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7.1조치 4년 전문가 눈으로 본 4년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북한 전문가들은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 4년 동안 북한 경제가 부분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으나 많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의 근본 바탕이 되는 소유제 개혁이 미진하고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고립’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북한 경제가 여전히 ‘새장(鳥籠)속의 새’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다음은 전문가들이 전하는 7.1조치 이후 북한의 개혁 실상과 북한 경제에 대한 진단이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가 나왔을 때 기대가 컸다. 북한이 사회주의 경제개혁의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이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처럼 앞으로 경제 개혁 속도도 빠르고 폭도 커지는 등 어떻게 변화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호랑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

개혁 조치로 가격 자율화를 도입했으나 수요 공급이 안 맞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으며, 물자 공급이 부족한 북한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인플레는 계속 확대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북한도 경제개혁 초기에 인플레라는 복병을 만나 다시 국가가 경제를 통제할 수 밖에 없게 됐다. 물가 상한선을 정해 통제에 나선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 시장을 인정하다 보니 국가의 계획경제가 위축되는 문제점도 생겼다.

시장도 국가의 계획경제 틀 내에서 움직이라고 하다 보니 시장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 보다는 기존 계획경제 안에서 실리를 다소 얻는 정도에 그쳤다. 개혁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친 셈이다.

새(북한 경제)가 새장(계획경제)을 벗어나 마음껏 날아다녀야 하는데, 다시 새장이라는 틀 내에서 컨트롤 당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기업의 독립채산제 강화로 이득기업이 좀 더 많은 소득을 얻는 방식 등으로 인해 약간의 실리를 챙기긴 했지만 미미한 성과에 그쳤다.

개인의 인센티브도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전체 월급에서 10% 가량에 불과하고 평균주의 성향이 남아 있어 현실적으로 생산을 늘리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활동은 자본과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개혁 조치가 인력 재배치나 노동체계 개선 등 근로의욕 고취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기술 도입, 외자 유치 등 본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평양은 중국제품이 들어오면서 소비지로 전락해 자력적인 경제 회생의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많은 제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미흡한 셈이다.

진정한 경제 개혁을 위해서는 완전 자격 자유화(금융.재정 개혁 포함)를 거쳐 국영과 사영을 구분하는 소유제 개혁이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중국의 등소평 같은 지도자와 경제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개혁 관료층이 형성돼야 한다.

하지만 북한 내에서 개혁에 소극적이고 개방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갖고 있는 층이 있으며 개혁.개방을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추진하는 것도 문제다.

▲양문수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 전반적으로는 7.1개혁 조치는 소기의 효과는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완전 실패라고도 볼 수 없다.

당초 북한의 목적은 세가지였다.

첫째는 주민들에 대한 상품공급 확대인데 제한적이지만 성과가 있었다.

둘째는 인플레이션 억제에 자신감을 보였지만 화폐과잉으로 인한 인플레 억제에는 실패했다.

셋째는 재정난 완화로 일부는 됐으나 아직은 눈높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북한 당국 스스로가 국민경제 자체를 모두 끌고가는 것은 포기하고 일부를 이끌고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개혁 조치가 부진한 성과를 보인 원인은 공급 능력의 한계, 제도 개선을 위한 물적 토대 취약, 외부 환경 열악 등이다. 외부 환경은 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더욱 악화됐다.

인플레 문제에 대해서는 지도층이 다소 안이한 채 현실감이 부족했다.

당초 기대했던 만큼 진전이 안됐지만 기조 자체는 유지하고 있으며 후퇴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민들 자체의 생활로 보면 빈부격차가 확대된 것은 분명한데 전반적인 소득수준은 다소 올라간 듯 하다. ‘파이’(총소득)가 커졌다는 얘기다.

일부 계획경제 정상화 시도는 얼마 안돼 시장요소 쪽으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으나 계획이라는 영역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식량이나 에너지처럼 중앙권력이 물자를 장악할 수 있는 한 군대 배급제 등이 유지될 것이다.

계획과 시장의 이중 구조가 서로가 힘싸움을 하며 동거하는 형세다.

화끈하게 개혁할 수도 없고 되돌리고 싶어도 안 되는 ‘불안정한 균형’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최근 직접 방문하거나 탈북자와 면담, 외국 보도 등을 통해 보면 작년에는 좀 호전 기미가 보였으나 현재는 거의 긍정적인 측면이 없다.

가격 자율화로 시장을 통해 소득이 재분배돼야 하는데 부족하고, 물자 배분도 평양을 비롯한 극히 일부에서만 이뤄지고 대다수 지방에서는 안 되고 있다.

기존 배급체계는 거의 붕괴됐는데 대체할 만한 수단이 나오지 않는 셈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국가로서의 기능을 하기에 힘겨운 상황이며 교육, 의료 등 공공재가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보니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개혁조치가 체제전환의 단초가 되기도 어렵다. 리더십이 바뀌어야 하는데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자체는 지리적으로 농업을 발전시키기에 불리하고, 산업구조도 주력이 중공업인데 감가상각 등으로 무력해지고 있다.

유일하게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 다시 말해 공공재를 유지하기 위한 현금 자본을 확보하는 것인데 획기적인 체제전환이 일어나기 전에는 어렵다.

최근에는 미사일 발사시험 문제 등으로 더더욱 조여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경제적으로 돌파구를 찾기가 힘든 상황이다.

▲대북지원단체 간부 = 북한 주민 지원을 위해 북한의 마을이나 공장을 자주 방문하고 있으며 지난주에도 다녀왔다.

방문할 때마다 마을이나 공장 등 일선 단위들이 7.1조치 이후 독립채산제 실시 영향으로 이윤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주유소에서는 남한처럼 기름을 넣은 고객에게 생수를 공짜로 선물하거나 일부 식당에서는 손님을 끌기 위해 10% 할인 쿠폰을 주는 경우도 봤다.

농업부문이나 공업부문에서도 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의 생활 수준도 대체로 높아지고 있으며 열심히 일하는 마을은 ’잘 사는 마을’이 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농업 지원사업을 위해 농촌 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주민들로부터 ‘남측의 지원도 소득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북한이 7.1조치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북한 자체적으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7.1조치가 필요조건을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연합