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BDA 현실론’ 받아들일까

“북한의 반응을 예단하지 않는 게 좋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송금 문제의 해결이 계속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측에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 것과 관련, 정부 소식통은 28일 “매우 미묘한 국면”이라며 신중하면서 성사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2.13 합의가 나온 뒤 다섯 달이 넘도록 구체적인 조치가 이행되지 못한 현 상황은 미국이나 한국 뿐 아니라 북한에도 현실적인 고통이 가중하고 있음을 감안한 것이다.

실제로 북한 내부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은 지난달 태양절(4월15일 김일성 주석 생일)과 군 창건일(4월25일)을 기념해 대대적인 행사를 치르느라 상당한 재원을 소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지난 4월부터 식량배급을 줄이는 궁핍기에 들어갔다.

WFP는 지난 3월말 북한 방문후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기아와 영양부족에 직면하고 있으며 전체 수요의 20%에 달하는 약 100만t의 식량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체제가 불안정한 북한의 현실에서 외부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재원은 가능한 빨리 입수해야 할 처지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BDA 해결이 이뤄지지 않아 2.13합의 이행이 미뤄지면서 한국측이 40만t의 차관형식의 식량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2.13합의에 규정된 대로 북한측이 영변 핵시설 폐쇄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을 초청하는 시점에 한국은 5만t의 중유를 제공하기로 돼있다.

결국 북한으로서는 체제유지에 필수적인 막대한 규모의 식량과 에너지가 코앞에서 어른거리고만 있을 뿐 손에 쥐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이들을 얻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도 그다지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이 아니다. BDA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믿고 IAEA 감시단을 초청하라는 것이다.

미국의 이번 제안은 북한 입장에서도 일단 IAEA 감시단과 협의해 영변 핵시설을 가동중단하고 폐쇄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 식량과 중유를 받아 체제 안정을 꾀할 수 있는 `좋은 카드’로 풀이된다고 소식통들은 해석했다.

특히 지난 3월19일 이후 전개된 BDA 문제 해결 노력을 살펴볼 때 북한측도 새로운 인식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우선 미국은 3월19일 베이징에서 발표한 대로 중국은행을 통해 BDA 북한자금을 송금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BDA 제재에 따라 가능성이 원천 봉쇄됐다. 한때 개성공단내 한국은행을 경유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이는 BDA와의 외환거래계약(코레스계약)이 없어 실현 가능성조차 없었다.

이후 최종적으로 송금받을 은행으로 이탈리아나 러시아 은행이 나타났고 미국의 와코비아 은행이 중계기지로 부상했지만 이 마저도 현실적으로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가능한 방안을 거의 동원했지만 금융실무 문제에 부닥쳐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또 북한이 그동안 BDA를 통해 거래한 내역 가운데 명백하게 불법에 해당되는 거래과정이 금융계에 알려지면서 북한의 신인도가 크게 떨어진 것도 근본적으로 해결을 더디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현재의 상황에서 BDA 문제가 언제 해결될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면서 “금융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지 외교협상에 나서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6자회담을 책임지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등 미국의 협상파들은 북한을 향해 `현실을 직시하자’는 메시지를 던지게 된 것이다.

미국이 어떤 형식으로든 BDA 문제를 해결해주겠지만 시간이 지체되는 상황을 감안해 일단 할 수 있는 조치부터 취하면서 상황을 개선하자는 제안으로 풀이된다.

이 소식통은 “일단 상황이 어려워보이지만 2.13합의에 규정된 초기조치가 이행되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면서 “그렇게될 경우 일부 강경파들의 저항도 무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힐 차관보는 영변 핵시설 가동중단 또는 폐쇄가 이뤄질 경우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힐 차관보가 평양에서 협상 파트너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나아가 북한 최고 수뇌부(김정일 위원장 등)를 만나는 장면은 북미관계의 국면을 일거에 바꿀 이벤트가 될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결국 북한이 전체적인 국면을 헤아려 미국의 `우회전술’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게 소식통들의 분석인 것이다.

하지만 명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큰 북한이 ‘BDA 해결전에는 2.13합의 이행에 나서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을 쉽사리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 소식통은 “뉴욕채널 등을 통해 파악한 북한의 반응은 기존입장의 고수로 나타났지만 상황이 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북한을 상대로 한 협상의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해 정부도 만반의 준비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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