맹을 선택할 지 결정하라는 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입장이다.
우리 정부의 인도주의적 대북지원에 대한 입장도 ’90년대 말 김대중 정부 출범 때와는 다르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던 1998년 당시는 몇 백만이 굶어죽었다는 ‘고난의행군’ 직후라서 북한으로서는 외부 지원이 절박했던 시기였다. 쌀이든 비료든 민간단체의 다른 지원이든 뭐라도 받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필요하고 시급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이 외부 지원에 사활을 걸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물론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에 목을 매야 하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남한의 지원 자체보다도 남한의 대북지원을 받아 교류의 물꼬를 트는 것이 대북제재 전선을 이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정치적 차원의 고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인도적 지원이 예전처럼 강력한 대북 카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다만, 한국 정부가 대화에 앞장서겠다고 하니, 북미 간 핵 협상에서 한국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것인지에 대한 계산도 북한에게는 하나의 고려요소가 될 것이다.
미, “한국이 해보겠다면 한번 해보라”
미국의 입장 또한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있다. 미국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하고 남북대화 재개를 지지했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올바른 여건 하에서’이다. 인도적 차원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동의할 수 있으나 개성공단 등 경협 문제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여건’ 즉 북한 비핵화의 진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국으로서는 제재와 압박을 하더라도 협상 시도는 필요한데, 한국이 나서서 해보겠다고 하니 ‘답안지를 한번 제출해보라’는 과제를 부여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맥매스터 미 NSC 보좌관에게 “그 누구도 취하길 원하지 않는 군사적 옵션을 포함해 다양한 옵션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처럼, 미국은 여전히 협상이 잘 안될 경우의 선택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을 인정받았다고 하나 남북미 3자의 셈법은 이처럼 여전히 제각각이다. 그리고, 엄연한 현실은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통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고, 미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이 미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 간의 충돌 위험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과연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