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힌 데 이어 5일에는 해당 미사일 탄두부의 대기권 재진입 및 단 분리 기술을 시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이 ICBM에 대형 중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다고 확인함에 따라 한미 당국이 체감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수준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이번 시험발사는 새로 개발한 대형 중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켓의 전술·기술적 제원과 기술적 특성들을 확증하며, 특히 우리가 새로 개발한 탄소 복합재료로 만든 대륙간탄도로켓 전투부 첨두(탄두부)의 열견딤 특성과 구조 안정성을 비롯한 재돌입(재진입) 전투부의 모든 기술적 특성들을 최종 확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이어 “재돌입 시 전투부에 작용하는 수천도 고온과 가혹한 과부하 및 진동 조건에서도 전투부 첨두 내부 온도는 25∼45도의 범위에서 안정하게 유지되고 핵탄두 폭발 조종 장치는 정상 동작하였으며, 전투부는 그 어떤 구조적 파괴도 없이 비행하여 목표 수역을 정확히 타격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또한 “1계단 대출력 발동기(엔진)의 시동 및 차단 특성을 재확증하고 실제 비행조건에서 새로 개발된 비추진력이 훨씬 높은 2계단 발동기의 시동 및 차단 특성과 작업 특성들을 확증했다”면서 “새로 설계한 계단 분리(단 분리) 체계의 동작 정확성과 믿음성을 검토하였으며, 전투부 분리 후 중간 구간에서 중량 전투부의 자세조종 특성을 재확증하고 최대의 가혹한 재돌입 환경 조건에서 말기 유도 특성과 구조 안정성을 확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통신은 “국방과학원 과학자·기술자들은 폭발적인 정신력과 기술 능력을 최대로 발휘함으로써 대형 중량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켓을 짧은 기간에 우리 식으로 새롭게 설계하고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ICBM 시험 발사를 앞두고 며칠간 미사일 조립 현장을 찾아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격려했다. 시험 발사 당일에는 현장에서 ‘화성-14형’ 비행과정을 지켜본 후 “대성공”이라고 선언하며 과학자·기술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통신은 김정은이 “우리의 전략적 선택을 눈여겨보았을 미국놈들이 매우 불쾌해 했을 것”이라면서 “독립절(미국 독립기념일)에 우리에게서 받은 ‘선물 보따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할 것 같은데 앞으로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선물 보따리’들을 자주 보내주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또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선택한 핵 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북한이 국제사회의 ‘레드라인’과 같았던 ICBM 시험 발사에 나서면서 한미 당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한미 미사일 연합 무력시위를 지시하고 “북한의 엄중한 도발에 우리가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며, 우리의 확고한 미사일 연합대응태세를 북한에게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이에 정 안보실장이 4일 오후 9시께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통화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문 대통령님의 단호한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공감한다”면서 미사일 발사계획을 승인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 군은 이날 북한 ICBM 시험 발사에 대응해 적 지휘부를 겨냥한 현무-2A 탄도미사일 타격훈련을 진행하면서 도발 억지 능력을 과시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한미 미사일 부대는 오늘 오전 7시 북한의 거듭되는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하여 동해안에서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을 실시했다”면서 “이날 사격에는 한국군의 현무-2와 미 8군의 ATACMS(에이태킴스) 지대지미사일을 동시 사격하여 초탄 명중시킴으로써 유사시 적 지도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훈련에 동원된 현무-2A는 국내 기술로 개발한 사거리 300㎞ 탄도미사일이며, 에이태킴스는 주한미군이 운용하는 전술지대지 미사일로 수많은 자탄이 들어 있어 1발로 축구장 4개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에이태킴스도 사거리는 300km다.
합참은 “이번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은 북한의 ICBM 시험발사 성공 주장 발표 직후에 이어져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한미 동맹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훈련을 지휘한 우리 군 미사일 사령관도 “북한의 군사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언제든 즉각 응징할 수 있는 확고한 태세를 갖추고 있다”면서 “북한이 핵·미사일로 우리 국민과 한미동맹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북한 정권 지도부는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5일(현지시간) 긴급회의를 열고 북한 ICBM ‘화성-14형’ 발사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한편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이 전날 발사한 ‘화성-14형’ 미사일을 ICBM급 신형 미사일로 공식 확인했다.
국방부는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북한이 4일 발사한 미사일은 고도와 비행거리, 속도, 비행시간, 단 분리 등을 고려할 때 ICBM급 사거리의 신형 미사일로 평가된다”면서 “지난 5월 14일 발사한 KN-17(화성-12형)을 2단 추진체로 개량한 것으로 잠정 평가한다”고 보고했다. 군은 ‘화성-14형’ 미사일이 사거리 5천500km 이상, 상승 단계에서 최대속도 마하 21 이상으로 비행한 것을 근거로 ICBM급이라 판단했다.
다만 국방부는 “고정형 발사대에서 발사하고, 고난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재진입 여부 미확인 등을 고려할 때 ICBM의 개발 성공으로 단정하기는 제한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