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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BDA(방코델타아시아) 동결자금 반환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담을 거부하며, 19일부터 나흘간 끌어왔던 6자회담이 22일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회담 재개 일정을 잡지도 못한 채 끝난 이번 결과에 대해 지난 수십 년간 남북대화 일선을 누볐던 대북 협상 전문가들은 “북한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 미국에게 더 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전술”이라고 평가했다.
송영대(前 통일부 차관) 평화문제연구소 소장은 “미국이 BDA 자금 해제를 선언한 상태에서 나머지는 사실상 절차상 문제에 불과하다”며 “결국 미국으로부터 추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북한의 협상전략으로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송 소장은 “북한은 미국과의 추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일부로 회담을 파행으로 이끌었다. 한마디로 미국을 길들이는 중”이라며 “북한은 이후 미국에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해제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90년대 초반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를 역임했던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도 “이 같은 상황은 과거에도 무수히 반복 되어왔던 북한의 협상 행태가 전형적인 ‘앵벌이’ 수법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북한은 이미 ‘앵벌이’의 다음 단계 수순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라며 “북한은 현재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거해주지 않으면 다른 것은 할 수 없다’는 새로운 라운드의 ‘앵벌이’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북한의 이러한 협상 전략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협상 당사국들이 단호하고 원칙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며, 북핵 협상에서 보여지는 미국 부시 행정부의 행태에 대해 ‘원칙 없는 양보’라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美, 北 요구에 끌려다녀…단호한 대응 펴야”
송 소장은 “2·13 합의는 1단계 ‘핵 폐쇄’→2단계 ‘핵 불능화’→3단계 ‘핵 폐기’라는 장기적인 목표아래 움직이고 있다”며 “북한은 1단계와 2단계 진전 상황에서 시간을 끌며 미국의 차기 정부와 협상을 기대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핵보유국이 되기 위해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작은 요구 사항을 꺼내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다시 또 두 세 개의 미끼를 꺼내는 등 원래의 논의 의제 자체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러한 요구를 한두 번 들어주다보면 북한에 끌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럴 때 일수록 단호한 대응을 펴야한다”고 주장했다.
송 소장은 “이라크 사태로 수렁에 빠져있는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 업적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에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며 “평양도 이를 알기 때문에 더 많은 추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강탈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 상임대표도 “북한은 원칙적 합의를 해놓고도 해석의 차이를 들어 ‘하나의 합의’를 ‘두 개의 합의’로 변질시키고, 결국 실천·이행이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실천·이행이 불가능해지게 되면 합의가 이행되지 않은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 시키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 내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 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6자회담의 전개 양상도 북한의 협상 공식에서 예외가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과 부시 미국 행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협상 행태는 ‘불을 보고도 끊임없이 달려드는 불나방’을 연상시키고 남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한 북한의 일방적인 태도로 회담이 파행되긴 했지만, 미국의 대북 유화적 정책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상임대표는 “미국 행정부 내에서 소수파가 된 네오콘들이 미국의 협상전략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긴 하지만, 당분간 상황이 변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도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는 수준에서 현상 관리를 하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