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8년전 美정권교체기엔 취임 직후까지 관망

북한은 지난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미국의 대북정책의 변화가 예상됐음에도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난 등 직접적인 논평을 하지 않은 채 3개월 가까이 관망하다가 새 행정부의 강경정책이 뚜렷하게 드러나자 비난 포문을 열었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된 후부터 대통령 취임 한달여까지 이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은 채 관망 자세를 취했던 것과 같은 패턴이다.

그러나 2004년 부시 대통령의 재선 때는 같은 대통령으로 같은 대북정책을 취할 것이라는 게 명백했던 만큼 북한은 관망기를 두지 않았다.

2000년 11월7일 미국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당선됐으나 북한 매체들은 침묵하다가 조선중앙방송이 10여일 뒤인 18일 대선 실시를 논평없이 보도한 데 이어 12월16일에는 부시 후보의 당선이 민주당 앨 고어 후보측과 법정공방 끝에 확정된 사실만 전했다.

이후 북한 매체들은 미국 등 주변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하고 있지만 “부질없는 짓”(12.18, 평양방송)이라는 식으로 에둘러 입장을 나타는 데 그쳤다. 북한은 새해 공동사설에서조차 대미관계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대외방송인 평양방송이 1월6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 북.미간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곧 출범할 미국의 새 행정부를 향해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특히 1월9일엔 재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만약 대통령 선거의 혼란이 없었더라면 클린턴의 방조(방북)가 실현되고 그 결과 조.미 관계가 현저히 호전될 가능성이 컸다”고 아쉬워하면서 “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조.미 공동코뮈니케라는 공식 외교문서에 명기된 국가간 약속이기 때문에 새 대통령이 어김없이 이행해야 한다”(1.9)고 클린턴 행정부 때의 합의의 이행을 기대했다.

비록 북한의 공식 매체가 아니라 조총련 기관지이긴 하지만 북한이 간접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방북에 대한 희망을 나타낸 셈이다.

이 신문은 부시 행정부가 대북문제에서 클린턴 행정부보다 보수적인 색채이지만 북.미 관계개선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공화당 정권, 민주당 정권에 관계없이 “평화에는 평화로, 강경한 자세에는 강경하게 맞선다”는 것이 북한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말해 예상되는 대북 강경정책에 일종의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은 2000년 미국 대선 1년여전인 1999년 11월23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당시 텍사스주지사였던 부시 대통령이 국가미사일방위(NMD) 체제 구축 등을 주장하는 것은 “세계 제패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전쟁 광신자”라고 비난해놓고도 당선 후에는 직접적인 비난을 자제한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을 비공식 방문(2001.1.15~20)해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 후 북.중 협력, 주한미군 철수 문제, 미국의 NMD체제 및 전역미사일방위(TMD)체제 문제 등을 논의하는 ‘대미 압박용’ 외교 행보를 보였다.

당시 김 위원장은 장 주석에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무산된 데 섭섭함을 표하는 한편 부시 대통령이 방북한다면 바람직한 일이라고 미국에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월23일엔 중앙방송을 통해 부시 대통령의 취임(1월20일)도 논평없이 보도했지만, 이틀 뒤 25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콜린 파월 신임 미 국무장관 지명자가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독재자’라고 부른 데 대해 “상식 밖의 망나니 언동”이라며 “미국이 우리에게 칼을 내밀면 칼로 맞설 것이고 선의로 나오면 우리도 선의로 대답할 것”이라고 대미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어 노동신문은 부시 행정부 출범 후 미.일 군사동맹 강화 주장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고 경계(2.6)했고, 평양방송은 “부시 행정부가 우리에게 도전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다”면서 “미국이 우리에 대해 강경하게 나오는 이상 우리도 그에 강경히 대응해 나갈 것”(3.14)이라고 본격 대응에 나섰다.

이후 북한은 연일 대미 비난 보도를 내놨으며,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불량국가”로 지목하고 외교안보팀에 네오콘 포진이 이뤄진 뒤엔 비난의 수위를 더욱 높여갔다.

2004년 11월 미 대선을 전후해선 ‘관망’ 대신 북한의 대미 비난이 이어졌다.

노동신문은 대선을 하루 앞둔 11월2일 “미국이 우리나라와 공존을 전면 부정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말살하려는 체제전복 기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있어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의미를 상실케 하고 있다”며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를 촉구했다.

북한 언론은 미 백악관이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사실상 선언(11.3)한 직후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11월5일 베이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김상익 인민무력부 부부장의 입을 통해 “우리나라를 ‘악의 축’, ‘핵 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목하고 무력으로 압살하는 것을 정책화한 현 미 행정부는 우리 제도를 전복하기 위한 대조선 적대행위를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같은 달 9일 “재선된 미국 대통령”이라는 말로 부시 대통령의 재선 사실을 전달했다.

2000년과 2004년 미 대선을 전후한 김 위원장의 공개 일정도 사뭇 달랐다.

김 위원장은 2000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비공식 중국 방문과 신의주 시찰(1.21~23)을 포함해 30회 이상 외부 공개활동을 했고 이 가운데 경제관련 활동이 약 13회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4년 뒤 같은 기간에는 대외 활동 횟수가 22회로 줄었고 그중 군부대 시찰이 15회로 가장 잦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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