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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군사회담 북측 대변인이 28일 철도시험운행에 대한 군부의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대변인은 남측이 철도연결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남북협력에 관한 여러 불만사항을 조목조목 열거해 비판했다.
이번 담화를 발표한 주체가 ‘군부’인지도 의심스럽지만, 담화 내용도 군사적인 부분을 넘어 남북관계 전반을 트집잡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DJ 방북시 철도이용 요구를 정략적인 것으로 폄하하고, 남북간 호혜적인 평가를 주고받았던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북측이 서운한 속내를 드러낸 점이다.
담화는 “열차를 통한 그 누구의 평양방문 등은 예외 없이 협력과 교류의 외피를 쓴 정략적 기도에서 출발된 것이라는걸 우리 군대는 간파한 지 오래”라고 했다. 그 누구의 평양방문은 바로 DJ의 방북을 의미한다.
일단 DJ가 기차방북을 고집하자 우회적으로 김정일의 불편함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DJ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첫 기차 방문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DJ가 평양을 방문해도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북측의 시그널이다.
현재 북측이 조성한 정세에서는 DJ의 열차방북은 물 건너간 셈이다. DJ를 궁지로 몰아넣은 상태에서 만약 북측과 DJ간에 모종의 거래가 오고 간다면, 북측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될 가능성이 높다.
북측은 이참에 군부를 앞세워 그동안 성이 차지 않았던 부분까지 확실히 챙겨보자는 의도를 노골화했다. 개성공단을 달러 공급소로 활용하기 위해 1,500만평을 부지로 제공했음에도 들어오는 돈이 생각보다 시원찮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는 마침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더 얹으려는 속셈이다.
북한은 NLL을 분쟁화해 정전체제를 흔들어보려는 근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 NLL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데는 이러한 분쟁화를 염두에 두면서 한국의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양수겸장 전략이다.
남측이 먼저 NLL 문제에 협상여지를 보인 것도 화근이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17차 장관급 회담에 앞서 NLL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도적 양보를 거론하고 나자 장성급 회담에서는 국방장관회담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북측 입장에서는 떡 생각도 안 했는데, 남측이 김칫국부터 내민 격이다. 남측이 여지를 보인 만큼 물고 늘어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 군부가 남북관계에 적잖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주요 군사 요충로를 내줬는데, 대가가 미흡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며 시험운행 중단을 군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군부-내각 갈등설을 유포하는 데는 일정한 책임회피 의도도 엿보인다.
열차시험 운행 무산 책임이 북측에 있는데도 남북관계는 북측에 끌려가는 형국이다. 북측은 표면적으로 회담을 무산시킨 군부의 입장을 앞세워 남측의 태도를 비난하고 나섰다.
정부는 북측의 의도대로 ‘군부-내각 갈등설’을 그대로 믿어온 데다, 군부가 떠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정부 당국자가 ‘군부 반대’ 주장을 유포하면, 언론이 이를 재탕 삼탕 우려낸다. 남측 여론이 북측 군부를 지목하자 김정일은 아무런 부담없이 군부를 내세워 강경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결국 정부와 언론이 김정일의 잔꾀에 그대로 말려들어간 셈이다.
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은 “남북협상 관계자들이 북측의 말을 그대로 믿고 ‘군부’를 문제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면서 “김정일 밑에서 내각과 군부가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자체를 협상 전술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