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7.1조치 5년] 갈지자 행보 경제개혁

‘2보 전진, 1보 후퇴’

7.1조치 이후 북한의 경제개혁은 수시로 숨고르기를 하면서 더디게 가고 있다.

변화의 흐름은 이미 북한에서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지만, 체제 유지가 최우선인 만큼 두걸음 전진했다가 부작용이 생기면 뒤로 한발 물러서면서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5년전 대기근을 겪은 ‘고난의 행군’ 과정에 음성적으로 자리잡은 시장경제 요소를 국가가 공식 수용한 7.1조치를 발표했다.

7.1조치는 임금 및 물가 현실화, 환율 인상 및 배급제의 단계적 축소, 사회보장 축소, 기업의 자율권 확대, 인센티브제 도입 등 시장경제 요소의 부분적 도입을 골자로 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관계 정상화 움직임, 북일정상회담 등 국제 환경의 변화에 맞춰 나름대로 야심찬 개혁정책에 나선 것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매도하고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고집해온 북한으로선 엄청난 결단이 아닐 수 없었다.

고위층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2000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내각의 주요 경제부처 전문가와 학자들을 망라한 ‘6.4그루빠’를 구성해 개혁정책의 큰 그림을 만들었고, 그것이 2년 뒤 7.1조치로 탄생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나 내부적으로도 ‘7.1조치’라는 표현을 쓰지 않지만, 그 본질은 “변화된 환경에 맞게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최대 실리를 획득하는 것”, “일한 만큼, 번 만큼”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북한은 7.1조치의 실행을 위해 신진 기술관료를 대대적으로 등용해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내각의 경제관리 권한을 대폭 높이는 등 개혁 주도 세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신의주특구(2002.9), 금강산관광특구(2002.10), 개성공단(2002.11) 지정과 외국인투자은행법(2002.11) 제정, 그리고 2004년부터 일부 공장.기업소를 대상으로 생산 계획 수립과 임금 결정 등에 대한 지배인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 경제 회생을 위한 개혁조치를 과감하게 이어갔다.

2003년에는 기존의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확대해 생필품에 국한됐던 거래를 곡물과 공산품 등 모든 품목으로 공식화하고 종합시장의 수를 늘려나가는 등 시장형태의 상행위를 활성화했다.

또 2005년 국내 생산 원료.자재를 교류하는 사회주의 물자교류 시장, 중국과 합작으로 운영되는 수입물자교류 시장의 운영을 통해 과거의 국가 만능주의를 버리고 시장을 통해 수요와 공급이 이뤄지도록 경제에 탄력을 줬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외자유치를 늘리기 위해 외국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2005년엔 외자기업에 내수 판매를 허용함으로써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단순 생산기지 역할에 머물렀던 북한을 생산.판매가 자유로운 시장으로 바꾸는가 하면, 외국 투자가가 얻은 기업 이윤이나 청산자금을 세금없이 전부 국외로 송금이 가능토록 조치했다.

지난해 1월에는 민간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한 ‘상업은행법’을 제정, 중앙은행 산하 예금업무를 전문으로 수행하는 각 지점의 저금소(저축기관)를 상업은행 산하로 이전시키는 등 금융개혁에도 나섰다.

하지만 북한의 개혁은 경제적 실리와 사회주의 원칙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개혁의 부작용에 따른 체제 이완과 붕괴 가능성을 우려해 이미 시행했던 조치를 거둬들이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외부의 지원과 생산 증가로 곡물량이 어느 정도 늘어나자, 2005년 10월 배급제를 부활시키고 종합시장에서의 곡물 거래를 전면 금지했으며 식량판매소에서 국정가격으로 식량을 구입하도록 했다.

그러나 곡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이들 조치는 불과 몇달 못가 유명무실해졌으며 현재는 기업체 자체 충당 시스템으로 배급제가 정착되고 있다.

2004년 시범 실시했던 7-8명 규모의 협동농장 분조관리제도 중단되고, 가족단위의 식당 운영제 역시 1년만에 폐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개인투자에 의한 주택건설 허용과 그중 일부를 개인에게 유상 분양했던 시책도 2004년 중단시켰다가 최근 다시 허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갈지자 행보는 박봉주 총리의 해임건에서 잘 드러난다.

7.1조치 이후 박 총리는 경제관료 중 몇 안되는 김정일 위원장의 신임을 받는 측근으로 막강한 권한도 부여받았으나 결국 전력.석탄 사용 문제로 군부와 마찰을 빚으면서 하차하고 말았다.

최고결정권을 갖고 7.1조치와 같은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던 김정일 위원장 스스로가 최근엔 개혁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중국을 방문,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南巡) 코스를 밟으면서 대내외에 개혁의지를 과시하는 듯 했지만 내부적으론 간부들에게 “우리는 중국처럼 개혁.개방하면 안된다.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는 후문이다.

북한의 이같은 행보에는 부시 미 행정부가 핵과 인권문제 등을 내세워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키려 한다는 우려가 크게 깔려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이 7.1조치 시행 3개월 후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개혁조치와 모순된 ‘선군시대 경제건설 노선’을 제시한 데서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개혁을 통해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회생시키려는 북한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북미관계가 긍정적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북한의 개혁 노력을 지켜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은 내재한 체제 모순 때문에 앞으로도 경제개혁 조치와 부작용 해소 조치를 병행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도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그 과정을 질서있게 관리하고자 하는 상태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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