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NLL은 불법’ 주장 근거는 10·4선언이다

1. 혼란스러운 NLL 논의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한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2007년 10월 초 김정일과의 단독회담에서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 진위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른 한편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NLL은 엄격히 말하면 영토선이 아니다”, “NLL이 영토선이라고 한다면 3.8선 이북은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라는 가설도 성립된다”, “NLL은 1953년 미군 사령관인 클라크 장군에 의해서 임시적으로 그어진 선이며 그래서 1972년부터 북한에서 자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서병수 새누리당 원내총무는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NLL은 엄격히 말하면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발언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하자,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60년간 관할해온 관할수역이고 이미 영토선 개념으로 굳어져 있다”며 “국방장관으로서는 국가방위의 영토개념이 작전 시행 상에 맞는다고 본다”며 “헌법적 개념과는 약간 다르다”고 말했다.


이제 국민들은 도대체 ‘NLL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크게 헷갈리게 되었다. 여기에는 NLL 무력화를 시도한 노무현 전 정권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지금 새누리당의 태도 역시 문제의 핵심을 객관적으로 풀어나가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국방부장관의 진심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대한민국의 영토와 NLL 관련 전체의 상황을 조감한 결과는 아니다.


2. NLL은 영토선인가?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 이점을 필자는 2007년 노무현 정권의 NLL 무력화 시도에 대응하면서도 분명히 밝혔다. 그 이유는 한국의 영토는 헌법3조에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도서’로 확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국민 및 장병들의 눈높이에 맞춰 국토방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NLL이나 휴전선을 국경선을 의미하는 영토선 개념으로 주지시킨다면 그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1) 북한지역이 ‘미수복지역’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나?
(2) 어떻게 대한민국의 영토를 일개 외국군 장성이(클라크) 결정할 수 있었는가?
(3)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에 대하여 협의한다’는 조항을 어떻게 영토선 개념과 부합시켜 해석할 수 있는가?
(4) 1953년의 정전협정 서문에는 군사분계선이 영토문제와는 무관하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고, 지금 한국의 입장은 정전협정 준수에 있다. NLL 역시 정전협정에 준하여 영토 확정과 무관하게 해석하는 것이 옳다.


3. 북한군의 NLL 침범은 영토침해가 아닌가?


노무현 정권의 큰 실수는 ‘NLL이 영토선이 아니므로 북한의 NLL 침범도 영토침해가 아니다’라는 잘못을 퍼뜨린  데에 있다. 그 말은 휴전선을 넘어 북한군이 도발한다면 그것이 한국의 영토침해가 아니라는 주장과 똑같다. 왜 이런 멍청한 생각을 한 것일까?


그것은 ‘영토침해는 영토선을 불법적으로 넘었을 때 일어난다’는 생각을 ‘통일을 지향하는 한국’과 같은 분단국가의 상황에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한국과 북한의 관계를 놓고 보면 북한은 아직 대한민국이 되찾지 못한 미수복지역(未收復地域)이며, 따라서 우리는 아직 온전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렇다고 북한은 외국도 아니며,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내에서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의 중요성은 영토확정이 아니라 군사력으로 주권의 실행여부를 가르는 데에 있다.


정부를 참칭(僭稱)하는, 즉 자기 멋대로 정부라고 주장하는 북한정권이 휴전선 북쪽의 한국 영토를 점유하고 있으므로 한국은 영토를 지속적으로 침해당하고 있지만 한국은 정전협정이나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군사력을 통해 주권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쫓아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휴전선 이남이나 NLL 남쪽으로 북한군이 월선하면 그것은 추가적 영토침해로서 이번에는 한국이 군사력으로 대응하여 영토주권을 실현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따라서 국민과 장병들에게 ‘영토주권을 지키기 위해서 NLL과 휴전선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 다만 분단국가로서 한국의 특수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면 된다. 이점을 국민과 장병이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예단하는 것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이다. 차라리 ‘북한 전체가 미수복지역’이라는 개념을 한국의 친북좌파는 물론 과거 한나라당 몇몇 의원들조차 포기하였기 때문에 영토문제가 복잡해진 것이다. 영토문제나 군사분계선의 확정과 같은 문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자기 멋대로 규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며 따라서 그 언급도 매우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NLL은 북한에 통고하지 않았으므로 북한이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제멋대로’ 선인가?


2007년 여름 노무현-김정일 회담이 결정되자 북한의 NLL 침범이 빈발, 일상화되었다. 그러자 노무현 정권은 이에 화답(和答)이라도 하듯이 NLL이 정당성이 없는 일방적인 경계선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보수진영에서는 ‘목숨을 걸고 지켜온 우리의 영토선 NLL’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노무현 정권의 이적성을 지적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은 헌법3조로 인해 영토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진영이 억지를 쓰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땅따먹기 주장이나 보수진영의 영토선 주장이나 모두 틀렸지만, 심정적으로 보수진영의 영토선 주장은 교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정권의 주장은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의 주장의 핵심은 ‘서해의 군사갈등의 원인은 미국이 자의적(恣意的)으로 획정한 NLL에 있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성렬 국가안보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2007년 11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NLL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나」라는 논문에서 “이른바 ‘NLL문제’로 알려진 서해상 해양경계선 획정문제는 남북한 간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가장 높은 현안이다”라고 주장하면서 NLL이 서해분쟁의 원인이라는 점을 기정사실화 하였다.


또한 2007년 8월 홍익표 통일부 정책분석관은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의 “서해교전은 방법론상 반성할 점이 있다”는 발언을 옹호하면서 “남북 간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남북 간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NLL의 무조건적인 고수가 한반도 안보와 평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고 북한 입장을 그대로 되풀이 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NLL의 법적 안정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우파가 북한의 입장을 무조건 적대시하면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영토선 논쟁이 불필요하게 추가되어 당시 노무현 정권과 그 언저리의 학자들은 ‘좌파는 진실되나 우파는 무식하다’라는 입장에서 NLL 논의를 계몽주의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1953년 휴전협정 서명 직전 유엔군사령부는 공산군 측의 요구에 의해 ‘사실상’ NLL을 도입하였고 또 통고하였다. 바로 그런 이유로 북한은 휴전 이후 20년간 얌전히 NLL을 지켜왔다. 도대체 알지도 못하는 NLL을 북한이 어떻게 20년이나 지킬 수 있었겠는가? 이점을 알려면 NLL 도입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1) 정전협정 초기에 군사분계선의 방식에 대하여 공산군 측은 38도선으로, 유엔군은 군사접촉선을 원칙으로 내세웠으나 결국 유엔군의 주장이 채택되었다. 따라서 육지와 동해의 경우에는 큰 문제점이 없었으나 서해의 경우에는 상황이 복잡하였다. 유엔군은 개성이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요충지라는 점에서 서해 5도와 개성을 바꾸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북한 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서해 5도와 북한지역 사이의 해상 군사분계선을 획정하는 원칙으로 유엔군은 3해리, 북한 측은 12해리를 주장하여 합의를 보지 못하였다. 결국 육지와 동해에서는 군사분계선 획정에 합의를 보았으나, 서해의 경우 38도선 이북의 섬은 북측에 양도하며 서해 5도는 유엔군이 관할하는 것에만 합의하였다. 이후 정전협정은 오로지 포로송환원칙에 대한 논의에 국한되었다. 여기서 우리 국민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왜 정전협정에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이 포함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도대체 남북의 군사력을 분리하지 않으면서 정전상태가 지속될 수 있겠는가?


북한의 입장에서는 서해에 제해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유엔군이 38도를 중심으로 한국군의 작전한계선을 설정해 주기만 해도 엄청난 이익이었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NLL을 남포항에, 아니면 신의주에 그을 수도 있었다. 공산군 측은 유엔군에게 서해의 군사분계선 획정을 암묵적으로 맡기고 나중에 트집을 잡겠다는 심보였다. 다른 한편 유엔군은 휴전협정 이후 유엔군의 작전한계선을 도입해야 하며 그것은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유엔군의 결정일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서해에 군사분계선을 긋지 않은 책임은 협정 서명 당사자들이지 한국이 아니다. 즉 북한은 1953년 잔머리를 굴려 군사분계선을 확정하지 않고 60년이 지난 지금 그 책임을 한국에 떠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통합진보당은 물론 과거 노무현 정권과 현재 민주통합당 및 그 언저리 학자들은 북한의 이런 망발이 마치 진실이라도 되는 듯이 동조하고 있다. 광우병 촛불시위, 천안함 폭침과 다를 바가 없다. ‘무식을 유식으로, 허위를 진실로’ 둔갑시키는 한국좌파의 고질병이 바로 그것이다. 이점은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살펴보면 명백해 진다.


(2) 1953년 6월 정전협정이 거의 마무리 될 무렵 이승만 정부는 반공포로를 석방하였다. 포로교환 문제로 2년이나 교착된 정전협정 당사자들은 경악하였다. 이에 6월 19일 공산군 측 연락장교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에게 강력한 항의 편지를 전해왔다:


유엔군 사령부는 이승만 일당을 통제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한국에서의 정전이 이승만 일당을 포함하는가? 만일 포함하지 않는다면 남한 측에도 정전협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어떤 보장이 있는가?


클라크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그로부터 “한반도를 갈라놓을 정전협정에 서명할 수는 없지만 정전을 지원할 용의는 있다”는 대답을 얻었다. 여기에 고무된 클라크 장군은 김일성과 팽덕회에게 보내는 답신에서, 자신의 위치는 유엔군 사령관으로서 군사적 분야만을 장악하고 있을 뿐, 독립적인 한국의 주권행사에 대해서는 일체의 권한이 없다는 점을 밝히고 다음과 같이 암묵적으로 NLL의 도입을 약속하였다:


당신은 남한 측에 정전협상이 실현될 수 있는 어떤 보장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추구하는 정전은 양쪽 사령관 사이의 군사적 정전이며, 양쪽 사령관 휘하의 군사력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전협정의 어떤 부분들은 대한민국의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인정되었다. 유엔군 사령부는 자신의 능력이 허용하는 한 정전협정이 준수되도록 군사적 안전장치를 수립할 것이다.


여기서 클라크 장군이 약속한 ‘군사적 안전장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이미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였으니 남은 것은 서해의 군사분계선 도입 이외에는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클라크는 “양쪽 사령관 휘하의 군사력”이라는 표현과 “유엔군 사령부의 능력이 허용하는 한”이라는 표현을 도입한 것이다. 즉 서해상에서 유엔군 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한국군의 작전 범위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고 한 달 후인 8월 말에 NLL이 ‘특별허가가 없는 한 넘을 수 없는’ 유엔군과 한국군의 작전한계선으로 도입되었다. 휴전협정을 문구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38도선 이북의 섬은 북측에 양보하더라도 ‘인접해면’을 제외한 북측 지역의 바다 전부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이 작전을 할 수 있었고 이점은 북한에게는 악몽이었다. 공산군 측은 이런 상태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클라크 장군의 보장을 받고 휴전협정에 서명한 것이다.


(3)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NLL은 1953년 미군 사령관인 클라크 장군에 의해서 임시적으로 그어진 선이며 그래서 1972년부터 북한에서 자꾸 문제제기를 했던 것” 발언은 노무현 정권이 열심히 전파하던 내용이다. 그렇다면 임시적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서해에 군사분계선을 획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 제11조에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NLL 이외에 서해에서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이 있는가? 전혀 없다!


따라서 북한도 NLL이 사실상 군사분계선임을 1953년 8월 이후 다시 한 번 인정한 것이며, 다만 남북기본합의서는 협의의 여지를 남겨두었을 뿐이다.(부속합의서 10조) 협의를 하려면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을 일단 인정해야만 한다. 여기서 한국의 우파는 ‘영토선에 대하여 무슨 협의가 가능한가?’라고 흥분하면 안 된다.


바로 NLL이 영토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영토규정에 대한 국제기준을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정전협정 초기에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이 서해의 군사분계선 도입에 12해리와 3해리 원칙을 각각 들고 나온 것은 당시에는 서해에 군사접촉선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서해 전부가 유엔군의 관할 하에 있었다. 따라서 서해 5도와 북한 측 해안선 사이의 경계를 정하자니 뭔가 원칙을 도입해야 할 것이고 그러자니 국제영해규정 조항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서해상에는 60년간 유지된 군사접촉선이 있다. 정리하면 NLL은 영토획정과 무관한 군사분계선이며, 1953년 정전협정의 군사분계선 획정 원리는 군사접촉선이므로, 서해의 군사접촉선인 NLL이 정식 군사분계선으로 남북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하게 합리적인 결론이다.


5. 10.4 선언과 NLL


사실만을 살펴볼 때 노무현-김정일의 10.4 합의는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완전히 실패하였다. 회담 참가자들의 10.4 합의에 대한 의견이 완전히 달라 ‘합의’ 자체가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실패하였는가?


북한 측은 2007년 10월 21일, 그러니까 노-김 회담이 끝난 지 불과 17일 후에 북한해군사령부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북과 남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설정에 합의한 오늘에 와서까지 남조선군당국이 이런 식으로 불법비법의 《북방한계선》을 《고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남조선군당국의 처사는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 대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로골적인 도전이며 북남관계를 또다시 대결국면에로 몰아가려는 정략적기도의 산물이다. 조선인민군 해군은 우리의 신성한 령해에 기여 들어 제멋대로 돌아치고 있는 남조선군 해군함선들의 무모한 군사적 도발행위를 결코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난 2012년 9월 29일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다음과 같은 대변인 성명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하였다.


역사적인 10.4선언에 명기된 조선 서해서의 공동 어로와  평화수역설정 문제는 철두철미 북방한계선 자체의 불법 무법성을 전제로 한 북남 합의 조치의 하나이다. 북방한계선의 존중을 전제로 10.4선언에서 합의된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박근혜 X의 떠벌임이나 다른 괴뢰당국자들의 북방한계선 고수 주장은 그  어느 것이나 예외 없이 북남공동합의의 경위와 내용조차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다.


필자는 노무현-김정일 회담에서 NLL에 대하여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모르며, 확실하지 않은 추측을 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북한이 지난 5년 동안 변함없이 ‘10.4 합의=NLL 불법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잘 알려진 ‘땅따먹기 NLL 무력화 발언’과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노-김 회담 준비위원장이었던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거꾸로 10.4 선언을 통해 북한이 NLL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바로 NLL을 중심으로 등거리-등면적 공동어로수역을 도입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실은 그렇지 않다.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은 등거리-등면적 원칙을 부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2007년 10월 21일 NLL 불법화 성명을 발표한 이후 그 해 11월 평양에서 남북국방부장관 회담이 열렸을 때, 김장수 장관의 NLL 사수 입장을 문재인 후보는 ‘경직되었다’고 비판하였다. 문후보는 김장수 장관의 무엇이 경직되었다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문후보의 NLL 사수 입장의 진정성은 사실상 없다.


10.4 선언의 또 다른 결과는 김정일의 개혁개방 거부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완전히 수용하였다는 점이다. 햇볕정책의 핵심은 북한에 많은 지원을 하면 북한도 외투를 벗고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이 틀렸다는 점은 무수히 지적되었고 또 현실에서 검증되었으나 지금도 햇볕주의자들은 “먼저 주고 나중에 얻자(先供後得)”라는 논리로 햇볕정책 2.0을 언급하고 있다. 솔직히 아무리 퍼주고 싶더라도 이제 이솝 우화에서 따온 ‘햇볕정책’이라는 말만은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한다.


확실한 점은 이런 상황 하에서 10.4 선언을 합의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점이다. 즉 서해에 공동어로지역을 설정하여 지속적인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시도는 북한의 NLL 불법성 주장으로 완전히 실패하였다. 10.4합의에서 합의도 없을 뿐더러 목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